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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사산행

백학이 비상하는 백암산 백양사

 

백학이 비상하는 백암산 백양사 
[글.사진 / 기산들 ]
2009. 1. 4.

 

  오랜만에 산사 산행길에 나서 봅니다.

집을 나설땐 벌교 앞 꼬막들이 사는 갯벌에 가 갈대와 진흙탕 뻘밭의 겨울풍광을 담으려던 생각이 시인들의 강이라

불려지는 섬진강을 지나면서 여름과 가을에만 줄창 다녀온 백양사가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산사 산행은 일반 산행과는 사뭇 다른 "여행"이 덤으로 주어 지는것 같아 횡재 같은 생각이 들어 조금은 여유를 부리며

길을 떠날수 있습니다. 앞으로 무릅 관절이 덜 닳는 산사 산행이나 여행을 겸비한 테마 산행을 많이 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요즘 하산길에 간간이 무릅에 통증이 오는걸 보면 제 관절은 주인을 잘못 만나 꽤 고생하고 있습니다. 

 

 늘 산사 산행지는 봄엔 고불매화, 여름 짙은 숲.가을 애기단풍. 겨울 눈내려 고즈녁한 산사의 아늑함을 느낄수 있는

아름다운 古佛叢林(고불총림)백양사가 있는 백암산 입니다.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26. 에 소재한 백양사는 1400여년전 백제시대에 창건된 고찰로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선원과 강원 율원을 갖춘 사찰 입니다. (참고로 이를 모두 갖춘 사찰은 해인사.통도사.송광사.수덕사.백양사)

백암산내 10여개 암자중 운문암은 고려시대 부터 정진도량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하더군요.  

 주 오래전 처음 이곳을 여행을 왔을때 입구 벚나무 숲길이 고찰로 들어가는 길손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더니

오늘은 무거운 이파리들을 땅위에 다 내려놓고 필자처럼 벌거숭이로 서서 길손을 반깁니다.

잔설이 깔린 산사 아래 연못엔 동면에 든 물고기들 휴식하라는듯 두꺼운 얼음이 감싸안고 있으니 욕많은 인간 군상들

보다 자연의 순리가 경이롭게 느껴집니다.

     

                                                                                                     비자나무

늘 필자도 다 벗고 왔습니다.

아니 원래 이 사람은 구차하게 걸칠게 없는 백수같은 사람인지라 굳이 벗어놓고 내려 놓을게 따로 있는게 아니어서 

막말로 세상 편하게 사는것이 부자보다 나을것 같아 팔자를 억지로 그렇게 고쳐 삽니다.

물론 타고난 역마살을 보듬고 말이죠.

모울 근원이 없어 모운것도 없어니 눈 부릅떠고 지킬게 없어 홀가분하고 애시당초 빈손 같은 인생이니 걸망 하나 

걸치면 김삿갓처럼 바람 가르며 길 떠나니 이 보다 가벼운 삶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싸인 간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고목의 숲길에 들어 섭니다.

수백년된 굴참(굴밤)나무 숲길을 걸어가는 가족들의 여유가 새해의 바램처럼 따뜻하게 느껴지는것은

내 가족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백년 또 백년 그렇게 숱한 시간들을 내재하며 굴밤나무는 이렇게 거목이 되어 시를 자유를 사랑의 밀어를 주니

이 길은 주옥 같은 길이 됩니다.

계루 아래 돌로 쌓은 잔설이 깔린 보둑에 젊은 연인들이 빙판을 걸어가다가 함께한 추억을 저장 할려는듯 폰 카메라로

여친의 얼굴을 직찍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젊음은 무엇이든지 아름답고 희망을 가지게 한다는걸 여기에서 또 느낍니다.

오늘 필자는 백양산의 정상격인 상황봉 까지 갔다가 오기에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촉박해 가는데 까지 갔다가 되돌아 올

요량으로 비자나무(천년기념물)숲길을 따라 갑니다.

남해의 3자(유자.치자.비자)인 비자와는 다른 종류의 사철나무인 비자나무가 백양산에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자나무엔 고유번호가 적힌 명찰이 부착된걸 보면 관리에 신경을 쓰는듯 하더군요.

  

양사 입구에서 보면 백양사를 병풍처럼 두른 바위 암봉이 있습니다.

백학봉 입니다. 그 백학봉 아래는 작은 암자 약사암이 있다는걸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약사암을 오르는 길은 제법 된비알길로 잔설이 얼어 붙어 오르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아 조심을 하지 않으면 미끄러질것 같아

두 다리에 힘을 주었더니 이내 피곤이 옵니다. 특히 자주 만나는 계단길이 영 성가시게 합니다.

 

                            

십길 백학봉 절벽 아래 터 잡은 약사암은 너무 조용해 암자 뒤 처마에 달린 고드름이 녹는 소리 즉 낙수물 떨어지는 

소리만 이 고요를 깹니다. 물론 바람에 풍경소리는 은은하게 들리고요. 

암자 아래 전망대서 백양산줄기를 조망해 보지만 시야를 가리는 나무들이 있어 조망처론 썩 어울리지 않는것 같군요.

  

 암자를 내려서고 다시 돌계단을 올라서자 약수터인 영천굴을 만났습니다.

필자가 올라오는줄 모르고 연인들이 막 포옹을 할려다가 굴 전경을 찍으려던 필자를 발견하고 화들짝 놀란 여친은 

으악새 소리를 지르더니 남친으로 부터 재빨리 떨어져 나옵니다. 

 

 약수터 위엔 기도장이 있습니다.

바위 천정에서 한방울 한방울씩 떨어지는 석간수가 모여 굴안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목젖을 적시고 영천굴을 나와 다시 오름길을 따라 백학봉을 향해 걸음을 떼어 놓을 무렵 건장한 청년이 필자 뒤를 따라

옵니다. 긴 계단을 숨 헐덕이며 올라 능선에 도착하여 쉬면서 그 청년에게 밀감 서너개를 주었더니 사진을 찍어려 다니

냐고 묻길래 산행도 하고 산 사진도 찍는다고 했더니 자기도 사진에 취미가 있다며 케논 5D 바디 대포를 장착한 

카메라를 꺼집어 냅니다.

단번에 필자의 카메라 기종을 알고는 자기도 얼마전 까지 이 기종을 사용하다가 이번에 5D기종 으로 바꿨다고 하더군요.

만만찮은 가격인데 부잣집 아들인줄 알고 어디서 왔냐고 물었더니 "상무대"서 왔단다.

군 복무 하신분들은 상무대가 육군보병학교라는걸 아실테고 계급이 뭐냐고 묻자 대위라고 한다.

요즘 장기 지원이 하늘에 별따기라고 하던데 그러냐고 묻자. 2-3년전과는 달리 사회의 구직난 때문인지 올해 부터 

부쩍 장교와 부사관 간부들의 장기 지원 경쟁율이 엄청나게 높아졌다며 10명 지원하면 3명 정도만 승인되고 나머지는

전역을 해야 한다는 말에 필자 아들도 장기 심사에 무척 스트레스를 받는다기에 45세쯤 어중간하게 퇴직하느니 차라리

지금 전역 하라고 한것이 잘 한것 같다고 하자 이 친구도 내년에 전역을 한단다.

 

                                      산길에서 만난 청년 대위, 필자도 아들 생각에 더 애틋함이...   

        

다시 철계단을 힘겹게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백옥 같은 눈을 머리에 담고 고요하게 자리를 지키는 백양사의 전경이

참 평화롭게 보여진다. 바위가 흰색이라 백암산이라 이름 붙여진 이 산을 고려말 우왕 3년 정도전이 지은 백암산정토사

교루기엔 이렇게 적어 놓았다. 석벽은 깎아 지른듯 험하고 산봉우리는 중첩하여 맑고 기이하며 웅장한 모습이 실로 

이 지역의 명승지가 될 만 하여 신라때의 어떤 이승이 처음 절을 지어 백암사라 하였다.

  

 

                                                   백학봉의 절벽 끝이 없다.

                                                숨 헐덕이며 올라야 하는 계단이 많은 백학봉 가는길

백학봉에 올랐습니다.

멀리 추월산정도 보이고 흰눈을 이불삼아 덮은 들녘이 지난 가을 인간에게 다 내어주고 빈손으로 누워 있습니다.

이 길을 따라 사자봉을 거쳐 상황봉으로 가지만 필자는 여기서 다시 백양사를 향해 내려서야 겠군요.

오늘따라 아들 생각을 많이나게 해준 청년 대위와 작별을 하고 눈길을 내려섭니다.

하산길 아이젠이 없어 미끄럽지만 이럴땐 오랜 세월 동안 산을 만난 사람들은 나름의 요령이 있지만 그렇다고 우습게

보다가는 꽈당 합니다.  

 

 

 

 고불총림 백양사에 도착하여 경내를 들어서는 순간 서너살된 아이가 무엇에 놀랐는지 달려나오며 웁니다.

아마 사천왕을 보고 아이가 놀란것 같습니다.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예전 중딩 1학년때 옥천사에 소풍을 갔을때 필자도 사천왕을 보고 놀라 우회 한적이 있어

그때를 생각하며 웃음이 났습니다.

 고목의 보리수가 정겹습니다.

황토 담벼락이 어린시절 흙벽이었던 우리집을 생각나게 합니다.

공양간 처마에 주렁주렁 달린 고드름도 어릴적 추억을 생각나게 합니다. 

백양사는 절집 기분이 들지않는 어느 고택에 들어온 기분입니다.

정원의 고목이 그렇고 황토 담벼락도 그렇습니다.

 

                                                       백양사 보리수

 몇해전 기와불사를 하던 백양사 대웅전 지붕은 새 기와로 단장이 되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별 볼품이 없던 백학봉의 암봉이 백양사 도량에서 바라보니 멋지고 장대하게 보입니다.

깎아지른 절벽하며 암봉의 생김이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역시 멀리서 보아야 풍광이 더 아름다운걸 또 깨달았습니다.

  

우리나라 천년기념물로 지정된 4매화중 하나인 백양사 고불매화 입니다.

수령 300여년의 담홍색 꽃이 설중에 피면 그 자태가 아름답기 그지 없을것 같습니다.

참고로 다른 천년기념물로 지정된 매화는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구례 화엄사 매화.그리고 순천 선암사의 무우전 매화

로 봄이 오면 한번 둘러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속세로 가야 합니다.

잡다한 일들

유래없는 불황으로 주눅든  삶들이지만 사람은 다 자기 자리에서서 머무르는게 도리인것 같아 가볍게 내려섭니다.  

                                  

 아빠가 부르는 소리에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가는 아이의 얼굴 같은 세상을 꿈꾸며

경내를 나오면서 보았던 글귀가 생각나 적어 봅니다.

 

참다운자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올라간다.

어떠한 꽃향기도

바람을 거스르지 못하니

전단수나 목향수

화만수도 마찬가지네

그러나 참다운자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가므로

모든 방향으로

참사랑의 향기는 퍼져나간다.

                                          나도 집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