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지리산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동강 - 수철)


[둘레길 이야기]
지리산 둘레길 동강에서 수철
글. 그림 / 기산들 2009. 11. 7.

 

 엄천교를 건너면 동강마을을 만난다. 너른 공터에 차를 세우고 표지목을 따라 수철마을로 간다.

 이곳도 가을걷이가 거의 끝나가고 있다.  

 

 추수가 끝난 벼논에 가을갈이가 한창이다.

 올해도 생산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벼수매가 책정으로 농업인들은 또 한숨으로 긴 겨울을 보낼것 같다.

벽송사에서 송대마을 구간의 통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않는다.
오히려 이곳 동강마을에서 수철마을 구간은 약초와 산양삼등 특수작물 재배지가 왕산 자락의 길옆에
무수히 노출되어 있어도 길을 막은곳은 한군데도 없어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의 횡포인지 아니면 혹
현지 농업인의 과잉방어인지... 의구심이 드는게 사실이다.
필자는 산청군에 들어서면서 대나무를 엮은 울타리며 길 안내목이 잘 정비되어 있어 둘레길을 필자처럼
혼자 가는 사람들도 길을 못찾아 헤며는 수고를 덜어주는것 같아 마음이 편안하다.
 
오늘 구간은 물 맑은 엄천강과 한국전쟁 비극의 현장인 산청.함양 양민학살 추모공원, 그리고 가야의
마지막 임금인 구형왕의 설이 전해져 오는 왕산자락과 지리의 고봉들을 눈과 가슴에 담는 코스다.
참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먼저 주(週)만 해도 강 주변 논엔 결실을 목전에 둔 나락들의 황금이랑이 풍요롭더니만 추수가 끝난
빈들엔 스산함이 느껴지니 말이다.  골목 어귀에 주말을 맞아 객지에서 온 아들 내외와 상봉하는 노모 
의 모습에서 사랑과 평화가 무엇인지를 알것같다.
농로를 따라 가다 고추밭의 고추대를 정리하는 마을분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빈논에 내년 봄을 위해
가을갈이를 하는 모습을 보니 예전 황소에 쟁기를 달아 논을 갈아 엎던 아버님 생각이 절로난다.
조건없는 희생만 하셨던 부모님. 필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 어른같은 희생을 할 자신이 없다.  

 

  

  산청 함양 양민학살 추모공원으로 가는 길.

  동족간에 벌어진 한국전쟁은 국군이 양민을 통비분자로 몰아 처형했다. 사진 위 가 첫번째 희생자들이 발견된곳 

 고구마를 케는 아낙들의 손놀림에 곧 겨울이 시작됨을 알려 머잖아 저 논밭에 흰눈이 ...

  

 
농로끝을 나오면 군도 15호선과 만나 방곡마을로 간다.
이 길은 지리산의 뼈아픈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비극의 길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2월 7일 육군제11사단 9연대 3대대는 작전명 "견벽청야"로 양민 705명
을 공비들과 내통한 통비분자로 몰아 처형한다. 산청군 금서면 가현. 방곡마을, 함양군 휴천면 점촌.
유림면 서주마을 양민들이다. 따라서 지리의 둘레길엔 선홍빛 단풍보다 더 진한 아픈 흔적들이 도처
에 산재해 길손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왼쪽 겨드랑이에 고향 개울같은 계류를 따라 올라가면
우측 산사면에 근래에 조성한 양민학살 추모공원이 조성되어 잠시 들렸다 옷깃을 여미며 간다.
추모공원을 나오면 우측 잘 조성된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고 왕산 산행도와 지리산길 안내목을 따라
좌측으로 내려서면 계류를 만나고 징검다리를 건너 다시 표지목이 지시하는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약초 재배단지를 지나면 상사폭포로 가는 계곡초입에 들어선다.
여기서 부터 왕산자락과 필봉을 조망하며 쌍재 고동재를 거쳐 수철마을로 가게된다. 
 

   

  추모공원 위 소사나무 숲길 맞은편으로 내려서면 계류를 만나고 갈대사이 징검다리를 건너 아래 표지목 방향(좌측)으로 진행하면

  약초재배 단지가 나오고 곧 상사폭으로 오르는 계곡 초입에 들어선다.

 

 계류를 건너자 마자 만나는 지리산길과 왕산 방향 표지목

 

상사폭과 쌍재 고동재를 오르는 계곡 초입 크고 작은 폭이 아름답게 전개된다. 

첩첩산중이 시작 되려나 계곡엔 가을 가뭄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많은 수량의 계류는 아니지만 소폭
을 만들며 철철 흐르고 있다. 둘레길 탐사지만 사진을 좋아하는 필자는 계곡을 내려서서 소폭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인기척이 있어 고개를 들어보니 필자 윗쪽에 여성 한분도 계곡을 내려와 소폭을
담고있다. 해맑은 아이의 얼굴처럼 사물에 집착하며 셔트를 누르는 여인의 모습이 평화롭다.
이 여인도 혼자 사색하며 필자의 반대편인 수철에서 이 길을 걸어온 모양이다.
갸늘지만 긴 폭을 다시 만나고 낙엽이 물살에 떠내려와 모여 옹달샘을 만든 달력에서나 볼수있는
그림같은 소폭에 취해 필자는 한참동안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었다.
자연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보여줘 위대하다.
다시 잘 정비된 산길을 오르니 여름날 수량이 많으면 정말 대단할 것 같은 상사폭포를 만나 다시
계류를 내려가 폭앞에 섰다. 상사폭의 전설을 적은 문장이 그다지 명쾌하지가 않아 아쉽지만 한
여인을 사모하다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상사병으로 죽은 총각의 애절한 사랑만큼은 과히 짐작이
간다. 요즘도 목숨을 걸만한 사랑도 분명 있을거라 생각하며 계류의 징검다리를 건너 산자락에
들어서니 우측에 속세와 거리를 둔 사람의 거처가 보이고 짧은 임도를 만나 조금 오르니 지리산길을 
내어준 사람에게 고맙다는 글이 새겨진 문패를 보니 다시 길을 막은 벽송사-송대마을 구간이 아쉽다.
대나무 울타리를 지나 쌍재로 가는 언덕배기로 오르자 필자가 좋아하는 산주막집이 보인다.        

 

   왕산자락 계곡의 소폭들이 가을을 흘러보내고 있다.

 

 

 

  낙엽들이 모여 만든 옹달샘 모양의 소폭. 오늘 필자가 이 계곡에서 만난 풍광중에 으뜸이다. ▲

  한 여인을 사모하다 돌이 된 총각의 한이 서린 상사폭포. 한여름날 우천시 수량이 많으면 정말 거대한 폭으로 장관이 될듯하다. ▼

  

            상사폭포

       산길에서 만난 주막집.  막걸리 손두부가 적힌 종이를 내걸면 영업중이고 거두면 폐점이다.

       차 때문에 한사발의 유혹을 뿌리치고 쌍재에 올랐다.

  

           쌍재엔 각종 약초재배단지가 있다.

    

 

 

왕산과 고동재로 향하는 갈림길에 올라서자 해가 질려는지 점차 어두워진다.

오전에 비가 올까봐 망설이다 늦게 동강마을에 도착한 탓이다. 

고즈녁한 숲길에 수철마을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을 만나 필자가 갈 길을묻자 약 4km만 가면 된단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자 필봉과 왕산이 조망되고 그 아래 그림같은 다락논이 풍성했던 

짐들을 다 비우고 홀가분한 모습으로 겨울을 맞을 태세다. 

사방 조망이 좋다. 지리산릉들이 연무로 희미하게 보이고 산청 함양양민학살 추모공원의 위령비도

점으로 보인다. 산불감시초소옆 새품은 바람에 모든걸 다 날려보내고 대궁만 휘청거리며 스산함을 준다.

고동재를 내려서면서 택시 기사분의 전화번호를 수회 눌렸으나 전화를 받을수 없단다.

아뿔사 !

이대로 수철마을로 내려서면 군내버스는 끊어질것이고 택시 기사는 전화도 받지않고 ...

대략난감에 고민하다가 결국 여기서 차 있는 동강마을로 회귀할수 밖에...

어둡기전 큰길까지 가야한다는 압박에 걸음은 빨라지고 끝가지 가지못한 아쉬움은 다음 또 수철마을에서 

오늘 필자가 간 만큼 와야한다는 생각에 개운치는 않다.

허지만 지리산길은 늘 그곳에 있어 언제든 갈수 있으니 기다림과 설레임이 있지 않는가?

큰길에 내려서자 벼짚을 한짐 지신 어르신이 집으로 가신다. 

농촌의 어른들은 평생 저 지게에 인생을 지고 사셨다. 

저만치 동강마을이 보이고 들판에서 하루 일과를 끝마친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귀가를 서두른다.

"타실라요. " 날이 어둡고 필자가 지쳐 보였던지 트럭을 몰고 오시던 분이 탈것을 권유하지만 이 길 걷는것이

그 분에게는 호사스럽게 보일까봐 다리가 아파도 괜찮다며 가시라 하고 터덜터덜 동강마을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 수대의 자동차(같은 둘레꾼)가 지나가도 단 한대도 어디까지 가느냐고 묻지 않았지만 고된 노동으로

하루를 보낸 저분의 호의가 너무 크게 느껴져 감사하다. (2009. 1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