뭍의 끄트머리 돌산. 봄 햇살은 금오산(여수시 돌산읍 죽포)에 내려 앉아 가파른 길섶마다 봄꽃을 피우고 있었다. 더디게 고양이 걸음으로 올것 같던 봄은 옥빛 바다를 건너 이곳 금오산에 닿자마자 기다렸다는듯이 새끼연자주색 노루귀,산자고.현호색.민들레.등 산기슭 낙엽 덤불을 헤집고 나와 작은 바람에도 우아한 선을 그리듯 파르르 몸을 떨며 피어있는 모습이 아직은 애잔하다. 여수의 돌산도 뭍으로 상륙하는 봄의 시작점이다. 따라서 옥빛 바다를 건너온 봄을 제일 먼저 맞는곳이 해를 향한 암자 향일암을 품은 금오산, 높은 산 은 아니지만 마루금에서 바다를 건너는 봄을 볼수가 있다.
겹겹이 뻗어나간 산맥은 아니지만 손에 잡힐듯한 정상의 암봉과 옥빛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장관은 봄맞이 산행지로는 최고다. 조망좋은 바위에 걸터 앉아 산행 스케치와 아름다운 산행기를 원한다면 지금 당장 여수 돌산의 금오산으로 가라. 그곳에 가면 붉은 동백이 시 처럼 누워있다. 한적한 산길에 얇은 바람이 필자의 빰을 스친다. 봄바람이다. 열아홉 소녀들의 가슴을 방망이질 하여 바람이 난다는 그 바람이 금오산자락을 휘돌아 나간다. 걷다가 귀 기울이면 낭랑한 풍경소리와 질감 좋은 독경소리가 들릴것 같은 이 산길은 짙은 잿빛의 담을 세워 속세와 단절을 시키는것 같아 더욱 신성하다.
금오산은 길게 산길을 잡을 필요가 없다. 좌.우 겨드랑이에 옥빛 봄바다를 끼고 가슴 가득히 그 바다를 안아 눈을 감으면 코끝에 닿는 비릿한 남도의 봄이 금방 현기증을 일으킨다. 필자도 탐방로를 걷다가 우측 커다란 동백나무가 서 있는 언덕배기를 향해 무작정 올랐다. 양지의 산사면은 염소떼들의 놀이터가 되어 걸망을 걸친 이방인의 모습이 신기한지 귀를 곳추 세우며 한참을 쳐다본다. 발 아래 민들레는 노오란 꽃잎을 펼쳐 해풍을 맞고 후두둑 떨어져 누운 붉은 동백꽃잎을 더욱 멍들게해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 새봄 오는 모습이 아닐까?
단일의 색조를 가졌지만 진달래는 봄의 대표적인 꽃으로 각인 되었다. 소녀의 유두를 닮은 진달래 망울을 보면 왠지 가슴이 설레이는것은 긴 겨울의 터널을 벗어난 외로움 탓일까? 아니면 봄앓이로 잎보다 꽃부터 먼저 피운탓일까. 퇴장하는 겨울은 서러운지 자꾸 산 아래로 부터 올라오는 봄 기운을 밀어내지만 소용이 없다. 3월중순 금오산정에 서면 옥빛 바다와 춘풍에 밀려나는 겨울을 확연히 볼수가 있다.
봄날 풍광이 멋진 섬진강변엔 매화가 눈꽃처럼 피고 산골 산동마을엔 산수유가 만개해 이미 봄소식을 알렸다. 허지만 그곳 산기슭 들꽃들의 출현은 아직은 이르지만 이곳 돌산은 푸른 새싹이 돋아날 준비를 끝내고 마루금을 넘나드는 춘풍에 노루귀는 기운차게 대지를 뚫고 나와 진달래처럼 꽃부터 먼저 피운다. 사방에 봄볕은 인심좋게 내려앉아 봄을 찾아 나선 길손의 발품을 보상해주니 해풍과 야생화.동백. 옥빛바다. 그리고 암봉이 조화를 이룬 금오산은 무릉해화가 아닐까?
산정에서 내려다보는 임포의 풍광은 넉넉하다 못해 고요하다. 죽포에서 봉황산을 거쳐 394봉에서 오는 사람들과 이 산길에서 만났다. 필자는 그들의 표정에서 섬 산행에서만 느낄수 있는 행복감에 젖어 입을 다물지 못하고 먼곳 넓은 바다를 응시하는 모습에서 지루할수 없는 초봄맞이 산행의 진수를 보았다. 실루엣처럼 아스라한 섬들이 봄바다에 둥둥 떠 간다.
비단처럼 부드러운 바다를 품고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한 산세와 암릉을 거느린 금오산 정상에서의 사방 조망은 일망무제 그것이다. 숨차게 하던 비알길의 고통도 일시에 사라지고 기묘한 암릉에서의 휴식은 느림을 맛본다. 탄성을 지르며 기념 촬영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꼭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표정이다. 바람도 자고 옥빛 바다는 호수로 변해 평화롭기 그지없다. 도드라지게 솟은 정상 암봉에서 필자는 내려가기가 싫어 한참을 서 있었다.
일찌기 이렇게 아름다운 정상을 본적이 있었던가? 내 사는곳에서 아득하게만 느껴져 산행이 아닌 그저 여행지로만 생각하며 향일암에 들려 내려오다가 딸랑 갓김치 한포기 사들고 돌아갔던길, 돌산대교가 섬을 육지로 만들어 단 한번도 섬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돌산, 산과 바다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이제는 자신있게 말할수 있다. 돌산에 가면 향일암에 들렸다 갓김치만 사서 오지말고 넉넉한 옥빛바다를 가득 담은 금오산을 반드시 올라 그림 같은 다도해의 풍광을 보고 오라고... 물론 취향의 차이로 작은 고통을 참지 못한다면 금오산의 정취는 영원히 느끼지 못할것이다.
정상에서 향일암으로 내려서면 예각의 바위지대와 가파른 계단길 풍광 역시 일품이다. 작가인지 무거운 삼각대를 세우고 금오산의 풍광을 담아내는 모습에서 귀찮고 무겁다는 핑계로 삼각대를 챙기지 않는 필자의 게으름이 어찌 좋은 작품을 담을수 있을까 오늘 또 한번 자책해 본다. 천년도 더 훌쩍 넘긴 그 시절 원효대사도 이곳에 올라 중생들의 무지함을 깨우치기 위해 묵상에 잠겼으리라. 한계단 한계단을 내려서면서 흐른 세월을 생각해 본다. 나는 지금 잘 살아가고 있는건지...
변했다. 향일암 대웅전도 요사채도 모두 금장이다. 지붕도 단청도 심지어 풍경마져도 모두 금빛으로 칠해졌다. 필자는 이국의 어느 사원에 온듯 착각에 빠진다. 변하지 않고 필자를 반긴건 고목에서 애잔히 꽃을 붉은꽃을 피운 동백뿐이다. 사람도 풍경소리도 심지어 촛불도 다 낮설다.
어둑해 진다. 바다도 잠을 잘려는지 숨을 고르며 드러눕고 풍경 또한 소리를 멈추더니 길손을 속세로 몰아낼 태세다. 나라 제일의 기도처 답게 부산한 경내의 잡음을 뒤로 하고 필자는 비알길을 내려서며 잠시나마 낭만에 취했던 금오산을 뒤돌아 본다. 내일은 또 어디로 발길을 돌릴까? 어떤이가 그랬던가 무한한 자연앞에 있는 인간의 유한성, 그 유한성을 알고 느끼고 싶은게 인간이라고... 산이 주는 무한한 교훈 그것을 오늘 또 느끼며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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