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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마여행

44번 도로에서 부르는 노래

 

쪽빛 바다와 사는 친구 태호야 !

눈만 뜨면 가득 바라보이는 집앞 바다를 보아도  강풍에 노도 같은 파도가 방파제를 삼킬듯이 덮쳐 올때도 너는 언제나 묵상에

잠겨 1000여일도 넘은 긴 고통의 시간들이 머문 그 곳 강원 두메를 그리워 한다고 했다. 

그때마다 나는 혼자 이곳을 다녀간 죄책감에 함구하고 기약도 없이 널 그곳으로 데려가겠다는 말만 되풀이 한후 한번도 이를

실행하지 못해 정말 미안하구나.  이번에 나는 7번국도의 여름을 보고 네가 이동정비 업무로 수백일을 보낸 은빛 고운 모래밭

이 있던 양양에서 44번 도로를 타고 한계령을 넘어 인제를 거쳐 소양강을 만나 신남면 어론과 거리고개 장남과 두촌을 거쳐

홍천을 경유하여 원주를 지나 내가 사는곳으로 내려 갈 것이다. 

 

강원은 이 세상의 여름이 머물기에 참 좋은곳이다.

푸른 동해 바다가 더위를 식혀주고 그림보다 더 그림같은 설악의 준령이 영봉마다 여름을 걸어서 쉬게 한다.

그러나 올해 2007년 강원(영서)의 여름은 아픔 그 자체다.

몇년째 이곳은 여름이면 물동이로 들어붓는듯 폭우가 쏟아져 아름다운 추억의 국도 44번 도로를 군데군데 형체도 없이 뜯어

놓고 이를 치유할 시간 과 여력이 부족한건지 20%의 공정도 넘기지 못한 공사구간이 도처에 널려 있어 또 다시 이 여름에

다가올 폭우에 흔적도 없이 떠내려 갈 것을 생각하니 이 땅 민초로서 안타까움과 애처로움이 함께 묻어난다.  

 

 

▲ 오색지구 수해복구 공사현장  

 

구름도 산마루에 걸려 쉬어 간다는 남설악 한계령을 오르기 전 네가 무던히도 자랑하던 오색약수터가 있는 오색리 관광구역은

몇 년째 계속되는 복구 공사로 인적마져 뜸해 화려했던 명성은 오늘 옛 이야기가 되었구나.

지지난해 겨울 등반시 빙하가 물줄기를 감추었던 여인의 무엇을 닮은 여심폭포 와 점봉산이 눈앞에 다가오는 흘림골과

용소,주전,십이폭포가 있는 주전골도 산사태에 무너져 내린 토사들로 골 의 형태가 사라져 가슴이 져려온다.

돌고 또 돌아 힘겹게 올라가는 한계령을 가기전 끊어진 도로의 보수공사가 한창 이지만 이내 닥쳐올 폭우를 견디기엔 애당초

틀렸다. 이런 길손의 마음을 아는양 한계령엔 스산한 바람과 침묵이 흐르고 있다.

 

 

 

▲ 한계령으로 가는 길. 수마가 할퀴고 간 자리 언제 복구가 될련지...

 

  

▲ 옛 오색령인 한계령 

 

 

"저 산은 내게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

 

  

한계령에서 숨을 고른후 나는 다시 추억이 뭉개구름 피듯하는 우리가 그토록 가슴에 담아 기억하는 인제를 향해 간다.

소양강으로 가는 물줄기 중계천도 쓸려 내려온 돌덩이들로 계곡마져 없어져 또 다시 많은비가 쏟아지면 더 큰 재난이 몰려

것이 분명 하지만 달리 어떻게 할 방도가 없는지 그대로 하늘만 쳐다보고 방치한것 같아 가슴 저리도록 안타깝다.

예전 훈련소 배출대서 "인제가면 언제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다"라며 군생활의 고통을 대변해 주던 강원 인제와 원통은 북의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답게 번잡하고 내설악의 아름다움과 이슬처럼 싱그러운 신선한 천혜의 산지를 가져 웰빙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난건지 이제 도회의 면모를 완전히 갖추었다. 

따라서 옛 정취에 취할려는 길손의 추억은 해가 갈수록 희미해지니 세월의 무상함에 괜시리 서글퍼진다.

  

   

바닥 드러난 소양강.

내린천 맑은물과 합류되어 발목 길게 드리우던 군축교는 인제대교에 밀려나 서 있기도 버거운지 연신 검은 띠를 두르며

회상에 잠겨 있다. 예전 전설로만 여겨졌던 38교(木橋)는 시간의 유속에 떠내려가고 그 자리엔 현대식 38교 건립공사가

추억을 줍는 길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 옛날 전쟁이 끝난후 수몰되기전 3군단 사령부가 있었던 저 편 관대리 터 엔 잡초만 무성하고 희뿌연 날씨속 항공대의

활주로 한 자락만 누워 그때를 기억해 준다.

푸르다 못해 시퍼렇게 보이던 수량 많았던 소양강.

오늘 삼팔교 휴게소에서 바라보는 소양강은 그때 우리와 함께 했던 물빛 고운 푸른강이 아니다.

  

 

▲ ▼ 인제 38선  소양강 38교 가설현장

 

 

산중 시골 마을 이였던 인제군 신남도 그 규모가 커져 몰라보게 변했다.

한계령에서 줄기차게 꼬부랑길을 만들어 오던 44번 도로는 원통으로 가는길과 합류되면서 4차선으로 변한다.

가을 코스모스가 진입로에 피어 아름다웠던 58부대 아래 초라했던 어론초교는 실내 체육관을 갖출 정도의 현대식 교정으로

탈바꿈 되어 자취마져 희미하다. 초병들이 24시간 근무를 서며 출입자를 감시하던 오계탕<선녀 5명이 멱을 감았던 자연 탕>

가는 불편했던 소로길은 포장이 된 큰길이 되어 어리둥절 하게 한다.

5-6명이 다니던 산골 분교장은 아직도 그 산속에 있을까?

발 한번 들여놓지 못하고 먼 발치서 쳐다만 보고 가는 길손의 발걸음이 무쇠가 되는것은 여기 우리의 젊은 그 시절이 오롯이

남아 떠 오르기 때문이 아닐까?  어론의 박상사네 와 박중사네도 다들 이곳에서 터 잡고 잘 사실까?   

참 궁금하고 그리운 얼굴이다.

 

 

 

옛 부대 앞이다.

눈물젖던 거리고개에 다시 섰다.

만남 보다는 이별이 더 익숙해져 그때 우리는 이 고개를 눈물고개라 불렀다 .

4차선에 밀려나 한 귀퉁이에 쳐 박혀 숨죽이며 드러 누운 이 작은 고갯길이 남아 있지 않았다면 눈물이 펑펑 쏟아졌을

한 많던 고개. 그 고개마루에 오늘 길손이 다시 섰다.

30년도 훌쩍 뛰어 넘은 그때 모두들 주눅들어 이 고개를 넘어와 모두 눈물 흘리며 넘어간후 아직 한번도 이 고개를 찾아온

적이 없는 전우들아 ! 모두 어디에 있는지 오늘 너무 보고싶구나.

정갑규.하태호.전해수.김오태 병장. 하사 고일산. 상병 이순선. 상병 하홍대. 그리고 부관. 참모들

그 외 73-76년을 함께했던 내 전우들.

이제 얼굴마져 희미해져 가고 이름 또한 기억나는게 몇명 되지 않으니 너무나 안타까워 더욱 보고싶다.

군가소리 골을 휘돌던 거리고개엔 납량을 향해 떠나는 차량들의 굉음을 뒤로 한체 너희들 숨소리가 들려올듯한 두촌을

향해간다.

  

 

 

▲ 거리고개. 전우들의 군가소리가 아직도 들리는듯...

 

 

옛 거리고개 사진 위.아래. 좌측 옆으로 44번 새 도로가 생겨 한쪽으로 밀려났다.

 

 

사라졌다.

모두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빈 들판에 홀로 서 있는듯 낮설다.

수마는 옛 기억마져 송두리채 앗아가 바렸다.

길손을 기억해 주던 유일한 명자네 모친도 엄청난 폭우<셀마로 기억>로 황토 급류에 휩쓸려가 이 세상에 안 계신다.

아침이 되자 마을의 집들과 사람들이 간밤에 쓸려 내려가고 집들마져 모두 사라져 빈 터만 남아 있었단다.

그리고 그 후 황량한 이 터 엔 낮선 사람들의 주택 두어 서너채만 새로 지어져 그때의 상흔마져 사라졌다.

예전 우리가 향수를 달래던 순영씨 모친이 운영하던 주막집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터는 새 도로에 편입된것 같고 그 외 

살아 남은 사람들은 수마가 무서워 분명 고지대로 이주를 하지 않았을까?   

 

 

 

수석같이 아름다운 큰 몽돌이 개울에 박혀 맑은 도랑물과 입맞춤하던 주막집 앞 샛 도랑도 급류에 사라져 그곳엔 6-7m가 넘는

큰 도랑이 생겨 추억은 어느새 종적을 감춘다.

예전 5분대기조들이 시니브로 수색길에 오르던 독가촌으로 가던 동구밖 솔숲좋던 그 길은 2차선 포장도로가 생겨 더 생소하고

분명 무언가는 남아 있을거라는 작은기대로 다가간 길손에게 허황한 빈 터만 보여준것이 내심 미안한지 솔숲 끄트머리에

말나리와 해바라기가 환하게 웃어준다.  목젖 젖는 설움에 오래 머물수 없어 홍천을 향해 일어섰다.

 

 

 

모처럼 동행한 상관이 술집 여인과 사라져버려 그 상관의 술값에 볼모가 된 적이 있는 철정도 이제 옛 모습이 아니다.

몇년전만 해도 낮익은 건물과 상점들도 있었지만 이젠 그때를 찾기란 쉽지가 않다.

그래도 옛 모습은 아니지만 홍천강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여롭게 흐른다.

자갈밭엔 피서길에 나선 가족들의 텐트도 여러개 보이고 "흐르는 강물처럼"은 아니지만 피래미를 낚는 낚시인과 아이들의 멱

감는 풍광은 매미소리 귀 멀게하며 미류나무 줄지어 서 있었던 그 옛날 고향의 강가와 그 모습이 같아 이곳도 추억의 장이

되니 잠시 머물고 싶다.  허지만 계속되는 희뿌연 날씨탓에 맑은 사진을 얻을수 없어 세삼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느끼는

순간이다. 비닐봉지 하나라도 함부로 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은 이제 정말 자제 하시기를 부탁드려 본다.  

우리가 사는 정말 아름다운 지구,  환경 파괴의 주범은 바로 우리들 입니다. 

특히 자신의 건강만 생각하며 물병들고 산 오르다가 하산할때는 빈 물병도 무거운지 슬그머니 놓고 가는 3류 얌체 등산인들

"양심을 버리고 가시면 마음이 개운하신지"  이 기회에 묻고 싶은 심정이다. 

낙남.낙동.대간길에도 단체로 쓰레기를 버리고 가시는 분들 !

당신들은 대간 줄기는 물론 이 땅의 맥을 탈 자격이 전혀 없는분들로 사료 되므로   

괜히 폼 잡을려고 달리기만 하시지 마시고 지금이라도 그만 두시는게 자연보호에 도움이 됩니다.      

 

 

강원도의 강냉이 맛이야 예전부터 알아 주는 것 이지만 이 집 홍천강옆 찰옥수수는 특별하게 맛도 맛이지만 강냉이와 감자를 

파시는 주인 최경윤씨의 마음이 더 찰지고 맛이 있다고 표현을 해야겠다.

경북 영주가 고향이시라는 이 분은 아마 강원도가 좋아서 시집을 온건지 아니면 부군과 함께 찰옥수수와 감자 농사를 짓기위해

이곳으로 이주를 해 온건지 아무튼 홍천강을 본후 이곳 포장 상점에 들리자 김이나는 강냉이 한자루를 시식 시킨다. 

강냉이 안먹기로 소문난 필자도 찰지고 감칠맛에 생옥수수 2포대를 샀다. 그리고 강원도 감자도

혹 44번도로를 타고 가시다가 품질좋은 강냉이와 감자를 원하시면 이 분 간이상점을 찾으시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것입니다.

필자가 120%책임을 진다면 믿어시겠죠.

그 분의 말씀. 혹 기자세요. 인터넷 모 山지 와 인터넷 신문의 객원기자라고 하자 " 우리 강냉이 맛있다고 글좀 써달라는 모습이

흙과 살아가는 유기농 재배에 골몰하는 고향 친구들의 순진한 얼굴을 닮아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전국 어느곳이던 택배가 가능하다는 이 분의 가게는 홍천강가 44번 도로의 홍천 방향에 있다.  

 

 

 

한번 더 약속해야겠다.

정말 내년에는 절해고도 욕지에서 투병하는 친구를 데리고 원주에서 홍천을 거쳐 두촌.장남.거리고개. 어론.38교 인제를 거쳐

한계령을 넘어 양양을 지나 7번 국도를 향해 가고싶다.

필자가 해줄수 있는것.

그리도 가 보고싶어 하는 저 곳을 오매불망 그리워하는 친구의 작은 소망을 내년에는 꼭 이뤄지게 하고 싶다.  

그리고 희뿌연 그림이 아닌 진정 고산 강원도와 내설악 청정 인제 다운 그림을 얻고싶다. 

나는 오늘부터 또 밤마다 그곳을 향해 발길을 들여 놓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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