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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산행, 여행

생각만 하면 머리끝이 서는 대마도

죽음의 공포에 떠는것 보단
차라리 죽는게 더 낫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간 4시간30분



씨 플라워는 산 등성으로 올라가다가 이어 천길 나락으로 떨어진다.

좌현으로 기우뚱 거릴때 그리고 산을 오르듯이 배 앞부분이 하늘을 치솟을때 바닥을 때리는 천둥같은 파도소리와 곳곳에서 들려오는 외마디소리 그리고 기진맥진해 바닥에 나뒹구는 멀미한 사람들이 뒤엉킨 광경등은 분명 여긴 생과사만 존재하는 전장터 바로 그곳 이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엄습해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는 급기야 사람들을 자포자기 하게 만들고 차라리 공포와 두려움속에 정신이 있는것 보다는 오히려 배가 침몰하는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여러분은 그저 필자가 지어낸 말로 들리시지는 않는지요. 생지옥 이었습니다. 아니 아비규환. 생과사의 갈림길.풍전등화.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4시간30분을 죽음의 공포속에 떨어본 기억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4-5미터의 파도는 전장 100여미터의 씨 플라워를 초라한 일엽편주로 만들었고 300여명의 승객들은 너 나 할것없이 나뭇잎으로 변한 배안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부산항에 무사히 닿기만 기다리며 사지에 힘을주고 눈만 감고 있었습니다.

밀려오는 집채만한 파도를 바로 쳐다보기엔 인간은 너무 나약한 존재 그 자체 였습니다.

시간은 왜 그리도 더디게 가고 북섬과 남섬을 오가는 시간이 너무도 짧았던 대마도를 벗어나는것도 그날은

너무 길고 또 대한해협은 무엇이 그리도 길고 파도가 드센지 비바람치며 뱃전을 때리던 그 소리들이 환청이

되어 다시 들리고 밤새 필자는 산을 올랐다 천길 나락으로 떨어지는 씨 플라워호에 내내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아직도 이해가 가지않는것이 3-4미터의 높은 파고의 폭풍주의보를 통보 받았음에도 출항을 감행한

저의와 그리고 실제 바다에 나오니 4-5미터의 엄청난 파도가 이는데도 부산으로 꼭 가야하는 이유를 도착하여

들어보니 "5미터 이상의 파도가 칠줄은 몰랐다. 국제선은 무조건 승객을 싣고 떠나야한다"는등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말만 늘어놓는다. 제나라 국민의 생명을 아주 우습게 생각하는 이 얼간이 선장과 승무원들의 발상인지 아니면 한-일간 국제선 취항시 운항에 관한 규정이 그런건지...만약 그런 규정이 있다면 이 건 법이 아니라 악법이 아닌가? 부산 국제선 여객터미널에 정박후 "야 이놈들아 너희들이 사람들이냐?

 

승객의 생명을 담보한 네놈들이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한 나를 무엇으로 보상할 것이냐는" 한 아주머니의 절규가 비린내 풍겨오는 국제항 여름밤을 깨운다. 만약 우리 모두가 집채만한 파도를 견디지못하고 수장 되었다면 어제밤 분명 전 세계의 뉴스는 폭풍주의보를 무시한 선장이 무리하게 운항하다 침몰하여 300여명의 승객과 20여명의 승무원이 공해상에서 수장된 인재사고 였다고 앞 다투어 보도가 되었을것이고 인명을 경시한 뭐 어쩌고 하다가 며칠 지나면 잠잠해 질 것이다. 그기다가 1인당 선박회사의 보험금과 여행자 개인의 보험금등을 합쳐 어쩌고 했을것이다.아무리 생각해도 머리끝이 또 선다.


★생과사를 넘나들던 씨 플라워호.이 배가 5미터의 파도와 폭풍 그리고 해일을...
19일 필자 일행들을 내려주고 승선장을 떠나고 있다.


2005. 8. 21. 대다수의 대마도 한국 여행객과 산행객들은 이틀간 내린 강한 빗줄기 때문에 제대로 일정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었다.특히 산행객들은 어부체험과 낚시 그리고 한국인(조선국 통신사등)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유적지등의 관람으로 그 일정을 마쳐 씁스레한 심정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즈하라항의 입국장에서 출국울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너무 적게주는 반찬과 밥 때문에 더 있어라고 해도 머물지못할 상황)대기실에서 바라본 바다(내항)는 그날처럼 맑고 조용했으며 일본 국적의 비너스호가 승객들을 태우고 어디론가 떠나므로 필자 일행들은 성난 바다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14시경 출국수속을 밟기위해 승선표를 받고 조금 기다리고 있을때 가이드가 오더니 멀미약을 한옹큼 주면서 나누어 복용하란다. 19일 올적에도 배멀미를 하지않은 필자는 나머지 일행들에게 약을 건네었고 가이드의 말대로 무심코 파도가 좀(?)친다니 멀미약 먹을 사람들은 먹어라고 했다. 드디어 15시 선장의 "스탠바이"라는 음성이 확성기를 타고 흐르자 승무원들은 모두 정위치에 서더니 배는 천천히 미끄러지면서 항구를 벗어났다. 갈메기는 떠나는 이방인에겐 관심이 없는지 날게짓 한번 하지않은체 작은 어선의 깃봉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바다는 그때까지만 해도 너무 얌전히 있었다.


★어쩌면 21일 우리도 대마도앞 바다에서 이렇게 될수도 있었다....
대마도 입항을 목전에 두고 침몰하여 수장된 조선 역관사 수백명을 추모한 조선역관사 순국비. 그들의 영혼을 달래듯 비가 내리고...

선실앞 2대의 TV에서는 YTN의 어제 녹화된 뉴스가 나오더니 이내 축구경기로 전환된다. 출항한지 10여분이 지났을까 배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 하더니 이내 선장의 목소리가 확성기로 흘러나온다. 파도가 매우 높아 15노트로 운항하므로 부산항 도착시간이 예정보다 늦어져 6시3-40분경에 도착할 예정이며 필자는 순간 눈앞 이 캄캄해진다. 3시간30분을 더 가야한다니 흔들림은 점점 심해지고 창문을 두드리는 강한 빗줄기 그리고 멀리 흰 너울이 겹겹으로 포개어지고 사방은 캄캄해진다 좌.우로 흔들리는 선체는 산으로 오르듯 앞부분이 심하게 들리고 이어 사정없이 곤두박질을 친다. 아!우린 여기서 이대로 죽는다 말인가? 10분이 1시간보다 더 길다. 아이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살면서 그리고 산길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의 얼굴이 정말 스쳐간다. 멀미로 기력이 소진해진 사람들의 신음과 절규 그리고 바닥에 쓰러져 나뒹구는 사람들 체면도 유.무식도 없는 모든걸 포기한 상태다.의자에 앉아 있어도 발만들면 허공에 떠다니듯한 어지러움 이런 상황에서 침몰하면 구명동의가 무엇이 필요하며 수영은 또 어디에 쓰겠단 말인가? 필자는 토하지 않을려고 얼마나 애를 태웠던지 목이 부어오고 몸이 떨어지지 않을려고 앞의자를 잡고 실랑이를 치고 있으니 어깨가 부서질듯 아프다. 눈을 감았다. 차라리 집채만한 파도를 보지않고 가라 앉는것이 더 나을것 같은 생각이 쉴새없이 엄습한다. 이제는 되돌아 가기에도 길은멀고 아니 필자가 되돌아가자고 해도 이들이 되돌아 가기는 하겠는가? 살며시 실눈으로 옆을보니 아직도 대마도의 긴 섬자락이 남아있다. 다시 배는 솟구치고 바닥을 때리는 천둥같은 파도는 사람을 완전히 압도해 버렸다.고함치던 소리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력마져 떨어져 신음소리로 간간히 들려온다. 휴대폰을 켜고 화면을 보니 아직도 일본땅인지 통화불능 표시만 나오니 필자의 가슴은 애간장이 탄다. 순간 문자라도 되어야 한마디라도 남기고 가야하지 않겠나 싶어 감았던 눈을 다시 떠 화면을 보지만 시간은 너무도 더디게 간다. 2시간여를 항해 했을까? 다시 확성기에선 7시30분경이라야 부산항에 도착이 되겠단다. 이게 또 무슨 청천벽력인가? 두려움과 공포는 5미터의 파도보다 더 무섭게 사람들을 짓누른다.


★이렇게 아름다운 해변과 옥빛바다도 돌변하는 자연의 현상앞에 너무나 나약했다. 일본 100대 해수욕장으로 선정된 미우다 해수욕장의 전경

이곳을 오고싶지 않은 마음이 정말 있었는데 때늦은 후회도 해보지만 이미 사태는 최악 이제 필자도 지쳐가고 모든걸 단념한다. 그래 命이란 거두어 갈때가 있는거다. 제 아무리 발버둥쳐도 운명은 정해져 있을터 순응해야지 몇번이고 마음을 다잡아도 공포와 두려움은 가시지를 않는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일은 아무것도 없다. 1시간30여분을 남겨 놓았을까? 휴대폰 화면에 안테나가 서고 저 멀리 태종대인지 큰 섬하나가 멀지만 희미하게 보이는것 같다. 혹 파도가 아닌가 싶어 유심히 또 쳐다보니 무서운 파도는 아닌것 같다. 1시간20분만 제발 폭풍우 헤치며 온것처럼 배야!씨 플라워야!바다의 아름다운 꽃으로 큰 파도를 부드럽게 잘타고 넘어 우리 모두를 조국의 땅. 내 청년시절 피끊던 정열이 묻어있는 부산땅에 안착하게 하라. 너는 작아도 산처럼 너울거리는 대한해협도 용기있게 왔으니 이제 마지막 저 눈앞에 불빛 보이는 우리 땅 우리의 보금자리로 무사히 데려가라. 문자를 보낼려고 해도 어찌된 영문인지 딸애의 전화번호도 가물거려 보낼수가 없다. 드디어 외항에 정박해 있는 큰 배가 보이더니 태종대와 영도.중구 중앙동쪽 불빛이 너무도 반갑고 환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검은파도도 그리고 너울의 흰파도도 사라졌다. 방파제 끝 등대불빛도 폭풍을 헤쳐온 우리를 오래 반기며 서있다. 모두들 탄성과 고함이 터져나오고 4시간30여분을 죽음의 도가니에 몰아넣은 선장과 승무원들을 향한 한 아주머니가 울면서 내밷은 원성의 절규는 영원히 내 귓전에 맴돌것 같다.
필자는 사지에서 돌아온 대마도 여행(산행)기는 이 글로 대신 합니다. 다만 사진 아래에 약간의 설명은 올려 놓겠습니다. 정말 모든걸 잊고싶은 그런 심정 이니까요. 여러분 가급적이면 배는 타지 마세요 저는 푸른색만 보아도 이제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을것 같습니다. / 기산들



▲19일 12시10분에 히타카츠항에 도착하여 일본 출입국 심사를 기다리는 여행객과 등산객



▲ 히타카츠항 주변. 항구는 적지만 물도 주변도 깨끗함



▲북섬에 있는 미우라 해수욕장. 여기서 첫날먹은 도시락이 진수성찬 그 이후론...?



▲쓰시마주재 재일 한국인들이 모금하여 지은 한국전망대의 팔각정자. 이곳에선 가을 청명시는 부산이 뚜렷하게 보임. 조선시대 침몰하여 순장된 역관들의 순국비가 세워져 있음



▲위 팔각정 전망대 주변에는 우리 국화 무궁화가 재일 대마교민들에 의해 많은 수량이 식재되어 한창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무척 반가워서 얼른 한컷



▲팔각정 아래 주변풍광. 맞은편에 부산이 있단다.



▲신라 대충신 박제상이 순절한 어느 포구 멀리 산등성위로 풍력발전소의 바람개비가 돌고잇다.



▲신라국사 박제상의 순국비. 교민들의 손으로 세웠지만 시사 하는바는 크다.



▲그곳도 하늘은 높아가고 들녘엔 가을이 오고 있었습니다. 순국비 앞 들판

내일 다시 사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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