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폭염으로 남부지방의 산야는 목이 마르다 못해 타고있다.
날씨가 덥다고해 산길을 가야할 산객이 물놀이를 생각한다면 아직은 산을 덜 그리워 하는게 아닐까?
걸망을 챙기고 길을 나섰다.
개통후 잦은 고장으로 공포의 대상이 되었던 통영 미륵산 케이블카<곤도라>가 궁금해지고 그 자락 한켠
아름답게 터잡은 미래사가 문득 생각나 통영을 향해간다.<2008.07.26>
느림이
서성거림이 맛이 있는 통영.
노을보다 바다와 섬이 더 평화롭고 넉넉한 아름다운 통영,
그곳에 가면 바다가 육지도 되는 섬 미륵도가 떠있다.
폭염으로 상승한 온기가 산꼭대기를 감싸 오늘도 푸른 다도해의 풍광은 물론 동양의 나포리라 불리는 미항 통영항의 자태를 볼수는 없겠지만 길섶에 기지개를 켜며 이슬 머금은 풀꽃과 눈을 맞추는 순간들이 있어 섭섭하지는 않을게다.
땀은 비오듯 흘러 내리고 비알진 오솔길엔 잡풀이 난무해 여간 성가시다.
미수동 체육시설 위 등산로는 여름철엔 산객들의 발길이 뜸해 잡풀이 무성해 보행하는데 상당한 인내를 요구하므로 가급적이면 큰길로 잘 정비된 용화사 와 미래사길로 접어 드는게 상쾌하다.
물론 산길이 편해서야 어디 산길이라 하겠는가마는
산길도 습도는 높아 보행하기가 불편하다.
작은망을 가기전 통영대교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서 동양의 나포리라 부르는 통영운하와 만을 내려다 보았으나 회색빛으로 조망은 형편없다.
바다건너 인평동도 폭염에 녹아내리고 남망산공원도 열기에 싸여 희미하다.
작은망의 거대한 암봉을 두고 처음 이 산을 대하는 사람들이 쾌감을 느끼는것은 발아래 다랭이 전답의 풍광과 평화로운 마을이 그림같이 조화를 이룬 작품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오늘은 젖뗀 어미 염소의 애잔하게 젖은눈망울 처럼 희미해 서럽게 보인다.
작은망 너머 헬기처럼 상공을 오가는 케이블카가 아스라히 멀고...
폭염에 찌든 숲과 풀 그리고 풀꽃들에 눈길을 주며 주등산로에 도착하니 드디어 인기척이 난다.
미륵산은 아름다운 계곡은 없지만 물맛좋은 약수터는 간간히 있다.
두툼하게 바위를 감싸는 이끼는 쉽게 볼수는 없지만 푸른 손바닥을 무수히 펼친 바위손과 담장이덩굴 그리고 바위 채송화가 한결 더 친숙하게 산객을 가다 서다를 반복하게 해 부드러운 바다 풍광을 빨리
만날려는 사람들을 더디게한다.
등짝에 물이 줄줄 흘러 내리는데도 연인들은 무슨 영문인지 더 뜨겁게 끌어안고 밀어를 나눈다.
무슨 할말이 그리도 많은지 아니면 미륵산의 후덕함에 반해 갑자기 안고 싶은 충동을 느낀건지 글쓴이가 다가가도 아랑곳 하지않고 얼굴을 더 가까이 남자쪽으로 기대는 모습에 ㅎㅎ 요샌 남자보다 거시기
들이 더 저돌적이라는 말이 딱 맞는것 같아 수년동안 손한번 잡지 못하고 연서만 보내던 우리 젊은시절
의 연애문화가 과연 신선하다고 해야하나...
그렇다.
미륵산이 변하고 있었다.
운동화,구두,샌들,청바지,반바지,치마,미니스커트의 군중이 산 정상을 눌러 점유하다가 내려선다.
아 ! 그렇구나 미륵산신이 노하였구나.
그래서 케이블카가 개통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새것인데도 멈춰서는구나.
사람들을 불심으로 아우르며 푸른 다도해를 가슴에 채워주던 넉넉한 산 미륵산이 관광개발의 미명아래 산을 그리워하지도 않는 사람들을 정상으로 올려보내니 부아가 난것이구나.
필자는 분명 알았다. 왜 곤도라가 정상을 향해 자꾸 오르기 싫어 하며 멈춰서는지를...
미래사를 향해 내려선다.
잘 다듬어진 목계단을 내려서면서 며칠전 모 산 지에서 읽었던 고 조태일 시인의 국토 서시 전문이 떠오른다. 발바닥이 다 닳아 새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밑을 서성일수 밖에 없는일이다./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수 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 부터/ 조용히 발버등치는 돌멩이 하나에 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 지필 일이다.//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채로 보낼일이다.
왜 이 싯귀가 생각 났을까? 자자손손 대대로 보듬고 갈 땅덩어리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저
위정자들의 행위에 오늘 필자는 왜 이렇게 분노를 느낄까?
정말 요즘 세상 돌아 가는걸 보면 귀가 찰 노릇이다. 오죽 하면 집권한 여당 대표가 "왜 정권교체를
했는지 모르겠다"고 탄식하는 소리를 그냥 덤덤하게 넘기고 말겠는가?
미래사를 들어가기전 속세의 온갖 부정들을 씻고<실은 마음과 몸> 들어가라는 정화대가 있어
특이하다. 잠시지만 속세의 미련을 밀쳐두고 물위에 가볍게 발을 담근 필자의 마음이 편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 요즘 세태의 영향도 있을터 이 어지러운 세상사가 제발 능파<凌波>가 되었으면...
대웅전 앞 현대식 3층석탑이 은은한 향을 뿜는 연과 사이좋게 속세의 중생들을 반긴다.
잘 정돈된 경내의 잔디가 푸른 비단결로 누워 아담한 공양간마져 절집이라기 보다는 여는 가정집처럼 정겹게 보이고 푸른 융단을 사뿐히 밟고 북쪽으로 발길을 돌리니 범종이 있는 누각 또한 고을의 정자를 닮아 포근하다. 어느해던가 이 절은 통장에 기십만원만 있는 전직 대통령이 백담사를 정하기전 오기로 했다는 소문에 유명세를 탓을까?
아늑하고 고요한 관음의 품속은 누구던 받아줄수 있으니 그 경지를 감히 따를수 있으랴.
경내를 돌아나와 누교를 만났다.
굳이 버리고 가지 않아도 속세로 건너다주는 다리 밑 연못 바위에 낮잠을 즐기던 거북들이 필자의 발소리에 놀라 물속으로 뛰어 내린다. 귓가엔 속세의 오르고 내리는 곤도라의 굉음이 산사를 돌아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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