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품마져 다 져가는 사색짙은 늦가을도 속절없이 가고 산야는 이제 겨울이 시작된다.
산을 즐기던 사람들도 이때쯤엔 차차 발길이 뜸해지고 산을 향해 열어두었던 마음마져 천천히 닫아 다른 즐길 순간을
찾겠지만 산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산객이야 이 겨울도 최상의 낙원인 산을 만나려 부지런을 떨어야한다.
오랫만에 지인을 꼬드겨 거창 보해산을 가기로 했다.
수년전 산악회 정기산행 답사를 위해 산길도 모르면서 엉뚱한 곳으로 올라 코에 단내가 나도록 고생을 한 탓에 그 다음 산행시
천상의 유희(운무)를 만끽할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답사때 고행을 보상받고도 충분하지 않았던가?
운무의 유희가 절정을 이루며 맑은 세상을 열때 눈앞에 다가온 장군봉과 의상봉의 자태는 금강의 만불 그것 이였다.
그리고 울창한 적송의 숲이 밤새 내려놓은 융단길을 걸어 산정에서 바라본 수도산 줄기는 또 어떠 했던가...
35번 고속국도를 달려 88고속도(2차선 최고속도 80km)에 진입하여 거창이 다가올 무렵 갑자기 의상봉 옆 거대한 암봉이
떠올라 지인에게 보해산은 다음에 가기로 한후 이름도 모르는 그 암봉을 가기위해 의상봉 아래 상수월 매표소 가기전 우측
작은다리를 건너 마을로 들어가 저 봉우리를 오를려면 어디로 진입하느냐고 물었더니 아래 골목을 가르킨다.
그러나 차가 진입하기가 어려워 상수월 매표소로 가서 산길을 묻자 저곳은 산길도 희미하고 가는 사람들이 통 없다며
한사코 가기를 만류하지만 이왕 마음을 먹은터라 이곳에 차를 세우고 개울을 건넜다.
시퍼런 계곡물과 색깔 곱게 드러누운 돌맹이들 그리고 억새의 하늘거림이 우릴 유년의 고향 개울가로 데려다 놓은듯해 지인은
그때 피래미 꺽지 매기잡던 이야기 한소절로 산길에 접어든다.
임도가 계속 이어진다.
소나무 낙엽(갈비 경상도 방어)이 여기도 융단처럼 깔려 푹신하지만 오늘 조망은 엉망이다.
사람이 만든길, 그 길에서 벼락을 맞은 수백년된 당산나무를 만났다.
빌고 빌고 또 빌고
엎드려 빌고
일어서 빌고
절하고 손비비며 비는
벼락맞은 고목도
그곳에 걸려 춤추는 오색의 천도 모두 낚아 흐느적 거린다.
싱싱한건 돌탑뿐이다. 모든이의 정성이 바램이 이곳에 다 모인듯 탑은 하늘을 향해 오르고 있다.
"허허 이렇게 길이 좋은걸 보니 나중에 고생할것 같아" 산객의 이 말에 지인은 무슨 방정이냐며 핀잔을 준다.
임도의 편안함은 당산나무를 지나 조금 더 진행하자 끝이났다.
몸 하나 겨우 들어갈만한 나목들 사이의 희미한 길이 눈에 들어온다.
언제 사람들이 다녀 간건지 퇴색하여 금방 비바람이 치면 떨어질것 같은 리본이 없었다면 분명 이 길을 놓칠수 있었다.
키 크고 베낭마져 긴 지인은 나무가지에 걸려 서너번 곤두박질을 치자 부아가 나는지 혼자서 중얼중얼 거려 이럴때 키가 작은
산객은 왠지 신바람이 난다. 높은 가지에 달린 무화과는 해마다 네게 빼앗기지만 이런 산길에선 난 살짝만 숙여도 무사 통과다.
산속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지인은 나무가지와 실랑이가 심해지고 산객과 거리도 점차 멀어진다.
에이 안되겠어 "막걸리 한잔 먹고가자" 무슨놈의 산이 길도 없어 투덜대는 폼이 심상치 않아 잠시 휴식하기로 하고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산을보고 화를내면 안돼 몇번이고 목젖까지 차오르는 이 말을 결국 삼키고 다시 일어나 길을 재촉한다.
한개로 보이던 봉우리는 언제 생긴건지 3봉우리로 장중하다. 특히 바위손이 벽지처럼 붙어있는 눈앞 봉우리는 봄이면 푸른옷
을 걸쳐 싱그러움을 더해주리라. 작은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돌탑봉아래 기진한 지인과 점심을 들었다.
다시 이어지는 고행의 길.
더는 안스러워 지인에게 베낭을 벗어놓고 따라 오라고 하자 자기는 더 이상 못 가겠으니 필자더러 혼자 다녀 오란다.
된오름길 가랑잎 수북히 쌓여 희미한 산길 어디가 어딘지 분간하기 어렵다.
산객을 막아서는 가시덤불 더는 진입을 허용치 않겠다며 바리케이트를 친 나무. 사람 발길 뜸해진 이 길은 낙엽만 가득 채워져
초행길을 성가시게 한다. 조망은 나무에 가려져 아예 없다.
드디어 능선을 만났다.
비계산 8km 뜀박질 하듯 봉우리를 향해 가자 또 다른 이정표엔 비계산 1.1km로 표기되어 혼돈이 온다.(거창군 이정표 바로
잡기요망) 비알길 오르면서 보았던 세 봉우리는 비계산이 아니었다.
비계산은 좌측 저만치 혼자 암봉 하나를 거느리고 오도.두무.미녀봉을 마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 길이 수도산으로 가는 수도지맥임을 어느 종주 산객의 리본에서 알수 있었다.
보해산,장군봉,의상봉,비계산,두무산,오도산,미녀봉등이 병풍처럼 두른 가조는 넓은 분지다.
개스로 희미하지만 맑은날 바라보면 그 조망이 가슴 설레게 할것 같다. 마당재를 거쳐 의상봉을 가는 능선이 산객을 부른다.
홀로 산정에서 주변 산군을 바라보며 흥분해 있을때 아래서 인기척이 난다.
수도지맥 종주대인지 아니면 일일산행을 온건지 10여명의 남녀가 올라온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지인이 기다리는 산 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서니 해는 또 산 그늘을 내리며 하산을 재촉한다.
"오늘은 어렵게 길 헤몄지만 다음엔 마당재나 거창휴게소에서 타면 수월할것 같아" 다시 한번 더 오자 필자의 말에
지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도착후 맥주잔을 들면서도 "비계산"이야기는 통 없었다.
아스라히 오도산이
비계산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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