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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물 든 손톱 끝에, 걸린 오후
김경성
단풍나무 물들어
마치 봉숭아 꽃물 든 손톱 같은, 나뭇잎
에 얼굴 대고
울고 말았어요
꽃물 든 손톱 끝에, 걸린 오후
가 휘청거렸어요
바람도 없고
작은 새들만 날아다녔는데요
다리 난간에서 핏빛 단풍나무 바라보며
그립다, 그립다
나무의 가슴 한쪽 손톱으로 할퀴며
뚝뚝 떨어지는 나무의 피를 두 손으로 받았어요
구름 거두지 못해 우울한 하늘에서
후드득 나뭇잎 두드리며 빗방울 떨어졌지요
산등성이 뒤척이며 몸서리칠 때마다
별똥별 떨어지는 듯 불똥이 튀어서
산길이 불긋불긋했지요
빗방울 거세어지고요.
물 만난 처마 끝 풍경은 지느러미 흔들어대며
자꾸만 노래 불렀어요
그 소리 들으니 바닷속에 들어가 있는 양 고요해져서요
사원의 지붕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앉아
오래 오래 무릎에 얼굴 묻고
눈물 닦았지요
가슴 속이 시원해져서요
빗물 흥건한 산길을 걸어내려오는데
글쎄요, 글쎄요
꽃물 든 손톱 끝에, 걸린 오후가요
빗물에 꽃물 다 씻겨내고
말간 먹물 적시고 있었어요
출처 : 인디고 블루 잉크
글쓴이 : 프라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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