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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이별

 

또 하나의 이별

 

간은 태어나면서 부터 수많은 인연을 만난다.

그 인연중에서 부모와 자식간의 만남은 천륜이라 하여 끊을수 없어 더 없이 귀하지만  맨살을 맞대어

십수년을 사는 부부의 연(緣)또한 중요해 귀하기가 그지없다.

살면서 물굽이 돌듯 험하고 어려운 순간들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낳은 자식들을 사회의 적소에서 최고

의 자리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도록 키운 노 부부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인간승리가 무엇인지를 세삼

느낄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살다보면 인력(人力)으로 감당할수 없는 불가항력의 일들이 생겨난다.

바로 십수년을 살을 맞대며 살아온 부부간의 이별이다.

물론 우리 법에는 만인은 평등하고 각자 행복할 권리를 부여해 일방이 갈라서지 않을려고 발버등쳐도

준엄한 법의 잣대로 갈라 놓는다.

그래서 이혼은 더 이상 흉이 아닌 행복을 쫒는 당연한 자신들의 권리라 주장한다.

허지만 한순간의 감정을 이기지 못해 낳은 자식들마져 헌신짝 버리듯 남기고 떠나는 사람들을 목도할때

마다 자신의 행복한 권리앞에는 "천륜"과 "모성"도 망각 되는것 같아 씁쓸하고 안타깝다.

허긴 호주제가 폐지되고 출생한 아이들이 부모의 성(姓)중 누구의 성(姓)을 선택할것인지를 고민하는

시대에 "이혼"이 흉이 된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고전이고 원시시대적 사고인지 모른다.

 

몇해전 일이다.

축산(목축업)에 실패하고 특용작물을 재배해 오던 후배가 고개를 떨구며 필자를 찾아와 협의 이혼서를

작성해줄것을 부탁해 그 사연을 물은바 대략 이러했다.

 

늘어나는 농가 부채와 화려하지 못한 농촌 생활에 점차 염증을 느낀 부인이 느닷없이 시내로 나가 살기

를 원하면서 만약 더 이상 이 생활이 지속되면 정신병자가 될것 같다는 말에 할수없이 시내로 이사를

갔다.  부인은 이제부터 농사일은 남편이 알아서 하고 자신은 찻집을 한다며 재래시장가에 찻집 터를

잡고 영업을 시직했다. 수년간 가축들과 흙만 만지며 살아온 부인은 새로운 세상에 점차 눈을 뜨기 시작

했고 결국에는 다방을 드나드는 부평초 같은 사람들과 음주 도박등에 심취되어 날로 가산이 탕진되고  

수회의 회유와 설득 어름장은 이미 새 세상에 도취된 부인을 설득하기엔 불가능해 결국 협의이혼에 이르

러 법원 뒷문을 쓸쓸히 나가던 모습이 두고두고 회자되어 필자를 서글퍼게 했다.

 

그 후 몇 해가 흐른 어느 여름날 저녁이다.

자주가던 식당에 들어서자 모퉁이에서 여인과 담소를 나누던 후배가 필자를 발견하고 달려와 안부를

묻더니 함께 있던 여인을 가르키며 머잖아 저 사람과 혼인을 하겠단다.

남의 일이지만 필자의 일처럼 기뻐 "아이들은 잘 키워주겠대" 하고 물었더니 흔쾌히 승낙을 했단다.

어린것들이 이제 세끼의 밥을 따뜻하게 먹을수 있다는게 필자를 정말 기분좋게 했다.

어쩌면 저 여인도 복을 받은건지 모른다.

산고의 진한 아픔도 한번 당하지 않고 세아이를 얻었으니 ...

요즘엔 입양해서 친자식 보다 더 정성들여 키우는 지인 생각에 세삼 그 여인이 고마웠다.

아니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렇게 하여 2년전 쯤인가 후배는 절친한 친구들을 불러 조촐하게 혼례를 치루었고 두사람은 처가의

쟁송문제등 으로 필자를 찾아와 차츰 얼굴을 익혔다.

물론 후배의 얼굴엔 화색이 돌아 역시 혼자보다는 둘이 좋다는걸 엿볼수 있었다.

그러던 후배가 3주전 침통한 표정으로 필자를 찾아와 부인이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을 학대해서 더

이상 침묵 할수가 없어 간밤에 의견을 물었더니 "아이들이 징그럽게 보기가 싫단다"

하여 아이들과 같이 살수가 없으니 갈라서자고 해 다시 필자를 찾아왔단다.

 

부아가 난다.

결혼이 무슨 소꿉놀인줄 아나?

장화홍련전이 생각나고 낮선 단어라 여겼던 계모라는 말이 귓전에 돈다.

내가 낳은 자식이 아니면 정말 미워질까?

떠난자들은 두고간 자식이 눈에 밟히고 가슴에 엉어리가 되지않을까?

이런걸 두고 모질고 질기다고 해야하나?  

 

3주의 유예기간이 지나 이들은 필자가 보는 앞에서 헤어져 갔다.

떠나면서 그 여인은 후배에게 "와인"한병을 주고 흰색 소나타를 운전해 골목으로 사라졌다.

참 영화같은 이별이 아닌가?

떠나면서 주고 간 "와인"의 의미는 무엇이며 쪽지엔 무슨 글이 적혀 있었을까?

사흘째 서리가 내린다.

어젠 대관령엔 흰눈이 또 내렸다는 소식이 있었다.

겨울이 성큼 왔는데 또 하나의 이별을 한 후배의 가슴은 찬서리 처럼 차거울거다.

이렇게 내 가슴도 차거운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