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목장-맹동산-봉화산-명동산-박심고개-장구메기-화매재-황장재 (소요 11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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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것 같지 않던 낙동정맥(태백산맥)도 오늘 이 구간을 마치면 줄기차게 내달린 맥 줄기가 대양을 향하는 포구에 발을 살포시 담굴 몰운대 한구간만 남게된다. 강원 태백의 피재에서 시작하여 빗속 통리역의 스산함 그리고 지루하던 면산. 세상에 태어나 딱 한번 가서 만난 이 땅 그 마을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코가 땅에 닿을듯한 오름길 과 사정없이 곤두박질칠 정도의 비알길들, 숲에 가두어져 방향마져 갸늠할수없었던 답답한 정맥길. 1000리도 넘게 걸어 이제 마지막 그 끝점을 향해 간다.
새벽4시30분 대관령을 빼닮은 OK목장이 안개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린다.세찬 바람이 불어 여름이지만 이곳 새벽 공기는 대관령 처럼 차다. 안개가 걷히면 푸른 초원의 아름다움이 영상이 되어 다가오련만 애궂은 날씨가 산객 애간장만 태운다.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걸망을 챙겨 목장길을 따라 가보지만 안개로 길을 잃었다.
한참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주위가 밝아지면서 지난번 내려온 감자밭을 찾아 되돌아가다가 우측 목장길에 정맥꾼들이 달아놓은 리본을 발견했다. 한우 방목장엔 소들을 풀어 놓았는지 군데군데 바리게이트가 산객 군(軍)에서도 하지 않던 낮은 포복을 하게 해 여간 성가신게 아니다. 동녘 저편에 먼동이 산을 안은 안개와 운무위에 고운 빛을 드리워 아름답다.
05시 32분 지나가면 푸른 물이 온몸에 들것 같은 초원위에 누렁소들이 부지런을 떨며 풀을뜯다 느닷없이 싱그러운 식사를 방해하는 산객을 큰 눈을 껌뻑거리며 물끄러미 바라보며 섰다.
어미소 젖을 빠는 송아지의 혀놀림이 본능이지만 참 앙증스럽다.
이곳도 목장이 정맥길을 장악해 조금은 실망스럽고 중간중간 리본이 없어 자칫하면 우측 길로 접어들어 고생할수가 있어 긴 안테나가 서 있는 지점을 지나면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목장이 끝나는 마지막 바리게이트를 지나 편편한 임도를 따라가다가 맥줄기가 활처럼 휘어지는곳 우측 정자처럼 보이는 산불감시초소가 있는곳이 맹동산이다. 06시30분 시야가 확트이는 고냉지 감자밭이 있는 임도에 서서 건너편을 바라보니 새벽 운무가 정말이지 한폭 그림이다. 멀리 세면트 포장 비탈길로 감자밭에 농약을 살포하려는 식구를 태운 작은 트럭이 숨이 턱에 차게 오르더니 오르막에서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멈추고 다시 요란한 소리를 내며 힘겹게 올라 산객옆을 지나간다. 그들의 눈빛에서 홀로 산길을 가는 필자가 측은해 보이지는 않았을까?
넓게 펼쳐진 이른 아침의 고냉지 감자밭의 풍광은 넉넉함과 평화가 공존해 먼길 가는 산객마음을 안정시켜 상큼하다. 하얗게 목화처럼 핀 감자꽃도 고향에서 본 서너줄의 감자밭과는 너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삼의 3.4km 대리 6.5km 마당두들 9.3km의 이정표가 서 있는 삼거리에서 맥을 더듬고 곧 바로 감자밭 귓퉁이로 올라서자 장맛비에 젖은 땅이 진흙이 되어 가득이나 이슬에 젖어 천근 무게가 된 신발에 달라붙어 걸음을 떼어놓기가 무척 힘이든다.돌아서서 걸어온 길을 보니 아득하다. 푸른목장도 누렁소들도 시야에서 멀어진지 오래다. 감자밭이 끝나자 임도다. 임도를 한참따라가지만 리본이 없다. 다시 감자밭 쪽으로 되 돌아와 건너편을 두리번거리자 눈앞에 능선으로 오르는 리본을 발견하고 비알길 땅만 쳐다보며 올랐다.
한땀 야무지게 흘리며 올라서니 헬기장이 있는 봉화산이다.A4용지에 봉화산 표기만 없다면 이곳이 봉화산인줄 알까? 그만큼 낙동정맥은 봉우리마다 숲이 울창해 지명을 알기가 쉽지않다.간혹 봉우리마다 A4용지를 부착해 친절하게 지명을 적어놓은 선답자와 지역 산악동우회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곤두박질 치듯 20여분의 비알길을 무릎통증을 참으며 내려서니 푸른 이끼가 돌들을 감싸안은 석성같은 봉화대를 만났다. 처음엔 폐허된 옛 석성의 일부분으로 짐작을 했으나 지도를 펼쳐보니 봉화대다. 지금은 밀림 지대로 긴급 통신을 알릴 봉화대 구실을 하기에는 부적격이다.
▲ 봉화산
▲봉화대
07시23분 금강송이 그림처럼 도열한 산릉을 돌아 나가면서 걸어온 산줄기를 조망할려고 뒤돌아 보았으나 숲이짙어 볼수가 없다. 오늘 구간은 현재까진 비교적 높낮이가 심하지 않아 편편한 숲길에 일찍 세상밖으로 나와 요란을 떠는 매미와 간간히 산길 고요를 깨는 새소리가 산객처럼 쓸쓸하고 처량하게 들린다. 이 산속엔 오늘도 어김없이 산객 혼자다.
08시38분 산불감시용 카메라가 비바람에 썩어 작동이 되지않아 흉물로 변한 봉우리에 올라섰다.여기가 명동산인가? 타고온 산줄기가 겹겹히 포개지고 가야할 길은 아득하다. 지쳐가는 다리를 잠시 쉬게할 요량으로 바닥에 털석 주저앉아 얼음물로 목을 축이니 눈한번 붙이지 못하고 산길 걸어온 산객 정신이 번쩍든다. 바람도 덤으로 등에 내려앉아 피곤함을 달래줘 다시 걸망을 등에업고 일어선다.
09시05분 명동산을 내려서자 맥은 다시 활처럼 휘어져 나간다.산불이 난건지 아니면 벌목을 해서 그런지 명동산의 숲이 희한하다. 아니 산줄기를 타고 내려 오면서 이런곳이 여럿 있었다고 기억이 된다. 특히 송진 체취를 위한건지 아름드리 적송의 피부를 V자로 도려낸곳은 산줄기 내내 있어 의구심이 든다.
고압철탑을 지나고 푸른솔 도열한 산길 아래 황톳길 임도에 자동차 1대가 지나간다. 09시 22분 이 길 걷는 지친 산객들 쉬어 가라는듯 박심고개가 너른 가슴을 펼쳐 보듬는다. 새벽 끼니는 어느새 허기를 느껴 공터에 앉아 라면을 끊여 요기를 하고 맥주 1캔으로 목을 적시고 다시 황장재를 향해 일어섰다. 얼마후에 닥친 오름길은 숨을 내쉬기도 힘이든다.
▲ 명동산의 희한한 형태의 숲
▲ 박심고개. 지친 산객들 휴식하기엔 딱이다.
10시20분 진초록 굴참나무숲을 만났다.싱그러운 이파리가 실없이 지나간 청춘 그리고 젊음을 그립게 하지만 이제 그 환희와 희망 가득찬 그 때 그 날들은 영원히 돌아 올수가 없다. 이곳에 서면 모두가 청춘을 더 없이 예찬하리라... 10시24분 "영주산마을"에서 만들어 걸어놓은 포도산 삼거리에 닿았다. 키를 넘는 철쭉, 진달래 군락지를 지나고 11시14분 다시 송전탑을 지난다. 임도 사거리가 나오고 담배밭이 보인다. 처음으로 담배꽃을 보았다. 사실 엽연초에 꽃이 피는걸 한번도 본적이 없어 신기했다. 임도를 따라 내려가니 우측 비알에 패랭이꽃이 군데군데 피어 예쁘다.
11시14분 다시 송전탑을 지나고 국토지리원이 세운 삼각점 설치 안내문이 서 있는 봉우리에 닿아 명동산 일대의 산줄기가 하늘금을 그리며 산객 잘가라며 배웅한다. 11시47분 산불로 뼈만 앙상하게 남은 소나무 고사목 군락이 화전을 만들기 위한 인간의 방화로 의심되어 영 마음이 착잡하다. 인간의 욕망은 충분히 이런 일련의 일들을 져지를수 있기에...
11시52분 막 멀칭을 뚫고 나온 배추묘종의 이랑이 빗살무늬로 늘어선 넓은 고냉지 채소밭을 지나며 작년 이곳 영양에서 정확한정보도 없이 수만평에 고냉지 배추를 경작하려 와 빚만 잔뜩지고 낙향한 친구생각에 잠시나마 배추밭 이랑에 머물고 있었다.다시 숲길을 지나고 이어 솔잎 소복히 싸인 임도를 만나 앞으로 나아간다. 12시16분 임도 좌측 음침한 분위기의 작은 당집을 지나는데 어릴적 공동묘지 입구에 있던 상여집이 생각났다. 머리끝이 서던 그때를 떠올리며 혼자 피식 웃었다.
▲ 당집.
13시45분 쭈-욱 뻗은 솔숲에 취해 잠시 휴식하고 멀리 전방을 주시하니 황장재로 짐작되는 도로가 시야에 들어온다. 도로 옆 대형 입간판이 본듯해 심하게 아려오던 무릎마져도 잠시지만 통증을 잊게한다. 걸망을 벗고 송전탑 옆에서 샌드위치 하나로 허기를 때우고 휴식한후 다시 일어나 귀를 세워 혹 자동차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귀 기울이며 상당한 비탈길을 왼쪽 다리를 약간 절며 내려서자 산객 맞은편 비탈에서 풀을베는 예초기 소리가 들린다. 14시01분 영양군에서 세운 특산품 선전탑이 반가운 화매재에 도착하니 저절로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 얼음물로 목을 축이며 5분여 휴식한후 마음을 다잡는다. 오늘 이 구간은 기어서라도 끝내야 된다. 그리고 급하지 않는 오름길을 올랐다.
▲ 화매재.
능선에 올라서 조금 나아가자 화매리의 작지만 아름다운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여기서 2시간 정도를 더 가야 오늘 구간의 끝점인 황장재다. 14시23분 개망초 흐드러지게핀 능선을 지나고 이어 한땀 또 흘리는 오름길이다. 안부를 지나고 낙엽이 수북히 쌓인 잡목숲을 지나지만 고대하는 황장재는 아직도 먼곳에 있는지 자동차 소리도 아직없다. 돌아가는 산허리를 지나가자 화매재 도로가 눈에 들어오지만 이제 두 다리는 모래 주머니를 부착한듯 무겁다.
드디어 자동차 소리가 아득히 들려온다.가파른 비탈길을 왼쪽다리를 끌며 내려서자 철조망 사이로 황장재 도로가 보인다.
급경사 비탈길이라 철조망 까지 조심해야 하고 개구멍이 있지만 통행하기가 용이하지 않아 우측 철조망을 따라서 조심조심 내려가자 낙석 방지용 철조망이 끝나고 세면트 옹벽을 내려서니 16시 11분이다.
너른 주차장과 휴게소의 트롯 음악소리가 산객들 환영하는 팡파레로 들린다.
11시간이 소요되었다. 휴게소에서 맥주로 목을 축이자 휴게소 주인이 다가와 어디서 걸어 왔느냐고 산객에게 물어 대답을 해주었더니 대단히 고생 하셨다며 산객이 쥐고 있는 리본 하나를 달라고 한다. 다시 고래가 유희하는 푸른 동해바다의 겹겹 포개지는 파도와 삼척 어느 주점의 가자미회에 바쁘게 기울인 소주 몇잔이 11시간의고통을 삼켜 버리고 말았다.
참말로 다행인것은 산객 하산후 20여분이 지나자 참았던 장맛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다.
이제 산객은 피재에서 솟은 가는 물줄기가 흘러 줄기차게 필자의 옆으로 따라 내려온 낙동강물이 바다와 만나 대양을 갈 준비를하는 마지막 구간인 아름다운 몰운대로 내려가 천리도 넘게 걸었던 발걸음을 잠시 쉬게할 것 이다.
낙동정맥 25번째 길에서 만난 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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