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지리산

그리움의 봉우리 지리산 천왕봉

지리산. 온 국토와 산천에 기를 생성시키는 산.

천하의 명당 중 대명당이라 일컫는 장중한 산 지리산.  

인자들이 날마다 모여 넉넉하고 장쾌한 산줄기를 내려다보며 그리움을 가슴 가득 키우는 천왕봉.

심산유곡 마다 벌어진 동족간의 대립과 갈등은 이미 오래전에 끝나 외울음소리도 멎은지 한참이다.

 

그래서 하늘을 가는길목 통천문은 욕심내지 않고 한사람 한사람씩 가슴에품어 천왕을 알현케하고

겸손과 절경을 거침없이 늘어놓으며 푸른 생명길도 만들어 놓는다.

지리산은 산그늘도 다르다.

마치 일렁이는 노도와 같은 거대한 그림자가 산줄기 하나하나를 에워싸면 지리는 잠시 휴식한다.

풍수학자들은 지리를 음(陰)의 극(極)이고 국토의 자궁의 표상으로 어머니와 같은 중후한 지덕을

갖춘 산이라 거침없이 말한다. (월간 산 )지리산은 백두산의 산맥이 뻗어내려 여기에 이르렀다 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불리었다. (16세기 동국여지승람)

또한 지리는 큰 산답게 가난하고 지친 사람들도 다품었다.

가혹한 세금과 부역을 피해 민초들은 지리계곡으로 들어갔고 때로는 피난처로 혹은 속세와 등진

은둔지였으며 전시에는 전략 요충지로 대립의 각을 세운곳도 바로 지리산이다.

 

 

천왕봉 전경

 

2005. 1. 30. 오랫만에 칼바위를 지나 법계사 천왕봉을 거쳐 제석봉 (1806m)그리고 장터목 산장을 들려

유암폭포로 하산하는 코스를 정한 졸자는 김상복 부회장과 김재순총무 부부를 대동하고 중산리를 향해간다.

서진주 나들목을 지나자 지리산줄기가 시야에 들어오고 흰눈을 덮고있는 산줄기마다

긴 동면의 침묵이 드리워져있다. 새벽6시에 김해를 출발한 아우는 천왕봉을 향해 열심히 산내음을

맡으며 오르고 있겠지... 9시15분. 매표소를 지나 잔설 밟으며 산으로 들어선다.

무념이 시작되고 만나는 산객들 마다 지리의 기를 받아서인지 그 표정들이 행복해 보인다.

 

 

 

얼마만인가? 칼바위를 본지가 ... 천왕봉을 오르는 산객들의 출발점으로 하산하는 지친 산객의 희망봉으로

언제나 그 자리에 서서 오가는 이들의 이정표와 쉼터가 되어준 칼바위.산죽끝을 사정없이 스치는 칼바람도

이곳을 지날때는 숨을 죽인다. 눈길은 이어지고 조바심 없는 발길은 조심하며 하늘향해 선 천왕봉을

만나려 한걸음 한걸음 다가간다.

 

10시50분경 법계사와 로타리 대피소가 눈앞에 보이고 일망무제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듯 선명한

긴 산줄기들이 겹겹으로 포개어져 다가온다. 멀리 남해바다가 은빛으로 보이고 눈(雪)과 어우려진 검푸른

주목은 지리산의 산목답게 그 빛이 또렷하다. 잠시 로타리 대피소에서 생굴을 꺼내 소주 한잔씩을 마시고

아이젠을 착용한후 천왕봉을 향해 모두 일어섰다. 

등줄기로 땀이 흘러내리고 동면하는 방장(方丈)을 깨운 무리들이 연방 오르고 내려온다.

눈밭이 아닌곳을 아이젠을 차고 오를때는 무릅관절에 엄청난 힘이 가해져 여간 고통스럽다.

써래봉줄기 너머 장단골 능선이 아름답게 조망되는 개선문앞에서 휴식하며 천왕봉을 올려다보니

산은 분명 하늘과 맞닿아 있다.  우측 가파른 길엔 속세의 사람들이 저마다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등에지고 침묵하며 오르고 있다.

 

 

 

아 ! 세월의 무상함이 여기에도 있었구나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제석단이 있는 제석봉.살아서 천년

죽어서도 천년동안 그 가치를 보여준다던 주목들의 고사목 군락이 있는 제석봉은 이제 고사목마져

고사되어 황폐한 사막이 되어 적막만 가득하다.

2003년 8월 지리산 종주때만 해도 능선을 빼곡히 지키고 있더니 비바람에 맥없이 넘어져 이제는

몇그루만 서서 칼바람을 맞고있다.

지리를 지키는 장승으로 그 이름만 들어도 흥분되고 파란 하늘과 너무도 잘 어울리던 나목들.

 

수많은 사진작가와 산객들이 연신 앵글을 들이대던곳 6. 25. 전쟁후 도벌꾼들이 마구 잘라먹다가

국회로 까지 이 문제가 야기되자 그 흔적을 지우기 위해 무자비한 인간들이 불을 질렀단다.

장터목에 톱밥이 동산처럼 쌓여 있었다는 이야기만 보더라도 도벌꾼들의 횡포를 과히 짐작할수 있다.

아픈 무릅을 추스리며 장터목 대피소에 닿았다. 김해 아우 일행은 하산하여 유암폭포에서

늦은 점심을 들고 있단다.

 

 

 

예전 천왕봉 밑 시천 사람들과 북쪽의 마천 사람들이 매년 봄.가을 물물교환 장소가 바로 장터목이란다.

칼바람은 우리 일행을 빨리 내려가라며 밀어낸다. 빙판위의 눈은 미끄럽다.

아이젠을 찬 무릅에 통증이 오고 칼바람은 지리를 울게한다. 위태위태 하며 유암폭포에 당도하니

김해아우 일행은 눈위에 흔적만 남겨놓은체 하산하고 없다. 2-3미터 정도의 유암폭포는 빙벽이 되어있고

삭풍과 눈보라 속에서도 봄의 전초병 버들강아지는 유두처럼 봉긋 그 열매를 내밀고 있다.

아이젠을 벗고 채3분도 되지않아 엉덩방아를 찧었다. 다시 칼바위를 지나 매표소에 내려오니 김해아우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곧 동동주와 파전으로 가슴에 지리산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