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죽는게 더 낫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간 4시간30분
좌현으로 기우뚱 거릴때 그리고 산을 오르듯이 배 앞부분이 하늘을 치솟을때 바닥을 때리는 천둥같은 파도소리와 곳곳에서 들려오는 외마디소리 그리고 기진맥진해 바닥에 나뒹구는 멀미한 사람들이 뒤엉킨 광경등은 분명 여긴 생과사만 존재하는 전장터 바로 그곳 이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엄습해오는 죽음에 대한 공포는 급기야 사람들을 자포자기 하게 만들고 차라리 공포와 두려움속에 정신이 있는것 보다는 오히려 배가 침몰하는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여러분은 그저 필자가 지어낸 말로 들리시지는 않는지요. 생지옥 이었습니다. 아니 아비규환. 생과사의 갈림길.풍전등화.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4시간30분을 죽음의 공포속에 떨어본 기억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4-5미터의 파도는 전장 100여미터의 씨 플라워를 초라한 일엽편주로 만들었고 300여명의 승객들은 너 나 할것없이 나뭇잎으로 변한 배안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부산항에 무사히 닿기만 기다리며 사지에 힘을주고 눈만 감고 있었습니다. 밀려오는 집채만한 파도를 바로 쳐다보기엔 인간은 너무 나약한 존재 그 자체 였습니다. 시간은 왜 그리도 더디게 가고 북섬과 남섬을 오가는 시간이 너무도 짧았던 대마도를 벗어나는것도 그날은 너무 길고 또 대한해협은 무엇이 그리도 길고 파도가 드센지 비바람치며 뱃전을 때리던 그 소리들이 환청이 되어 다시 들리고 밤새 필자는 산을 올랐다 천길 나락으로 떨어지는 씨 플라워호에 내내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아직도 이해가 가지않는것이 3-4미터의 높은 파고의 폭풍주의보를 통보 받았음에도 출항을 감행한 저의와 그리고 실제 바다에 나오니 4-5미터의 엄청난 파도가 이는데도 부산으로 꼭 가야하는 이유를 도착하여 들어보니 "5미터 이상의 파도가 칠줄은 몰랐다. 국제선은 무조건 승객을 싣고 떠나야한다"는등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말만 늘어놓는다. 제나라 국민의 생명을 아주 우습게 생각하는 이 얼간이 선장과 승무원들의 발상인지 아니면 한-일간 국제선 취항시 운항에 관한 규정이 그런건지...만약 그런 규정이 있다면 이 건 법이 아니라 악법이 아닌가? 부산 국제선 여객터미널에 정박후 "야 이놈들아 너희들이 사람들이냐?
승객의 생명을 담보한 네놈들이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한 나를 무엇으로 보상할 것이냐는" 한 아주머니의 절규가 비린내 풍겨오는 국제항 여름밤을 깨운다. 만약 우리 모두가 집채만한 파도를 견디지못하고 수장 되었다면 어제밤 분명 전 세계의 뉴스는 폭풍주의보를 무시한 선장이 무리하게 운항하다 침몰하여 300여명의 승객과 20여명의 승무원이 공해상에서 수장된 인재사고 였다고 앞 다투어 보도가 되었을것이고 인명을 경시한 뭐 어쩌고 하다가 며칠 지나면 잠잠해 질 것이다. 그기다가 1인당 선박회사의 보험금과 여행자 개인의 보험금등을 합쳐 어쩌고 했을것이다.아무리 생각해도 머리끝이 또 선다. 19일 필자 일행들을 내려주고 승선장을 떠나고 있다. 2005. 8. 21. 대다수의 대마도 한국 여행객과 산행객들은 이틀간 내린 강한 빗줄기 때문에 제대로 일정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었다.특히 산행객들은 어부체험과 낚시 그리고 한국인(조선국 통신사등)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유적지등의 관람으로 그 일정을 마쳐 씁스레한 심정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즈하라항의 입국장에서 출국울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너무 적게주는 반찬과 밥 때문에 더 있어라고 해도 머물지못할 상황)대기실에서 바라본 바다(내항)는 그날처럼 맑고 조용했으며 일본 국적의 비너스호가 승객들을 태우고 어디론가 떠나므로 필자 일행들은 성난 바다는 상상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14시경 출국수속을 밟기위해 승선표를 받고 조금 기다리고 있을때 가이드가 오더니 멀미약을 한옹큼 주면서 나누어 복용하란다. 19일 올적에도 배멀미를 하지않은 필자는 나머지 일행들에게 약을 건네었고 가이드의 말대로 무심코 파도가 좀(?)친다니 멀미약 먹을 사람들은 먹어라고 했다. 드디어 15시 선장의 "스탠바이"라는 음성이 확성기를 타고 흐르자 승무원들은 모두 정위치에 서더니 배는 천천히 미끄러지면서 항구를 벗어났다. 갈메기는 떠나는 이방인에겐 관심이 없는지 날게짓 한번 하지않은체 작은 어선의 깃봉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바다는 그때까지만 해도 너무 얌전히 있었다. 대마도 입항을 목전에 두고 침몰하여 수장된 조선 역관사 수백명을 추모한 조선역관사 순국비. 그들의 영혼을 달래듯 비가 내리고... 이곳을 오고싶지 않은 마음이 정말 있었는데 때늦은 후회도 해보지만 이미 사태는 최악 이제 필자도 지쳐가고 모든걸 단념한다. 그래 命이란 거두어 갈때가 있는거다. 제 아무리 발버둥쳐도 운명은 정해져 있을터 순응해야지 몇번이고 마음을 다잡아도 공포와 두려움은 가시지를 않는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일은 아무것도 없다. 1시간30여분을 남겨 놓았을까? 휴대폰 화면에 안테나가 서고 저 멀리 태종대인지 큰 섬하나가 멀지만 희미하게 보이는것 같다. 혹 파도가 아닌가 싶어 유심히 또 쳐다보니 무서운 파도는 아닌것 같다. 1시간20분만 제발 폭풍우 헤치며 온것처럼 배야!씨 플라워야!바다의 아름다운 꽃으로 큰 파도를 부드럽게 잘타고 넘어 우리 모두를 조국의 땅. 내 청년시절 피끊던 정열이 묻어있는 부산땅에 안착하게 하라. 너는 작아도 산처럼 너울거리는 대한해협도 용기있게 왔으니 이제 마지막 저 눈앞에 불빛 보이는 우리 땅 우리의 보금자리로 무사히 데려가라. 문자를 보낼려고 해도 어찌된 영문인지 딸애의 전화번호도 가물거려 보낼수가 없다. 드디어 외항에 정박해 있는 큰 배가 보이더니 태종대와 영도.중구 중앙동쪽 불빛이 너무도 반갑고 환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검은파도도 그리고 너울의 흰파도도 사라졌다. 방파제 끝 등대불빛도 폭풍을 헤쳐온 우리를 오래 반기며 서있다. 모두들 탄성과 고함이 터져나오고 4시간30여분을 죽음의 도가니에 몰아넣은 선장과 승무원들을 향한 한 아주머니가 울면서 내밷은 원성의 절규는 영원히 내 귓전에 맴돌것 같다. 필자는 사지에서 돌아온 대마도 여행(산행)기는 이 글로 대신 합니다. 다만 사진 아래에 약간의 설명은 올려 놓겠습니다. 정말 모든걸 잊고싶은 그런 심정 이니까요. 여러분 가급적이면 배는 타지 마세요 저는 푸른색만 보아도 이제 가슴이 철렁 내려 앉을것 같습니다. / 기산들 내일 다시 사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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