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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산길에서

올 여름 원시의 계곡이 그립거던 거망산 지장골에 들라

 

6월은 여름이 시작되는 달(月)이다.

녹음은 눈이 시리도록 푸르다 못해 짙어지고 마알간 햇빛에 투영된 이파리의 모습은 더 없이 청초하고 싱그럽다.

바야흐로 사방천지에 신록예찬이 성대하게 진행 되는것이다.

자연의 경이함을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는 성하의 산행 그 중심에는 원시의 숲과 계류가 옥빛으로 되는 심산

유곡이 있다. 오늘 필자는 59년전 이 땅 이 산하에 초연히 전설이 된 선열들의 넋을 기리며 원시의 신비를 간직

하며 맑은 계류를 거느린 거망산(경남 함양군 안의면 소재)지장골에 발을 적시려 한다. 

 

 

거망산<擧網山,1184m>은 남덕유의 한줄기다.

내 고향 산줄기인 진양기맥(남덕유-진양호까지 도상거리 약 156여km)의 출발지인 남덕유(남강의 발원지 참샘)의

우람한 산줄기는 달빛 곱게 내려앉는 월봉산에 이르러 그 기운을 두갈래로 펴니 한줄기는 거창 서쪽 금원산과

기백산을 들어 올리며 힘차게 내달려 바래기재에서 잠시 숨을 고르다 쉼없이 맑은 물줄기를 겨드랑이에 끼고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 서부 경남의 젖줄이자 생명수인 진양호에 살포시 발을 담군다.

그리고 다른 한줄기는 물레방아와 선비의 고장인 함양의 북쪽을 가다가 거망과 황석산을 솟게했다.

거망산은 평범한 육산으로 빼어난 암릉미를 자랑하는 황석산과 유안천 계곡을 거느린 금원과 기백산에 밀려 그 인기

도는 덜하지만 그것은 거망산의 내면을 들여다 보지 않은 사람들의 경솔함이 아닐까?

 

 

아니면 거망산을 가기전 만나게 되는 용추계곡의 명경수와 승천하는 용의 몸부림마냥 하얀 포말이 되는 용추폭포

장관에 취해 더 이상 걸음을 떼어놓지 않으려는 게으름 때문에 거망산의 속살을 들여다 보지 못하는것은 아닐까?

용추계곡의 옥빛 계류가 일탈을 꿈꾸는 창백한 도회인의 휴식처라면 계곡을 건너고 건너 원시의 순결한 속살을

탐닉해가는 지장골의 오름은 말과 글로는 제대로 표현할수 없는 신비의 산길이 된다면 과연 부풀린 과장일까?  

이제 글쓴이는 원시의 순결함이 살아 있는 지장골의 계류를 따라 능선에 야생화가 철따라 곱게 피는 거망산 정상

을 향해 우족으로 갈 것이다.

 

 

물한계곡 작은 폭포를 찍으려 계곡으로 내려서던 필자는 낙엽속에 숨겨진 돌과 돌사이에 발목을 접질려 당분간

산과의 만남은 틀렸다고 생각하니 부아가 치민다.

다행히 발목의 뼈와 인대는 깨끗하다는 방사선병원의 진단을 받고 한의원에서 소름이 돋는 침 두어번 맞은후 오늘

발목에 압박 붕대를 감고 용추계곡에 들어섰다. 

작은 소(沼)의 물빛도 청자빛이 감돌아 입안에 머금지 않아도 이가 시릴것 처럼 온몸에 한기를 느낄것 같은데 폭포

아래 시퍼런 물에 발을 담구며 담소를 나누는 일탈의 사람들의 여유가 참 부럽다.

한적한 용추사 경내에 들어서자 옛모습이 아닌듯 새로 불사된 큰 법당이 왠지 낮설기만 하고 사방을 두리번 거리는

산객은 수년전 처음 이곳을 아이들과 걸음한 추억에 잠시 젖었다가 담쟁이 덩굴이 부드럽게 감싼 황토빛 돌담장을

빙돌아 나가 해마다 여름날이면 그리워 하던 지장골을 향한다.

 

벌써 시작이다. 산속을 가지않는 행락객들이 바리바리 싸들고 와 먹고 버린 쓰레기 더미가 청정 용추계곡 구석구석에

쳐박아 놓았다. 오늘도 계곡에 삼삼오오 모인 저들이 또 얼마나 자신들의 양심을 내동댕이 치고 갈련지...

제발 이제부턴 자기가 만든 쓰레기는 꼭 되가져 가기를 자기 자신과 약속을 해 보자.      

  

 

 

용추계곡에서 거망산으로 가는 길은 용추사 위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계곡옆에 빛바랜 이정표가 서

있다. 개울의 징검다리를 건너듯 계곡을 건너 산길로 들어서면 각색의 리본들이 솔바람에 휘날리며 길 안내를 한다.

싱그러운 이파리들이 뿜어내는 향을 맡으며 터널 같은 어두운 숲속에 발을 들여놓자 귓전을 울리는 계류소리가 

글쓴이의 가슴까지 물길을 이어준다. 

  

 

 

오늘 나는 이곳에서 이 계곡 자연의 미, 천연의 미학을 탐독해 갈 것이다.

심산유곡의 독특한 원시림과 꿈처럼 너울거리며 떨어지는 폭포와 소를 연어처럼 활기차게 거슬려 오를 것 이다.

햇살이 짙은 숲의 이파리들을 뚫지못해 계곡과 암반은 습지식물과 음지식물로 뒤덮혀 청록색의 아름다움 또한 

장관이 되지만 고요한 숲길은 불안함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간혹 산속 고요를 깨뜨리는 새소리에도 머리끝이 서는 무서움이 원시의 계곡을 혼자 갈때는 더욱 그렇다.

무념무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원시의 계곡 지장골, 이제는 물길도 소도 폭포도 끝이려니 하며 발길을 돌리려하면

눈앞에 다가오는 기묘한 형상들의 폭포와 소가 계곡을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삼킬듯이 달겨드는 물줄기는 아니지만 은빛 계류와 귀를 멎게하는 폭포의 굉음이 무념에 들게하고 울창한 숲과

세월의 무게에 이기지 못한 원시림이 계곡에 나자빠져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며 천년을 살아 가고 있다.

이곳의 폭포와 소들은 이름도 얻을 생각이 전혀없다.

보석같이 귀한 계곡 이지만 명성을 얻을려고도 하지 않는다.

거센 물줄기를 만나면 조금씩 씻기고 깎여 나가도 원래 그 자리에서 그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는다.

   

 

 

울진 응봉산 구수골과 용소골.방태산 조경동 계곡.울진 왕피천. 정선 덕산기 계곡처럼 이름이 없어 한여름에도 

지장골엔 사람들이 몰리지 않아 더욱 좋다.

수려한 경치는 아니지만 원시의 숨결이 분명 이곳에는 있다.

적당한 오솔길과 널다란 암반의 계류 그리고 하늘을 가린 숲들이 조화를 이룬 지장골.

올 여름 홀로 납량산행을 즐기시려면 이곳을 꼭 권하고 싶다. 

 

 

 

산이 전부가 아닌 사람도 자유로이 산을 가슴에 품지 않는 사람들도 가벼운 차림으로 이 골로 들어서면 원시의

풍광에 참선의 마음도 생길것이다. 가슴속에 작은 개울이 흘러 마음을 맑게하고 돌돌돌 소리내며 속세로 줄달음쳐

가는 옥빛 계류에 널브러진 일상들이 씻기어져 가는 느낌을 산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알게 될 것이다. 

 

 

어둡고 긴 터널같은 계곡산행에 살가운 풍경을 기대하는것은 무리다.

속살같은 물줄기가 폭포가 되고 이어 떨어진 물줄기가 청자빛 감도는 소를 만들어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흐르는 계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신비감에 두려움과 외로움도 사라진다.

오를수 없는 큰 바위와 소 그리고 폭포가 길을 막으면 계곡옆으로 난 산길이 있고 간간히 얼굴을 때리는 햇살

한옹큼이 반갑게 느껴진다. 이렇게 계곡의 묘미에 젖을수 있는것은 산꾼들만이 누릴수 있는 호사가 아닐련지...

    

 

 

 

원시 골짜기의 풍광에 취해 오르다 보니 어느새 거망산 등줄기 아래 이끼 품은 암반에 도착해 도시락을 꺼낸다.

사방을 두리번거리자 쓰러진 나무아래 바위위에 다람쥐 한마리가 낮선객과 눈을 맞춘다.

밀쳐 두었던 카메라를 잡으려 일어서자 다람쥐는 세상에 알려지는것이 부끄러운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뜬다.

시끄럽던 계곡의 물소리를 뒤로하고 제법 가파른 오름길을 한땀 야무지게 흘리며 오르자 인기척이 난다.

황석산에서 걸어온 사람들이 용추폭포를 만날려면 이 길을 가느냐고 묻는다. 이들 역시 지장골의 속살은 안중에도

없이 거대한 물기둥이 되는 용추폭포만 그리면 내려갈 것이다.

그러나 가는 도중 어찌 지장골의 폭포 와 소의 유혹에 빠져 제대로 걸음이 떼어 질련지 의구심이 든다.

   

 

 

 

드디어 황석산에서 온 능선에 올랐다.

아니다.

거망산에서 황석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닿았다.

쥐 오줌풀이 지천에 피어있다. 봄 여름엔 야생화의 능선이 되다가 가을에는 은빛 물결 일렁이는 억새능선도 되는

삼거리 갈림의 능선이다. 몇년전 황석산을 거쳐 이곳을 온 기억이 능선에 서자 생생하다.

 

 

 

그리고 험준한 산릉과 가시밭길을 헤치며 14번의 구간으로 나눠 6개월간 종주길에 올랐던 진양기맥의 산줄기가

눈앞에 아스라히 하늘과 맞닿아 남으로 남으로 고향 진주를 향해 달려 감회가 새롭다.

의욕이 앞서 나침판 고도계 하나없이 무지로 밟았던 저 산줄기가  그 후 필자를 우리 인간들이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사정없이 파헤쳐 끊어놓은 이 땅의 맥을 두발로 잇게한 잊을수 없는 산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