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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 생각하며

배릇끝 모교 이제 역사속으로 가다

 

배릇끝 내 모교 영현중학교(경상남도 고성군 영현면 소재)는 급격한 학생수 감소로 결국 폐교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져 갔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얼마후 배움을 간절히 열망했던 배릇끝 사람들이 산중첩한 이곳에 중학교를 설립하기로 계획하고 그 

인가를 받기위해 학교부지를 조성한후 백방으로 노력하여 드디어 1955년 6월20일 공립영현중학교 설립인가(3학급)를 받아

낸다. 물론 공립으로 정식 인가가 나기전 공민학교가 설치되어 1956년 공민1회 47명과 1957년 공민2회 27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므로 공민학교가 모교의 전신인 셈이다.

1956년 2월 24일 초대 이종구 교장선생님이 부임하여 필자가 재학중에 경이적인 10년 근속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교기인 축구부가 맹위를 떨쳐 연접한 시.군은 물론 경남에서도 두각을 나타 내기도 하였으나 열악한 재정난에 시달리다가 

존폐의 위기를 맞는다. 70년대는 9학급까지 증설되기도 하였으나 80년대 부터 시작된 이농과 산아제한으로 90년대는 3학급

으로 감축하다가 1999년 9월1일 영천중학교 영현분교장으로 개편 되었다.(한때는 영현중학교 영천분교장)

그리고 2008년 2월 제51회 졸업식을 끝으로 모교는 폐교가 되고 영천중학교(경남 고성군 영오면 소재)와 통폐합 되었다.

         

 

 

2008년 4월 27일 폐교 원년에 맞이한 제17회 총동문회 정기총회 및 한마음 체육대회에 메인 사회를 맡아 진행하는 필자의

마음도 꼭 무슨 죄를 지은것 처럼 어색하고 전체 분위기가 왠지 썰렁하다.

지나간 과거를 오늘에서 찾을려는 동문들의 눈빛은 강열하지만 사는게 더 없이 어려운건지 해가 거듭될수록 모습들이 줄어

들어 운동장이 더 넓어 보여 안타깝다. "싸운 기억마져도 ,배고파 허기진 아린 기억도, 비가오나 눈이오나 산을 넘고 물을

건너던 15리 등.하교길"의 고단함도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들이 되어 기억 저편으로 부터 흐릿한 흑백 사진들이 되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폐교의 서러움을 당장 겪는다.

오늘 이 행사(총동문회)를 위해 통폐합된 학교장의 허가를 받기위해 총동창회 사무국이 학교 당국으로 부터 곤욕을 치루는가

하면 전기를 사용할수 없어 6-70년대나 있을법한 발전기를 가동한 사실에 울컥 설움이 목 까지 찬다.

회갑도 맞이하지 못하고 개교 53년만에 역사의 수레바퀴에 실려가는 배릇끝 모교가 처한 작금의 현실에 통한의 눈물이 가슴

을 타고 내리는것은 비단 필자 혼자만이 아닐것이다.

 

 

폐교의 설움을 우리 스스로 달랠수 있는것은 해마다 4월이면 더 많은 동문들이 모교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온 라인 상의 카페 "영현중학교"에서 항상 공유하며 서로의 안부를 물어야 한다.

필자는 오늘 사랑하는 후배님들이 있어 너무 행복한 시간들을 보낼수 있었다.

카페지기 고무골 후배를 비롯하여 여러 후배님들의 과찬에 부끄럽기도 하였지만 선.후배의 정이 이런것이구나  고향의 정

어머니의 손길 같은 따스한 정을 가슴 가득 담아 올수 있어 행복했다.

 

 

다시만난 동기들

주름은 더 늘고 반백의 머리결은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다.

후배들이 달아준 명찰을 보니 돌무지 운동장을 반나절씩 치우던 1학년 그 시절이 사뭇 그리워지고 졸업후 한번도 만나지 못한

동기들의 이름을 하나 둘 부르며 그날로 달려간다.

     

 

 

 

 

 

 

 

 

 

 

 

이제 서러워 말자.

배릇끝(우리 어머닌 배릿끝이라 부름)모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지만 너 와 나 우리들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늘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줄 것이다.

그나마 다행 스러운것은 모교 교정이 선배님이신 계승사 주지 스님께서 교육청으로 부터 임대하여 복지시설로 활용할 계획

이며 향후 기회와 여력이 되면 매각 의사가 있다는 소리에 작은 위안으로 삼아야겠다.

예전 필자도 작업한 아름다운 연못도 폐교의 아픔을 아는지 물이 말라 발길을 멈추게 한다.

필자는 소원해 본다. 내년에 더 많은 모습들이 이 자리에 보여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