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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마여행

백제의 흔적을 따라 "관촉사와 왕릉 그리고 정림사지

百濟의 흔적을 따라 " 관촉사와 왕릉 그리고 정림사지".
[글.사진 / 2007. 8. 25. 雲岳.기산들]

 

2년전 임관한 아들과 잠시 들렸던 논산시 관촉동에 소재한 보물 제218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이 있는

관촉사가 길손의 백제 흔적 기행의 시작점이다.  삼국사기의 건국실화에 의하면 백제는 BC 18년 고구려 시조 "주몽"의 아들인

온조가 그의 형 비류와 함께 남하하여 지금의 서울인 위례성에 터를 잡아 나라를 세웠다 전하고 또 한편으론 고구려의 유민들이

뜻을모아 세웠다는 설도 있어 삼국의 건국은 언제나 설화다.

처서가 훨씬 지났는데도 여전히 날씨는 찜통이다. 논산나들목을 나와 직진하다가 우회전하여 공주방면 "건양대학"방향으로

간다. 삼거리 맞은편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일주문으로 들어서니 길옆에 조성한 연밭엔 연꽃은 무심히 다 지고 주막집 앞

목화가 활짝 피어 곱다. 일주문안을 늠늠히 걸어가던 아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땀은 등줄기를 쉼없이 타고 내려 어느새 상의는 다 젖었다.

고목에서 내뿜는 향은 고즈녁한 계단에 내려앉아 불심 피우다 돌아가는 속세의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초파일도 아닌데도 

대웅전 앞에 주렁주렁 달린 등(燈)이 의아해 사방을 둘러보니 불사(佛事)접수등인걸 금방 알게 되었다.

 

은진미륵불의 중병이다.

천년을 또 천년의 세월을 풍상과 속세인의 발걸음들에 멍들어 "석조미륵보살입상"은 대수술에 처해있다.

깁스한 몰골이 미안해 더는 쳐다 볼수가 없어 오층석탑 주위를 맴돌다가 하루 빨리 쾌유되기를 빌며 발길을 돌린다.

땀흘리며 올라온 계단을 내려서니 고목에 다람쥐가 나와 길손들을 배웅한다.   

     

 

높이가 18미터에 이르는 국내 최대의 석불이다.

원래 미륵불은 56억 7천만년이 지난뒤 그때까지도 구제되지 못한 중생들을 위해 나타난다는 설이 있다.

자연 암반위에 허리부분을 경계로 하여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이 보살상은 몸통에 비해 얼굴이 강조되어 전체적인 균형미

는 떨어지지만 불상 전체에서 느끼는 강한 원초적인 힘은 고려시대 초기 이 지방에서 유행하던 불교예술의 특징이다.

얼굴과 손에 집중된 표현양식은 마치 토속적인 신상을 보는듯 위압적이지만 넉넉하다.

고려 광종 19년(968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목종9년(1006년)에 완성하였다. 일명 은진미륵불로도 불린다.

 

 

 

경내를 돌아나가는 부부 여행객의 모습이 부럽고 참 아름답다.

함께 길을가고

함께 여행을 하며 마주보고 나누는 대화는 언제나 분홍빛이 아닐까?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을 하는 남편 그리고 그 말에 귀 기울이는 부인의 모습에서 "사랑"은 조건이 없어야 빛난다는걸 느낄거다.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도성이였던 사비성이 위치한 지역으로 공주에서 천도후 536-660년 동안의 시기를 사비시기라 한다.

길손은 사적 제14호로 지정된 능산리 고분군을 찾았다. 폭염이지만 푸른 잔듸가 싱그럽다.

능산리 고분군은 부여읍에서 논산방면 동쪽으로 약3km쯤 능산리 야산에 7기의 고분이 있다.

서기 536-660년 사이 재위한 왕과 왕족들의 무덤이다. 1호분 무덤의 네벽과 천장에 그려진 사신도등 벽화가 매우 아름답다.

어머니를 따라 문화체험에 나선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가 파란하늘에 뭉개구름처럼 싱싱하고 아름다워 폭염의 여름나절도 

저만치 밀려나고 있다.   

   

 

 

다시 백제의 흥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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