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날씨가 연일 흐리고 비가 오는지 산을 그리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일상을 사는 사람들도 계속되는 비에 짜증이 날 것이다. 필자 역시 산을 만나지 못하니 괜히 짜증이 나고 날씨 핑계로 게으름을 피운다. 오전내내 책장만 넘기다가 가까운 연화산이라도 오를까 하다 갑자기 "각산"이 떠올랐다. 비내리는 삼천포항과 연육교들 그리고 비에젖은 각산. 안개비로 혹 수묵화를 닮은 모습이 될것 같아 서둘러 출발했다. 각산은 삼천포항과 남해 창선을 잇는 꿈의 다리 연육교(5개교량)를 한눈에 그림보다 더 아름답게 조망할수 있는 조망처며 삼천포를 비롯 인근 사람들의 푸른 건강을 다져주는 보약같은 산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없이 올라 다도해의 올망졸망한 섬들과 세상 가장 아름다운 다리를 비롯 와룡산 금오산 지리산릉을 조망하며 즐겁게 쉬었다 내려가는 동산같은 작은산이다. 특히 각산의 치마자락 끄트머리에 터 잡은 대방사는 여느 사찰에서는 볼수없는 대웅전(大雄展)을 순 우리글인 <큰법당>으로 표기한 편액이 시선을 끈다.
오래전 부터 큰법당 옆 너른 터에 준비해 오던 반가사유상이 고뇌에 찬 모습으로 중생을 구제하려는듯 다도해를 바라보며 가부좌를 틀었다. 왼손은 오른쪽 다라의 발목을 잡고 오른손 팔꿈치는 무릎위에 붙인채 오른 손가락을 빰에 붙이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반가사유상. 부처가 태자였을때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출가하여 "중생구제"라는 큰 뜻을 품고 고뇌한 "태자사유상"에서 유래가 되었다는 반가사유상을 현대의 기계적인 기법으로 제작 되어 이곳 대방사에 안치하여 오늘 산객과 이렇게 첫 대면을 한다.
바다는 안개에 잠겨 회색빛이다. 보일듯 말듯한 연육교들도 안개에 취해 모두가 침묵하고 있다. 삼복때 핀 여름꽃은 무덥고 지루한 지난 여름이 무던히 미운지 가을에 조금은 더 살려는지 활짝 미소를 지으며 길섶에 피어 가을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각산은 호젓한 오솔길의 산길이다. 동리의 뒷산인 만큼 해거름에도 아이의 손을잡고 오르는 아낙들의 모습이 분주하다. 날씨가 맑아 시계가 좋으면 옥빛 다도해와 코섬을 비롯 창선도 사랑도등이 둥둥 떠 다니고 섬과 섬을 이어며 섬을 육지로 만든 연육교의 장관에 넋을 놓고만다. 특히 해 떨어진후 연육교의 야경은 세계 유수의 다리 야경에 내놓아도 단연 으뜸이다.
각산은 이제 가을이다. 빛깔좋은 비맞은 억새의 자태는 이미 애잔함이 점차 묻어나고 안개젖어 수묵화로 변한 바다는 온통 그리움으로 채워져 있다. 따라서 비오는날 각산에 오르면 멀어져 더욱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르고 귀뚜리 우는밤 하얀 엽서를 꺼내 들게하는 깊은 가을같은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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