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길었다. 어둠의 침묵속에서도 설레는 마음은 별빛마져 삼키더니 블랙홀 보다 더 어둡고 긴 터널 같은 밤을 밀어내며
드디어 회색 빛 세상을 연다. 겨울바다를 살짝 데친 훈풍은 남도의 섬 마다 봄 기운을 올려 300km가 넘는 해안선을 따라 펼쳐
지는 그림 같은 풍광은 어느새 생기가 도는 봄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지금 남도는 봄을 잉태하기 위한 산고가 시작 된 것이다.
얼었던 아니 어쩌면 한번도 얼지않은 양지의 황토밭 이랑에 줄을선 마늘은 해풍을 맞아 더욱 윤기나는 푸른빛을 띄우고 은빛
바다에 발목을 잡힌 작은섬과 배들은 오침에 젖어 있는듯 호수처럼 고요하다.
남해의 해안선은 사실 막힘이 없다.
남해대교로 부터 시작되는 노량해협의 드센 물살은 설천의 바다와 갯벌 펼쳐지는 관음포를 돌아 사방 팔방 거대한 산 줄기처럼
물줄기를 뻗어 섬들을 보석보다 더 빛나게 키우고 있다.
앵강고개를 숨가쁘게 넘어 은빛 물살이 퍼득이는 앵강만을 두고 헝겁을 기운듯한 구불구불한 신작로를 따라가면 옛 정취
사라질려는 다랭이 마을의 왁자함이 온 몸에 힘을 빠지게 한다.
가천마을의 수호신 덕일까?
척박한 다랭이 전답에서 겨우 생명줄을 이어가던 가천마을은 주소득원인 어업과 영세한 농업에서 탈피하여 관광객을 대상으로한
숙식업으로 탈바꿈 된것 같다. 설흘산의 정기로 우� 솟은 거대한 남근석과 그 아래 만삭의 배처럼 보여지는 바위를 합쳐 가천
암수바위라 부른다. 아들을 가지지 못한 아낙들이 이 남근석을 만지면 득남한다는 說(설)에 전국에서 구름처럼 모여 들던 시절도
있었다. 마을 지킴이였던 가천 암수바위는 정한수 떠놓고 먼 뱃길 떠난 낭군의 무사 귀환을 기다리며 새벽이 올때까지 두손모아
빌고 빌었던 아내의 지극 정성이 모인 바위다.
작금의 남근석을 쓰다듬는 아낙이야 장난섞인 행동으로 웃을수도 있지만 예전 아낙들은 아마 그 정성이 하늘에 닿지 않았을까?
허긴 친양자 입양이 한층 수월해진 개정된 호적법을 살펴보면 굳이 산고를 치룰 고통도 이유도 없어 보이지 않는가?
가천마을에도 봄이 내려 앉는다. 연인은 다랭이논 끄트머리에서 봄을 줍듯 밀어를 속삭이고 바다도 봄 오는 소리를 듣는다 .
죽방렴의 원조격인 남해 지족만.
은빛 퍼득이는 물위로 물살을 막아선 지족만 죽방렴의 이른 아침 풍광은 물안개 피어 오르는 고향 강가의 모습이다.
저절로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지족은 한껏 여유를 부리며 시심에 젖게하고 넉넉한 호반같은 물줄기가 우충충한 겨울을 흘러보내
는 모습에서 점차 남도의 봄이 우리를 포위 할거라 생각하니 자연이 연출하는 마술이 진정한 예술이라 생각케 한다.
죽방렴과 목선, 뗄수없는 인연으로 이 봄 어부에게 작은 희망을 실어다 줄수 있을지 염려하며 봄 오는 남해의 해안선을 간다.
이름모를 포구에도 숨 다한 겨울이 떠날 채비를 한다.
포구 가득 봄 향기를 내려놓은 바다는 오솔길 처럼 호젓해 발길이 머물고 낮설지 않는 풍광에 치성을 드리듯 우뚝섰다.
배들의 안전한 접안을 위해 설치한 방파제만 보이지 않는다면 옛 모습 그대로인듯 ...
물위에 둥둥 떠 있었을 작은섬이 육지와 닿은것이 너무 애처롭고 안스러워 눈길이 자주간다.
노인은 물건항 갱변에서 막 봄을 건지고 계셨다.
살랑거리는 작은 파도가 봄 미역 한조각을 밀어 올리면
거북등 같이 굳은 고단한 허리를 들어 상큼한 봄 하나를 들어 올리신다.
갯가의 삶,
부잣집 외동딸로 시집 와 단 한번도 다른곳에 발 붙이지 않으신 내 어머님 처럼
저분도 이곳에서 평생을 사시다 이 갯가에서 파도소리 가물가물 듣다 바다로 가시겠지...
벼락 맞은 방조림 당상나무 보다
더 고고하게 보이시는 노인의 모습
바로 우리 어머님들의 모습 이 아닐까?
물건을 지키는 당상나무
하동의 금오산도 노량 바다에 발목을 담구고 있었구나.
험하게 생긴 몸둥아리가 순하게 줄기를 늘어 놓은것이 옥빛 남해바다에 발목을 담궈 순해진 것이구나.
남해 여행의 시작점이자 종점인 노량 남해대교 ,
남해군 설천면 노량과 하동군 금남면 노량을 잇는 이 다리가 남해를 육지의 섬으로 불리게 하고 귀한 보물섬을 잉태한 근본이다.
봄은
노란 남해의 봄은
제주의 바람을 따라 뜀박질하듯 남해에 닿아 물빛 먼저 곱게 만들고 노오란 개나리와 수십리 벗꽃을 피우고 아름다운 다리
옆에다 눈부신 유채꽃을 피울것이다.
그리고
그 길 따라 눈물짓던 추억 을 하나 하나 떠 올리며 산객은 다시 남해의 해안선에 홀로 길손이 되어 그날을 기억해 낼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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