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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마여행

백제의 고도 부여 궁남지

百濟의 古都 부여 "궁남지".
[글.사진 / 기산들]

 

 

떠나 보낸 아쉬움이

가신 그대 뒷 모습이 사무친 그리움이 되어   

늘어진 실버들 가지마다 이리도 피멍으로 달려 있는줄 이제사 알았습니다. 

떠나 보내는 마음뒤론 되돌아 올 기약이 언저리에 남아

날마다 귀 대며 기다리지만 한번 간 마음은 천년이 지나도 감감 무소식 입니다.  

옛 사람 하나도 흔적없는 궁남지엔

님 그리는 마음만 하늘에 닿습니다.

서러운 그리움만 물위에 뜹니다.

 

향 짙은 불교문화의 터에 뛰어난 예(藝)와 기(機)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백제.

감동과 영화 그리고 비애가 묻어나는 백제의 향기가 면면히 이어져 오는 고도 부여를 찾아간다.

부여하면 우리는 부여 시가지 북쪽에 위치한 부소산을 떠 올리게 된다.

백제여인의 절개가 꽃으로 핀 낙화암.

그리고 애잔한 사연을 간직한 백마강과 고란사.사자루.궁녀사'반월루.부소산성등 백제의 체취를 느끼는 요람이 부소산이다.  

허지만 무왕재위시 왕궁의 남쪽 별궁에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연못인 "궁남지"를 놓치면 안된다.

옛 별궁지의 정원인 궁남지는 연못 가운데의 섬과 아늑한 정자 포룡정.

그리고 목교가 당시 정원의 멋과 왕의 낭만이 묻어나 애틋하다.

늘어진 실버들 가지에 그날의 사연들이 맺힌듯해 더욱 발걸음 머무는 궁남지.

오늘 그 궁남지에 머물다 가자.   

 

 

궁남지는 부여군 부여읍 동안리 117번지에 소재한 사적 제135호로 지정된 인공조원이다.

삼국사기에 사비도성 별궁내 조성한 못으로 사방 20여리의 물을 끌여들이고 무왕 35년(634년)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적고 있다. 이웃 중국의 서태후 인공조원인 이화원에 비하면 협소하다고 느끼겠지만 멋으로 따지자면 이화원을 능가한다.

궁남지를 보면 당시 삼국중 주거 및 정원 문화가 가장 뛰어나지 않았을까 추정이 된다.

 

 

옛 선인들의 아름다운 노력에 미안해서일까?

백제의 후예인 부여인들은 궁남지 주변엔 궁남지 보다 몇배나 더 큰 인공 연지(蓮池)를 조성해 백제의 혼을 피우고 있다.

숨죽이며 가다리다 밤 부터 새벽 동이 터 오를때 까지 그들의 혼은 일제히 꽃으로 핀다.

피멍이 되어 

환희로

설움

울분 

그리고 희망으로 다시 핀다.

  

 

 

환희로

 

 

 

피멍으로

 

 

그리고 어두운 장막을 뚫고 다시 희망으로 핀다.

 

 

 

 

 

해마다 이 맘때면 궁남지엔 백제의 혼을 부여인의 마음을 담으려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밤에만 피는 연(蓮)이 있다는걸 이곳에 와서 처음 알았다.

그리고 새벽이 오기가 무섭게 달려갔다.

무슨 응어리가 그리도 많은지 아니면 한이 서린건지 대낮에는 모두 입 다물고 있더니 저렇듯 활짝 피어 뜬눈으로 지새며

종종 걸음으로 달려왔을 저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

궁남지는 길 떠나온 길손뿐만 아니라 연을 만나려온 전국 사방팔방 사진쟁이들 까지 불러모아 한바탕 잔치를 벌인다.

무리지어 도열한 값진 사진기와 렌즈에 주눅이 들어 단렌즈의  필자 손이 오그라든다.

그러나 자찬이지만 이쁘게 잘 나왔네 뭐.

 

 

  

궁남지에 오니 처음 보는게 너무 많다.

밤에만 피는 야화연.

그리고 뽀얗고 노란연.

태어나서 처음 보는 사람들.

그리고 생전 처음 먹어본 홍어찌게.

 

 

 

 

 

아름답다.

데리고 온 내가 반했다.

꽃이 아니라 그림이고

그림이 아니라 혼불이다.

홍연의 요염함.

야연(夜蓮)의 색시함.

가시연의 오만함.

궁남지엔 여인들의 형형의 교만함이 있다.

 

 

 

 

 지금 백제의 고도 궁남지에 가면 백제인과 부여사람들의 아름다움이 연으로 핀 세상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주후쯤엔 가시연의 황홀한 자태에 흠뻑 취해 갈수 있을것 같습니다.

 

가는길 : 35번 고속국도-서대전-논산-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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