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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산길에서

하필 구름낀날 금오산이라니...

 

회오리 바람 일지 않으니

비좁은 방도 편안하고

 

밝은달이 뜰에 다가오니

홀로 느리게 거닌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면

이따금 베개를 높여 꿈을꾸고

 

산눈(山雪)이 펄펄 흩날릴때

차 달여 혼자 마신다.

고려 삼은(목은 이색,포은 정몽주,야은 길재)중 한분이신 이곳 경북 구미(실제 선산군 봉계리)가 낳은 고려 성리학자 야은 길재

선생의 위 싯귀가 딱 어울리듯 오늘 필자가 찾은 금오산 자락엔 하얀 산설(山雪)이 흩날리고 있다.

메타세콰이어 숲길의 등산로 초입은 고삿길 같아 차량 통행이 없다면 더없이 고즈녁한 길이겠지만 위 주차장 때문에 차량 통행이

많아 말 없는 숲은 매연에 혹 병이나 들지는 않을지 걱정이 된다.

그래도 아침 풍광은 시심처럼 고요해 채미정(採薇亭 : 고려 우왕때 등제한 고려말의 학자인 야은 길재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728년 영조24년에 건립한 정자)을 지나는 산객의 마음도 산설(山雪)이 되어 숲길을 적시며 간다.

 

 

 

금오산(976m)은 구미시 서쪽에 솟은 산으로 멀리서 쳐다보면 여인이 나신으로 누워 있는 형국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정상 부근

불끈 솟아오른 힘이 넘치는 산으로 풍수지리학으로 볼때 제왕이 둘씩이나 나온다(나올수 있다는?)는 산이랴나... 

글쎄요, 맥이 곳곳에 끊어진 지금도 가능한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산세는 기(氣)가 있어 보인다.

 

 

휘날리는 눈발에 젖은 솔잎에서 풍겨져 오는 솔향이 제일 진하게 느껴질때가 지금 같은 아침나절이 아닐까?

케이블카 매표소옆을 돌아 가면 솔향 짙은 솔숲길이 해운사까지 이어지고 지자체 마다 야단스럽게 법석을 떨던 새 천년을 기념

한다며 쌓은 돌탑이 어느새 이끼와 공유할 정도로 제법 시간이 흘렀다. 돌탑에 내려앉은 퇴색한 솔잎이 따뜻하게 보인다.

 

 

 

 

금오산의 원래 이름은 대본산(大本山)이었으나 남숭산으로 개명 되었다가 다시 지금의 금오산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단다.

금오(金烏)는 태양 광명의 뜻이라 적혀져 있지만 이 보다는 옛날 아주 먼 옛날 당나라의 대각국사가 이곳에 와 수행중 붉게물든

저녁놀에 황금빛 까마귀가 날아가는것을 보고 금오산이라 불렀다는게 정감도 가고 설득력이 있다. 

1970. 6. 1. 경북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솔숲길을 따라 부지런히 오르면 금오산성이다. 성안으로 들어서서 조금만 오르면 이어 고찰 해운사를 만나게 된다.

도선굴 아래 자리한 해운사의 마당에는 이른 아침인데도 불자들과 등산객들로 부산하다.   

여기서 200여미터를 올라서니 빙폭으로 변한 명금폭포를 만나 휴식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명당 이어서인지 산악회들의 시산제가 

좌.우에서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명금폭포를 기준으로 우측 벼랑길을 따라가면 도선굴을 구경 할수 있고 좌측길이 정상인 현월봉으로 가는 주등산로다.

약하던 눈발은 할딱고개(깔딱고개)를 오르면서 제법 커지기 시작해 금방 돌길이 미끄럽다.

급경사 오름길이라 하산시 미끄러워 매우 위험 할 것이라 예견하며 할딱고개에 올라서니 고개 안내판의 내용답게 등어리와 

이마에 땀이 조금 흘러내린다. 정상 부근에는 함박눈이 쏟아지는지 정수리 부분이 온통 회색천으로 감싸져 보이지 않는다.    

 

 

  시산제를 마친후 음복하는 산꾼들

 

 

 

산세가 험해 동계 장구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서는 정상을 향한다는건 무리다.

몇번이나 미끄러워 아찔함을 느끼다 결국 아이젠을 착용하고 정상을 향해 오르지만 눈발은 카메라를 꺼낼수 없을 정도로 커져 

정상 밑에서 머뭇거리다 하산을 결심한다. 하필 구름낀날 금오산이라 ... 오늘 이 산은 여기까지가 나와 인연인듯 해 봄 오면 다시

이곳을 오리라 다짐하며 미끄러운 비탈길을 위태위태 내려선다. 

  

 

 

아쉬움에 도선굴을 향한다. 쇠줄 늘어진 좁은 벼랑길 끄트머리에 자리한 도선굴엔 젊은 가족들이 무엇을 비는지 촛불을 켜놓고 

연신 빌고 있다. 해운사로 들어가 경내를 돌아본후 계단을 내려서니 고삿길 돌무지엔 산설이 터 잡을 틈도 없이 녹아 미끄럽고

케이블카는 쉬지 않고 해운사를 향해 오른다. 다시 매타쉐콰이어 숲길로 내려서서 뒤돌아보니 산은 저 멀리에 서 있다.  

참 아쉬운 산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