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산길에 나선 김해 아우와 개양 오거리에서 합류하여 생초 나들목을 나오니 오랫만에 푸른 하늘이 보인다. 함양군 마천면 칠선계곡 의탄교 입구 폐교된 의탄분교에 주차를 한후 군내버스를 타고 마천면 소재지까지 가면서 기사분께 물었다. 이 차가 남원시 산내면 매동마을까지 가느냐고 군계인 마천면소재지 까지만 이 차는 가고 그기서 다시 인월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한단다.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기사분들의 표정이 맑은날 다시 찾은 지리산길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이른 아침 남원시 산내면 매동마을은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다.
매동마을을 돌아 오르면 토종 소나무숲이 반긴다. 등구재로 가는 이정표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다 마침 밭일을 나오신 마을분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태양열로 전기를 일으켜 동물들의 접근을 막는 시설물이 신기해 몇번을 쳐다보다 길을 재촉한다. 역시 시멘트길은 열기로 뜨겁게 달구어져 얼굴까지 화끈거린다.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얼굴이 잘 어울리는 계절에 맞게 지리산길은 여름엔 건강한 구릿빛 얼굴을 진하게 만들수가 있다.
시멘트길의 끝점 이정표를 지나자 솔숲 오솔길에서 도란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해맑은 미소를 띤 아가씨들이 정담을 나누며 이 길을 가고 있다. 김해 아우가 어디서 왔느냐고 묻자 항도 부산에서 왔단다. 땀으로 피곤해 하는 그들을 위해 길옆 옹달샘에서 물 한바가지를 퍼 기를 불어 넣어주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여유롭게 걸어라 한후 등구재를 향해 우리도 부드러운 숲길을 간다.
지리산길은 밀포드나 알타이 실크로드처럼 경이로운 길은 절대 아니다. 무지하게 지금은 자유로운 길이지만 지리산길은 뼈 아픈 고통들이 신음하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대성골,뱀사골 그리고 선녀굴로가는 능선 곳곳에 아니 지리산 골마다 아픈 상채기가 남아 있다. 대장정 국토순례길이나 지리산종주길이 나름의 참 의미가 있듯이 지리산길도 더위와 인내를 시험하는길도 된다.
7-8월엔 솔숲에 얼음장 처럼 차거운 계곡을 거슬려 오르는 산행을 꿈꾸는 산메니아들이 대부분 이겠지만 그런 호사스런길을 잠시 접고 길을 가다 뙤약볕도 만나고 아름드리 나무밑 의자도 만나 숨을 고른후 아득하게 느껴지는 고즈녁한 산길을 줄창 걷는것도 한여름 더위를 이기는 피서의 한 방편이 아닐까? 따라서 지리숲길은 여행의 맛과 등산의 멋을 동시에 느낄수 있는길이 아닐련지 ...
등구재 하황마을로 가는 임도에서 다시 사람들을 만났다. 왜 그 아가씨들은 기척이 없을까? 포기하고 말았을거라는 후배의 말에 무지하게 더운 날씨를 탓하며 계단식 논들이 짙은 초록으로 채워져가는 논길에서 아우는 고향의 추억에 젖는듯 참 아름다운 길이라 탄복한다.
농로를 걸으며 고향의 향수에 젖다가는 아우의 뒷 모습이 강둑 버드나무를 닮았다.
사방댐, 산사태를 막기위해 수십억원의 공사비가 소요된 사방공사 현장, 맑은 계류가 흘러 여름엔 발목 적시고 가기에 딱이다.
아우와 잠시 발목을 담구고 쉬기로 했다. 맑은 계류를 그냥 지나치기에 계류소리는 너무 청아하다. 발목이 아려온다. 접질려 완쾌되지 않은 발목에 계곡의 물은 진통제가 되고 참 오랫만에 아우와 담소를 나누며 언제나 우리는 소통되고 있음을 오늘도 느낀다. 함께했던 "진양기맥길.낙남정맥의 시작길과 고향길 그리고 밤길 산객을 실어 나르던 낙동정맥길"을 추억하며 일어선다.
지리능선이 아득히 구름에 가려 그리움이 된다. 자신을 찾는 이 길은 경쟁없이 자신을 다스리며 걸을수 있어 행복한 길이다. 뚜렷한 산줄기 저 너머 희미한 마루금을 따라 오르면 민족의 영산 지리산의 우두머리 천왕봉이다. 이 길은 지리 트레일의 시작이지만 언젠가는 지리산 800리를 향해 에둘러 갈 것이다.
상황마을 위 계단식 들판. 진초록의 나락은 여름내내 비와 퇴약볕을 맞으며 풍요의 가을을 향해 부지런히 갈것이다.
등구재 오르기전 흥건히 온몸을 적신 땀 식혀 가라는듯 느티나무 아래 평상이 자리를 건네 아우와 걸망을 벗고 물 한모금씩을 나눠 마신다. 폭염이다. 폭염은 농부의 발소리 만큼 나락(벼)을 살찌우고 가을걷이때 실망을 주지 않는다. 급속도로 변해가는 환경탓에 청정 농토도 새로운 바이러스들에 의해 황폐해져 가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치솟는 농자재값 그기에 대비하여 오르지 못하는 농산품 이래저래 우리네 농촌은 실의에 찬 한숨과 주름살만 매년 늘어간다.
비오던 날 천년샘(玉泉)을 가르켜 주시던 어르신 내외가 인기척에 드시던 점심을 물리고 시원한 막걸리를 권하지만 간밤 과음탓에 아우에게만 권하고 샘에 냉장된 우무가사리를 시켰더니 노친께서 설탕을 너무 많이 타서 먹기가 거북하지만 도리가 없다. 소금을 타서 대충 마시고 냉장고가 아닌 자연 냉장된 막걸리와 맥주가 담긴 고무통을 보면서 무더운 날 이 산길을 가는 나그네들의 목젖을 무던히 적셔 줄것이라 생각하니 여기가 바로 지리산길의 오아시스다.
다시 지리 천왕봉 줄기가 구름을 이고 길손을 손짓한다. 청정한 1구간 이 산길이 끝나갈 무렵 딱 한곳 축사의 분뇨 냄새가 거슬리지만 잠시의 고통이니 참을만하다.
땡볕을 받으며 걷는 지점들이 있어 긴바지보다는 짧은 팬츠가 제격이겠고 물은 충분히 준비하지 않아도 길 중간 2곳에 샘이 있어 물통만 준비 하면 갈증은 충분히 해소된다. 걷는 시간은 중늙은이 걸음으로 4시간10분 정도 소요 되었으니 5시간이면 충분하다. 점심은 창원마을까지 가야 가능하므로 중간에 허기를 채울만한 간식을 준비하면 좋을것 같다.
준비물을 대충 적는다면
아주 간편한 등산복장<가급적 청바지는 삼가, 땀 흡수가 잘되는 기능성 옷이 용이> 걸망. 모자는 필히 간식 <빵.과일.과자류등> 신발은 경량의 등산화나 조깅화 카메라 기타 필기도구
우리는 이 길위에서 약속을 했다. 800리 지리산길이 생기면 다시 이 길위를 걸으며 소통하자고...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산길 함께 가자고 ... 참 아우야 ! 얼굴타도 괜찮다. 산 가는 넘은 얼굴이 좀 타야 산타는줄 알아 그날 아우는 걸어면서 피부가 많이 탈까봐 무척 걱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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