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치 앞을 내다볼수 없는 삶의 여정에서도 꼭 만나야 할 인연들은 아무리 늦게라도
만나게 되어 있다.
인연.
그것은 만날수록 그 깊이를 더해가고
그리고 최소한 변하지 않는 멋스러움으로
작은 인연이라도 귀하게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지리산 둘레길은 이런 아름다운 인연들이 끈이되어 서로의 마음들을 엮어 도란도란
타박타박 급하지 않게 가는 정담의 길이자 느림의 길이다.
제주 올레길도 자격없는 길손들 때문에 농작물 피해가 극심해 길을 차단시키는 안타까운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곳 지리산 둘레길도 벌써 지각없는 사람들 때문에 길가 농작물이
남아나지 않는다는 소박한 촌 할머니들의 말씀에 필자의 얼굴이 다 부끄럽다.
따라서 의탄리 의중마을을 출발한 길손들은 벽송사에서 멈칫해야 한다.
소나무쉼터 구간까지 농장주의 통제로 길이 막혀 있단다. (필자가 작년 답사싯점은 가능)
기천원도 못하는 호박이며 고추 가지 밤.감.호두를 아작내는 3류 트레킹족들이 져지르는
만행에 정작 둘레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해와 피해를 톡톡히 당하고 있는셈이다.
적조암 가는 다리를 건너면 동강마을 입구다.
자연미 고스란히 간직한 엄천강변 마을, 물빛도 자갈도 흐느적 바람에 몸흔드는 갈대도
어김없이 가을이 내려 앉아 파르르 떨고 있다.
코발트 빛 하늘에 그리운 얼굴들이 보이고 나락은 긴 가뭄도 밀어내며 황금빛으로 물들어
결실을 향해 쉼없이 달려간다.
강을 겨드랑이에 끼고 큰 산 지리산자락이 넉넉히 보듬은 동강마을은 예전엔 면사무소가
있어 지방행정 업무를 관장했던 곳이지만 지금은 한산하다.
그러나 다시 둘레길이 사람을 이어주고 그 사람들은 강 풍경과 넉넉한 인심을 담아간다.
이른 점심을 먹고 둘레길로 나선다.
오늘 테마는 둘레길 맛보기다.
첩첩산중에 길이나 지리산을 축으로 에둘러 가는 이 둘레길은 손에 잡힐듯 지리 산릉들이
무한정 일렁이며 다가 오므로 산 물결을 한없이 느끼며 길을 간다.
마음을 잠재우려 길을 나서보지만 웅장한 산릉의 파고 때문에 오히려 가슴이 더 뛴다.
가난했던 시절 허기를 달래기 위해 구워 먹었던 돼지감자꽃이 가을 하늘을 적시고
단아한 누이들은 바삐 가을로 가는 이 길에 취해 꿈길을 걷듯 둥둥 떠가고 있다.
구시락재
조선조 유학자 김종직이 지리산을 오르내리며 쓴 유두류록에 이 길이 나온다.
동강마을에서 운서까지 엄천강을 굽어보며 지리산자락에 살포시 적셔지는 감흥은
길손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게 한다.
구름이 흐르고
강물이 흐르고
그리고 술이 익어가면
보리고개 힘들게 넘긴 식솔들 허기 채우는 나락(벼)도 익는다.
구시락재는 풍요의 고갯길이다.
새끼줄에 메단 정갱이를 들고오는 장터에 간 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웃음이 이 길에 널리고
두볼에 연지찍고 쪽두리 쓴 새색시 탄 가마도 이 길을 따라 갔다.
누이들의 걸음도 사뿐사뿐 구시락재를 넘는다.
구시락재
운서마을
개짓는 소리도 하나 들리지 않는 깊은 물 속 처럼 고요한 산촌 담벼락에 가을옷을 입은 담장이가
울을 넘는다. 가을볕에 시든 토란잎이 어릴적 우산 생각이 난다는 누이는 추억의 기억을 다시
남기고 구름과 안개에 젖어 한폭 수채화가 되는 운서마을의 새벽 풍광을 보지 못한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산돌아 만나는 풍경들은 삶의 여정처럼 아름다움과 비애 그리고 그리움들이 되어
활동사진 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하늘아래 동리 그 아래로 황금 물결이 된 다랑논
미발굴된 유적지로 보이는 펜션촌
굽돌아가는 길 옆으로 콰이강 다리를 닮은 낚은 다리는 기억마져 아련한 추억속 모습이다.
지리산 둘레길은 낮선길이 아닌 우리 마음속에 오래 전 부터 자리 잡아온 옛길이다.
미약하고 나약한 사람들도 이 길에 서면 모두가 건강한 모습으로 길을 간다.
자유. 평화.여유가 공존하는 길,
고운 인연들이 만나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길,
그래서 지리산 둘레길은 고향같은, 어머니 품 같은 길로 이어질 것 이다.
그리고 필자에겐 이 길은 더 없이 그리운 길이되어
800여리 이길을 계속 걸어갈 것 이다.(2009.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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