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속세의 인연이 되고 사람과 산이 만나면 자연이 되는 이치를 알기까지는 꽤 오랜 산과의 만남덕에 이제 겨우 알수 있을것 같다. 버려진 양심들을 질타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여 산과의 인연을 끊을려고 한적도 수회. 아직도 내공이 부족하여 유유자적 콧노래를 부르며 오름의 미학을 터득하기는 요원함을 알기에 허 한 마음을 달래고 채우기에는 산사 산행이 제격이 아닐까? 하여 오늘은 아홉용이 승천하였다는 화왕산자락을 더욱 빛나게 하는 구룡산(관룡산)관룡사를 찾아간다.
어제의 우울함과 스산함을 보낸 오늘의 새날은 옥천 입구 정자에다 붉은빛을 토해 따뜻하다. 회색빛을 걷어낸 빛의 투명함은 겨울 아침을 상쾌하게 하고 눈앞에 보이는 구룡산릉은 이리저리 꿈틀거리며 기지개를 켠다. 아침밥을 지으려는 아낙의 손엔 김이 무럭무럭 나는 시래기가 한줌 쥐어져 있어 입맛을 다시게한다.
관룡사는 천년도 더 된 신라8대 사찰중 하나인 고찰로 원효가 화엄경을 1,000여명의 제자들에게 설파한 도량이다. 관룡사의 이름은 원효가 제자 송파와 함께 칠성 100일기도를 마친날 화왕산 정상인 월영삼지에서 아홉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보고 지었다는 설이 전한다. 관룡사 창건은 2가지 설이 있어 그 중 하나는 신라 진평왕 5년(583년) 에 증법국사가 초창하였다는 설과 또 하나는 신라가 불교를 공인하기전인 흘해왕40년(349년)에 약사전이 건립되었 다는 설이 있어 위 2가지를 종합해도 1,500여년전에 건립된 고찰임을 알수가 있다.
공덕비로 오르는 돌 계단이 속세의 욕(慾)들은 다 내려놓고 오라는듯 가파르게 서 있고 하늘과 맞닿은 석문은 청자빛 으로 마음까지 맑게해 길손의 발걸음은 더없이 가볍다. 경내를 돌아나오는 독경소리가 얼핏 하늘로 가는 혼을 배웅하는듯 고요하고 처량히 들린다. 울 아버지가 진달래꽃등을 타고 이승을 이별하던 그때의 상여소리처럼...
관룡사
대웅전
약사전
관룡사엔 보물4점이 보존되고 있는 문화유산의 보고이다. 그 중 약사전과 삼층석탑 용선대의 석조석가여래좌상은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후손들에게 온전히 물려 주어야 할 과제다. 임란시 왜구의 방화로 전체 사찰이 소실 되었으나 약사전만 유일하게 남아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져 오고 있으니 보물임에 틀림이 없다. 약사전 벽화가 역사를 말하듯 희미해 더욱 고색이다.
약사전 앞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양식으로 받침대의 네면에는 코끼리의 두눈을 형상화한 안상을 각각 2개씩 조각 하였는데 이는 석탑의 장식적 기능을 강조했던 통일신라시대 말기의 양식을 반영한것이라고 적어 놓았다. 볕받은 석탑과 돌담이 포근해 평화롭다.
천년도 더 된 세월 온갖 풍상을 겪어며 의연히 그 자리에서 관룡사를 지켜 보고있는 용선대의 석가여래좌상 동쪽을 향한 모습은 아마 근엄한 표정으로 새 아침을 맞기 위함이며 칙칙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걷어내고 희망을 중생들 에게 전함이 아닐까?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의 유래는 아래 안내 표지판으로 대신한다. ↓
석조석가여래좌상
화왕산성 도 아득하고
용선대를 내려서서 다시 관룡사를 지나 구룡산에 접어든다. 4년전 시산제 산행지로 이곳을 정하고 관룡사-관룡산-허준 셋트장-화왕산성-정상-창년여중고를 갈때 산제의 제물을 이동할때 회원들의 노고가 다시금 생각나 고맙기 그지없다. 이 가파른 비알길을 돼지머리며 60인분의 수육과 술 그리고 각종 과일등 제수품을 짜증한번 내지않고 정상까지 나른 총무 산행대장 부회장들 세삼 그들의 모습이 고맙고 그립다.
구룡산 절벽아래 터 잡은 청룡암은 몇해전 모습은 다 쓰러져 가더니만 어렵게 새롭게 불사를 한것 같다. 스님의 노력으로 이 가뭄에도 석간수는 마르지 않고 흘러내려 길손들의 목을 적셔주니 비탈진 이 험한 산길에서도 은혜를 입어 옷깃을 여미게 된다.
청룡암.
강한 바람이 불어 더욱 힘들었던 된비알길을 올라 구룡산릉에 섰다. 화왕산에서 오는 사람, 화왕산을 가는사람들. 그리고 필자처럼 여기 구룡산만 오르고 사방을 조망하다 되돌아갈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듯이 암봉에 섰다. 불상이 의연하게 자리잡은 용선대에서 이곳으로 올라오는 옥천2탐방로는 비단결 처럼 부드럽다. 드라마 촬영장을 제공하기 위해 조성된 우측 구부러진 임도길은 산객들에겐 환영받지 못한다. 봉우리 너머 화왕산의 민둥이 필자의 머리를 닮아 빛이난다. 절간에서 수학하던 70년대부터 시나브로 빠지기 시작한 머리칼이 이제 그 숲이 다해 바람 휑하니 도는 빈터만 남겨 놓았다. 얼마전 바깥에 사는 지인이 유독 우리나라만 머리털과 얼굴 생김에 민감하다며 이런 편견은 선진국에서는 눈을씻고 찾을래야 찾아볼수 없다는 소리를 한다. 그리고 그런 유사한 내용의 글이 온 라인에 게재된걸 보았다. 허긴 대머리를 소재로 개그를 하는 나라이니 말해 더 무엇하리...
관룡사 석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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