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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문회 이야기

벼릇끝 11회 동기모임

                  

              필자가 벼릇끝 대한민국 1% 명문인 영현중학교 총동문회장직을 맡은지 1년이다.

             며칠후에 치르게 될 총동문축제(2016. 4. 24.)준비로 요즘 한창 바쁘다.

             6. 25. 한국전란중에 태어난 세대라 어디 의식주 혜택이나 제대로 받아 보기나 했던가?

             당시 100여명 가까이 초등(국민)학교를 졸업 하였으나 겨우 20여명쯤 중학교에 진학을 하였으니 오늘 모이는

             우리는 그나마 혜택을 받은 운좋은 사람들이 아닐까?

            


                 자영업을 하는 동기들외엔 퇴직과 은퇴를 하였으니 이제는 건강을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다.

            힘든 세월탓인지 몇몇을 제외하고는 고왔던 얼굴에 깊은 주름이 모질게 버텨온 시간들을 대변하니

            돌이켜보면 "젊음"이 그리 오래 곁에 머문것도 아닌듯해 무상하다.

            여항산 가풀막을 오를때 새어 나오는 거친 숨소리는 십수년 동안 산을 오른 필자 역시 예외가 아니다.

  


                   모두의 얼굴 그 자체가 그리움이다.

             흙먼지 나는 신작로를-

             산새 소리도 무섭게 들리던 시오리 솔숲길을 줄창 걸어야 했던-

             운동장 끄트머리 우물가에 한두레박 물로 허기를 달랬던 벗들

             그래도 그땐 꿈 과 희망이 장대해 휘파람 신나게 불며 방천둑을 달리고 또 달렸다.

               




                         5,000여 동문을 배출한 모교는 농촌의 급격한 인구감소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폐교가 되었다.

                  폐교의 상흔은 나와 우리를 급격히 늙어가게 만들었고 교정 역시 옷 한번 제대로 갈아 입지 못한체

                  타인에게 임대되어 나날이 늙어가고 있어 그곳을 지날때 마다 울컥해 진다.

                  해마다 4월 마지막 일요일이면 벼릇끝 교정엔 함성이 골을 돌아 나갔지만 이것마져 주관기수의 

                  고갈로 멈출것 같아 심란해 진다.    

                     



                        걷기가 오르기가 버거워 등정을 포기한 친구들을 제한 나머지는 여항산에 섰다.

                 2004년 낙남정맥을 종주하면서 여항산 마루금에 속한 서북산의 6. 25. 전적비를 보고 이곳이

                 치열한 격전지였음을 알게 되었다.

                 멀리 산돌아 눈길을 돌리니 이반성 발산재가 손에 잡힐듯 하다.

                 미세먼지로 중첩한 산 그리메는 볼수 없어도 한세대를 살아가는 동기들의 모습에서 첩첩한

                 산 그림자 처럼 느긋함을 맛본다.

 






                       다가오는 4. 24. 총동문축제일에 다시 만날것을 약속하고 헤어진다.

                아쉬움이 늘 유혹하지만 축제준비 회의관계로 부득히 일어서야 했다

                하산길에서 버리고 가벼워져야 한다는말 쉽지만 행동으로 실행하기는 어렵다는 친구의 말에 

                이 세상 어디 내것이 있던가?

                잠시 사용하다 간다는 글귀가 뇌리를 스친다.

                벗들이여

                건강하게 계시다가 문득 그리울때 불현듯이 다시 만나자

                오늘 우리는 10년을 젊게살다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