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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香堂山房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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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향당 가을,익다 돌틈사이로 핀 가녀린 억새는 숨 다해 가지만 눈부시게 고운 애기단풍은 뉘엿뉘엿 넘어가는 햇살을 받아 더욱 선명하게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바람도 그 황홀함에 멈춰버린 이곳은 심신의 고단함도 쉬게 한다 단풍나무 사이로 비치는 광선은 지난여름을 추억하듯 힘차게 내리고 붉게 익어가는 가을은 숨고를 틈도 없이 떠날 태세다 청향당에서 초보 농부 5년 차를 보내며 사진가 구름 걸친 산
그때 그 시절 추억을 생각하며
이 떠나는 가을에 늘 사색하던 그리움 가득 찬 곳 등 구부러진 나무 사이로 성성한 바람이 들어가더니 또 가을을 익게 한다 찬서리 등 떠밀어 붉은 깃발을 올렸다 아! 눈부시다 이 떠나는 가을!!
가을 끝자락 스산한 바람이 풍경을 건드리고 처마 밑을 돌아 나갑니다. 된서리가 벌써 서너번 곱디고운 단풍도 그만 시들해집니다. 토종 앉은뱅이밀은 내년 봄 벗들과의 밀사리 행사를 아는지 실하게 땅을 박차고 나옵니다 언덕배기 유채도 질서 정연하게 벗들을 기다릴 설렘에 활짝 이파리를 펼쳐놓습니다 배추와 무우는 올해도 무농약으로 가족들과 벗들의 식탁을 향해 갈 것입니다. 유년기를 맞은 메타쉐콰이어도 제법 단풍빛을 발하고 있어 대견합니다. 청향당은 이제 겨울로 갈 준비에 바빠질 겁니다.
가을이 그친 지금 이 순간 가을! 낙엽 되어 추락한다 휘감은 허리 용트림하듯 부는 바람에 후드득 드러눕는다 절정의 환희로 사랑으로 마주하지 못하고 아픔으로 가슴 저리게 한다 아! 함께할 일상은 언제일까? 가을은 경계를 이미 지나고 홍엽은 소울음 울며 간다.
고향땅에 일렁이는 황금물결을 보았는지요? 올 한가위 고향마을에 나붙은 현수막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이 들지 않던가요? 넉넉하고 멋이 있었던 고향 한가위가 지구촌 대재앙으로 가족 간의 만남마저 단절시키더군요. 손주들 역시 영상편지로 안타까움을 전해 울컥했습니다. -몸은 멀리 마음은 가까이- -아버지! 어머니!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그때 찾아뵐게요.- -올 추석 고향방문을 자제하는 것이 최고의 백신입니다.- 그러나 올 사람들은 오고 가고 내로라하는 축제장도 폐쇄의 현수막은 걸렸어도 사람들은 북적이고 농산물 판매장의 부스는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어 지자체의 이중성에 의아함이 듭니다. 아픔이 있는 곳에 더 많은 마음이 간다고 했죠 이것이 사람 사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현상이 아닌가 싶네요. 언젠가는 대재앙도 우리 앞에 굴복할 것이고 다시 풍성한 한가위에..
유홍초의 눈물 영원히 사랑스러워의 꽃말을 가진 유홍초는 모닝글로리와 함께 청향당을 밝힌다. 메꽃과에 속하는 1년생 덩굴식물이다. 남아메리카 원산의 귀화식물로 1920년대에 한국에 귀화하여 관상용이나 약재용으로 재배되고 있다. 변비 치질 복통 등에 효과가 있다.
대재앙에도 꽃은 피고지고 열매도 영글어 가고 우리나라 토종콩인 푸른 콩을 제주에서 어렵사리 구입해 지난 6월 20일 파종한 후 싹 틔우기를 고대하는 이 마음을 아는지 7월이 오자 이랑마다 푸른 제복을 입고 도열한다. 이 녀석들 보는 재미에 왕초보 농부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피기 시작했다. 이들보다 먼저 정식한 찰강냉이는 서로 키를 재며 후드득 떨어지는 장맛비를 온몸으로 맞고 서있다. 분명 낱알 여물어가면 학남산 멧돼지 출몰하여 쑥대밭을 만들게 분명한데 영리한 진도견 "진솔"이만 믿고 울타리를 설치하지 않아 사달이 났다. 이틀 전 빗줄기 장대같이 쏟아지는 야음을 틈타 한 마리로 추정되는(밭고랑 발자국) 고라니가 출몰하여 폼나게 서 있던 토종자원 푸른 콩 20여 포기만 남겨둔 체 나머지는 모조리 흡입하고 사라졌다. 아뿔싸! 울타리를 치지 않은 이 게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