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추억의 산길

두 남자의 무척산 이야기

 

두 남자의 무척산 이야기

[글.사진 / 기산들 ]
2009. 2.  8.

자가 산(山)과의 인연을 맺은지 얼마후로 기억이 된다.

작고한 지인이 필자더러 김해 무척산을 들어본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산명이 특이해 그곳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김해 생림면 생철리 즉 삼량진으로 가는 어느 고갯마루쯤에 기묘한 암봉을 거느린 이 산이 있다고 했다.

우리 말에 "무척"이라는 어휘가 가져다 주는 비중은 상당히 크다. 물론 이 산명인 무척(無隻)과는 사뭇 다르지만...

 

다른것과는 견줄수 없다는 뜻의 무척은 그래서 인연은 물론 사랑, 이별까지도 이 단어가 속하면 그만큼 아름답고 또 아프고 슬픈 기억이 된다.

우리 민족의 큰 산 백두산의 천지와 동명(同名)인 천지못이 있는 무척산을 필자는 그 해 이 산의 산명이 특이해 찾아 갔는지 모른다.

그 후 모임의 후배 가족들과도 이 산을 가고 어느날엔 혼자 또 이 산을 찾아가 고향선배를 만나더니 오늘 함께 이 산길을 갈 김해아우와는 이 산에서

평생 산 동행이 될것을 다짐하기도  해 무척산은 필자에게도 무척 의미있는 산 이다.         

  

                                                                            최근에 발견 되었다는 무척산 흔들바위

마전 이 산 중턱에 흔들바위와 연리지가 발견되어 세인들에게 알려지자 이 산은 다시 원.근의 사람들로 주말이면 북새통을 이룬다.

세삼 언론의 힘이 얼마나 강하고 무서운지를 실감하며 앞으로 언론은 보도에 앞서 특정물에 대한 접근시 제반여건등도 심층 취재하여 무모하게 이 산길을

택하지 않도록 하는 배려 또한 언론의 의무가 아닐련지...  오늘 이 비알길에서 무척이나 괴로워하는 연로하신 몇분을 보고 느낀 소회다.

 

칠전 김해아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리산을 몇번씩이나 가자고 했던 필자의 마음에 미안해서인지 아우는 무척산 흔들바위를 말하며 무척산을 가보지 않겠느냐고 해 아우를 본지도 오래

되어 사진동호회 정기출사(동해 감포, 구룡포 일출)도 펑크내고(사실은 카메라 작동 불)김해로 갔다.

낙남정맥길 중 분노의 길인 가야컨트리(가야 CC)옆 고개를 넘을때 골프장안 맥(脈)길이 없어 이리저리 헤며다 때마침 라운딩을 하던 케디와 실랑이를 하던

일이 떠올라 다시 한번 끊어진 우리 맥은 두발로 이어갈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생림면으로 가는 아니 삼량진으로 가는 국도는 4차선으로 확.포장되어 이제 무척산의 접근이 한결 쉬워졌다.

 

자의 예상은 적중했다.

김해시가 조성한 주차장으로는 현재의 차량들을 수용할수가 없을 정도로 무척산은 만원이다.

시에서 부착한 흔들바위와 연리지 깃발이 바람에 흩날리며 이 난리를 부추기듯 해 절로 웃음이 난다.

새로 난 등산로(흔들바위 방향)초입엔 친절하게 흔들바위 방향을 표시해 처음 이 산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쉽게 산길을 찾을수 있지만 산속으로 들어간지

10여분쯤 지나자 병약자,노약자는 이 지독한 흔들바위에 접근하기 까지 얼마나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지를 체험하는 된비알길과의 분투가 있어야 한다.

    

땀 야무지게 흘리며 만난 흔들바위(사진 맨 위)는 무척산 중턱에 위치해 있었다.

김해의 모 산악회가 이 산길을 개척하며 발견했다는 흔들바위, 이제 이 산은 이 바위 하나로 그 유명세가 더해질까?

소문엔 "도립공원"으로 지정하자는,

지정한다는,

지정된다는 소리가 들리지만 글쎄 이 산세와 주변 시설들이 도립공원에 걸맞는지는 해당 기관이 면밀히 검토할 사항이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단순한

회귀성 등산로 보다는 장거리 산행길도 개척할것을 주문해본다.  물론 여차에서 3개산을 종주하는 코스도 있다고 들었지만 ...

 

 

들바위를 지나 좀 수월하게 오를거라고 생각했던 필자의 생각을 조롱하듯 정상을 가는 산길은 숨이 턱에 차오를 정도로 가파른 오름길로 필자는

이 길에서 가쁜숨을 몰아쉬며 괴로워하시는 어르신을 만나 위안의 말을 해보지만 이 순간엔 사실 아무 소용없는일이다.

필자 역시 저분처럼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한해 한해 나이가 들어감에 발걸음이 무거워져 가는걸 느낄수가 있다.

그런 필자의 속내를 모르는지 아우는 격려인지 한마듸를 던진다. " 아직 형님은 가볍게 잘 가시네예 나는 못따라 가겠심니더."

드디어 정상 아래 천지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났다.

많은 인파들이 흙먼지를 날려 호흡마져 곤란해 길을 비켜서며 바위 전망대로 올라가 산아래를 내려다 보지만 희뿌연 개스는 마음까지 우중충하게 한다.

  

 

 척산 정상

태극이 조각된 정상표지석 옆 소나무는 사진 촬영을 위해 나무위로 오르는 사람들로 인해 껍질이 완전히 벗겨져 측은하지만 솔가지를 푸르게 피우며

의연히 서서 사람들을 반긴다. 아우와 같은 산악회 회원이신 형제분들과 기념 촬영을 한컷한후 정상 아래 길위에서 아우가 가지고 온 도시락을 펼쳤다.

무척(無隻)이란 짝을 찾을수 없다는 뜻이지만 금관가야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기록된걸 보면 김해 신어산을 능가하는 경관을 가진산이다.

    

 김해아우와 동행한 무척산을 사랑하는 형제분들, 그들의 산길은 아름다울것이다. 

지는 오랜 가뭄으로 말라 볼품이 없고 적은 수량의 물은 산소 공급이 제대로 되지않아 녹조다.

가락국 왕을 장사 지낼때 물이 자꾸 고여 신보가 높은산에 연못을 파면 물이 고이지 않을것이라 하여 천지를 조성했다는 야설에 가락국과 가장 가까운

신어산에 못을 파지 않은것이 아이러니지만 아무튼 가락국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 산으로 김해김씨와는 밀접한 산 이다.

 

 제 서쪽 비탈의 기암괴봉이 무척산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천지에서 내려오던 물은 암벽에다 빙폭을 만들었다.

무척산은 암장을 오르는 사람들의 절대적인 훈련장으로 특히 탕건바위는 21개의 길이 있다.

 

 

 서쪽의 기암 괴봉들

 

 탕건바위

 

 

 

 장을 지나 모은암으로 가는길에서 부부소나무(연리지)를 만났다.

수년간 우린 무심코 이 산길을 걸어 갔지만 나무는 세인들 모르게 사랑과 밀어를 나누며 한몸이 되었을것이다.

경주 남산의 연리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무척산 연리지는 나무 상층부의 가지가 한몸이 되어 사랑을 나누고 있다.

 

 

  도 아유타국의 허황후가 아버지를 그리며 천태산에 父恩庵을 세우고 이 산 무척산중턱 암벽아래에 어머니를 그리며 母恩庵을

  세워 이국의 외로움과 부모님에 대한 은혜와 그리움을 달랬다는 설화(?)가 애닯다.

  돌계단을 올라 바위 아래 아슬하게 터 잡은 암자를 둘러보고 생철리 주차장을 향해 내려선다.

  

 

 

  풍에 애절하게 울던 대웅전 풍경이 훈풍에 고요히 메달려 봄을 부르고 있다.

  봄은 새로운 젊음을 산에다 내려 놓을것이고 청산은 또 이슬을 머금고 마알간 젊음을 사람들에게 선사할 것 이다.

  낮에는 화사한 봄볕으로 분홍옷도 지을것이고

  밤에는 은구슬 같은 별을 따다 새순마다 주옥같은 사랑도 걸어 놓을 것 이다.

  처음 이곳을 찾아와 산위를 올려다보면 적잖은 사람들이 기암의 자태에 환호성을 지르듯 무척산은 김해 사람들은 물론 산을 그리는 사람들에게

  작지만 아름다운 산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급조한 흔들바위 등로도 천천히 야무지게 안전시설들을 갖추어 사람들을 불러 모아야 할 것이다.

  동행해준 김해아우와 그리고 산길에서 형제간의 우애를 다져가시는 두분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참 김해 아웃도어 갤러리를 자랑하며 들려보자고 한 아우의 부탁을 깜박하고 와 미안하고  

  다음에 꼭 들릴것을 약속해보며 두 남자의 산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걸을수만 있다면 쭈 ∼ 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