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천지에 산 오름이 산을 만나려 가는길이 어디 한곳이라도 녹록한곳이 있었던가? 그리고 산이 아름답지 않은곳이 또 어디 있던가? 오래 기다려주는 연인처럼 때론 마음을 고요히 하여 평정심을 갖게하고 삶을 더욱 빛나게 하는게 바로 우리가 늘 만나는 산 이다.
그러나 오늘은 내가 늘 그리는 산이 아닌 섬으로 가고 싶었다. 그것도 남쪽 옥빛바다에 두둥 떠 있는 소매물도로 ... 1항차 첫배는 가고 오전11시 2항차 배다. 오후 3시20분 뭍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배를 타기 위해서는 2항차 배는 꼭 타야한다. 가속페달에 힘을 주며 10시50여분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해 왕복 승선권을 손에쥐고 뜀박질하듯 배에 올랐다. 그런데 갑판위에 올라서자 갑자기 연안인데도 파도가 드세지기 시작하더니 강풍이 흰너울을 자꾸 만든다. 불현듯 지지난해 여름 생사를 넘나들었던 대마도에서의 귀국길이 악몽으로 떠 올라 출항3분전 하선을 감행하고 환불을 받았다. 드센 바람은 태풍 크로사의 영향이었고 상상속 너울의 공포에서 벗어나 태고적 신비가 살아 있는 섬 거제로 향한다.
옛 거제대교는 참말로 한산하다. 어느새 사람들은 새다리로 옮겨가 오래된 헌 다리는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발목을 간지르는 파도도 연로한 다리가 위태하고 안스러운지 세게 몰아치지도 못하고 살짝 건드렸다가 물러난다. 1018번 지방도엔 도열한 코스모스가 뭉개구름을 불러 모우지만 강한 해풍에 도래질만 하더니 이내 어지러운지 고개를 떨군다. 임도가 정상 부근까지 이어져 흠집난 거제의 진산 계룡산은 언제 보아도 안스럽고 몇해전 산행길이 수도자의 길로 느껴지던 노자산과 가라산의 부드러운 능선엔 성큼 가을색이 드리워지기 시작해 자연의 섭리를 거부할 그 무엇도 존재치 않아 자연도 삶도 다 무상이 아닐까?
바람 드세게 불어도 오랫만에 해금강을 한번 가보자. 발목을 담근 천장산의 여유는 거센 파도도 잠재울까? 길가다 그만 실망 하나를 주워 담는다. 해금강 가기전 전망대 아래 우리들 눈앞에 푸르게 다가오던 꿈속 같았던 언덕배기가 사라진 것이다. 혹 지나쳐온걸까 사방 두리번 거려보지만 저곳이 틀림없다. 푸른 초원은 사라지고 별장인지 펜션인지가 들어서서 나그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사람들은 돈과 무슨 철천지 웬수가 졌길래 낮선 이국의 푸른 초원의 언덕배기보다 더 푸르고 아름답고 평화보다 더 평온하던 저곳을 형체도 없이 사라지게 했을까? 이런 나그네 애간장 타는 마음을 아는지 너울도 5개의 작은섬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오도(五島, 필자가 작명. 실제 이름은 모름)를 삼킬듯이 흰 거품을 뿜어내며 분을 삭이지 못하고 연신 덤벼든다.
노자산과 가라산이 길 가라 등을 민다. 처얼썩 뭍에 부서지는 포말마져도 가던길 가라하니 일어선다. 할머니가 파시는 한옹큼 작은 고동속에 바다가 있다. 짠내음 눈까지 풍기게 하는 쪽빛 파도소리가 나그네 귓가에 들려 얼마전 요절한 욕지 친구가 사뭇 그리워진다.
해금강, 섬과 기암사이로 불타듯 해가 떠오르던 그날 새벽 해금강의 일출은 설움의 덩어리고 분노였다. 탄탄대로, 거침없이 헤쳐 나갈것 같았던 불혹의 시절. 그때 처음으로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히는 좌절을 맛보고 통곡했다. 따라서 내게 해금강은 가슴속 시퍼렇게 멍이든 눈물의 바다다.
대낮에 풍랑주의보로 유람선마져 발이 묶이고 해금강 바다는 마치 세상을 등지듯 미친듯이 날뛰고 있다. 물 속 바위가 부서지도록 쉴새없이 때리고 또 때리며 하루를 다 보낼셈으로... 오래 머물면 서러워질것 같아 이름좋은 왕조산을 향한다. 오늘은 그때처럼 설움은 두고 가지는 않는다.
왕조산, 애절한 전설이 있을것 같은 왕조산은 산행길 보다는 산책길이 잘 어울리는 산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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