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꽃들은 붉다.
선지피보다 더 붉게 핀다.
그래서 6월은 하늘도 붉어진다.
보릿대를 태울듯이 뜨거웠던 그 해 6월은 동족간 아픈 상흔을 남겨 아직도 그때 기억들이 생생하다.
반세기도 훌쩍 넘긴 세월이지만
이 땅 나이든 사람에겐 해마다 유월은 비극의 상징으로 서 있다.
올해도 잠시 잊고 있다가 현충일에서야 윤규 형이 생각났다.
젊디 젊은시절 강가 버드나무숲에서 꼴망태를 내려놓고 트렌지스터에서 흘러나오는 "밀바"톰존스등의 노래를 들어며 호연지기를
함께 가졌던 훈남이고 웃음 많았던 윤규형은 어쩌면 친동생보다 나를 더 좋아했던것 같다.
다음해 군입대를 하고 전방 모부대의 수색대로 근무하다가 파월되어 귀국을 얼마 남겨 두지 않고 치열한 큰 전투
안케베스 동굴에서 베트콩이 던진 수류탄을 안고 장렬히 전사했다는 비보에 온 동네가 적막감으로 쌓인적이 있었다.
얄궂게도 그 형 전사통지서를 필자가 전해줬으니 이것도 인연중 깊은 인연이었을까?
꽃보다 더 아름다운 젊음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이국땅에서 산화한 그 형 부대의 무공담은 70년대초 필자가 군생활을 하면서
<전사>에 기록된 것 을 보고 함께했던 고향의 푸른 시절을 그리며 지휘소 옆 충혼탑 아래서 눈시울을 적신 기억이 생생하다.
올해는 그들의 가족이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아 그 형을 기리며 술한잔을 비석에 뿌릴까?
각박한 세상 인심이 형제간의 추억도 단절 시켰다는 그 형 여동생의 이태 전 소식에 가슴이 답답하다.
그 형과 이별한지 어느새 40여년이 다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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