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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지리산 종주 성삼재서 세석까지

"기산들과 10명이 함께한 지리산 종주 "
 
제1부 성삼재서 세석까지
노고단 산신 안개와 구름 재우니
산객 걸망엔 풀꽃은 피고
2003. 8. 9. 13시간 30분의 고행.
 
지리는 분명 세상과 사람을 연결하고 있었다.
단절과 불신의 벽을 허물고 마음과 마음을 모아주며 끈끈한 정을잇는 지리.
오만과 불손을 용서하고 새로운 세계의 희망을 노래하며 두발 내딛는 영악한 인간을 지리는 온몸으로 감싸 안고 목젖 적셔주며 위로 위로 끌어 당기고 있었다.
지리는 그날도 오만가지를 연출한다. 솔바람 소리를 들려주는가 하면 안개를 불러 모우다가도 이내 구름을 능선에 걸쳐 놓고 눈 흘기면 뙤약볕 쏟아 부어며 인내를 시험한다.
때로는 빠르게 걷게하다가 지칠 요량이 역력하면 풀꽃 산길가 내보내 발길 멈추게 하는 지리는 큰 산답게 의연히 솟아 2003년 8월. 그 진한 여름을 그리고 있다.
 
2003. 8. 9. 예정대로 우리는 산꾼들의 염원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산행길이라 자부하는 지리산 종주길에 올랐다. 모두들 기대에 부풀어 간밤 한숨도 못자고 졸자 역시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새벽4시10분 직업전문학교 정문에 나가니 모두들 나와 있다.
특히 김해 아우는 새벽길 열심히 달려오고... 1시간 30분이면 충분히 도착 할것으로 예상했던 차는 2시간이나 걸려 오전 6시30분경 어둠이 걷히는 성삼재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니 이곳은 한여름인데도 냉기가 돈다. 짐작으로 우리 사는곳과는 10여도 이상 온도 차이가 날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각자 무거운 베낭을 메고 노고단을 향해 출발했다.
상쾌한 지리의 새벽공기를 마시며...
 

 

베낭의 무게가 예사롭지 않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신발을 잘못 신고 나왔네 급하게 나오다가 낚은 신발을 신고 온 것이다. 저 먼길 신발로 고생 하겠구나 생각하니 두려움이 앞서지만 긴장하고 노고단을 향해 오르는데 멀리 구례읍쪽 능선 자락에 운무가 작은 바다를 만들었다.
이곳은 사진작가는 물론 동호인 일반 등산객들의 촬영지로 정평이 나있는 곳인지 안내 그림도 있고 카메라 셔트를 누르는 사람들이 제법있다.
허지만 어둠이 채가시지 않아 선명하지가 않아 흠이였다.
안개에 잠겨있는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하니 <오전7시16분>간밤 숙박한 등산객들 아침식사 준비로 부산하지만 지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 정겹기 그지없다. 작년 이맘때 노고단을 거쳐 삼도봉을 지나 뱀사골 계곡으로 하산한 정기산행때 긴 계곡이 끝이 없다며 고통스러워 하던 어느 일일회원의 표정이 생각난다.
돌탑 능선에서 안전한 종주 산행을 위한 간단한 제를 올린후 산돼지 많이 출몰하여 붙여진 돼지령을 지나 산객 목축이는 임걸령에서 각자 준비해온 주먹밥과 김밥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반야봉을 좌측에 두고 삼도봉(전북.전남.경남)에 도착하니 일찍 산길나선 산객들 담소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웅장한 지리능선. 이 거대한 산줄기가 있어 사람들의 발길 사시사철 이어진다. 장대한 불무장등이 가슴을 요동치게 하면 산새도 주눅들어 지리에는 함부로 소리를 지르지 못한다. 그래서 지리는 신성한 산으로 기(氣)있는 산으로 세인의 가슴에 언제나 자리잡고 있다.
 

 

삼도봉 밑 계단에 내려서니 발목과 무릅인대 부분에 미세한 통증이 온다.
스프레이로 진통을 해보지만 그 효험은 별로다. 계단을 힘겹게 내려와 화개재에 이르니 통증이 더욱 가중 되지만 이미 각오한 일 세석까지는 갈길이 아득하다.
 
당초 벽소령에서 점심식사를 할 예정이었으나 문제가 생겼다.
화개재 못미쳐 신발에 들어간 작은 돌을 빼내고 앞서간 일행들 따라 잡을려고 걸음을 빨리 하던 김해아우 발목을 삐었다. 졸지에 환자가 3명이다. 부회장. 나. 김해아우. 졸자는 일행들 3사람 걱정말고 앞서 가라하고 번갈아 가면서 스프레이<파스>통증 부위에 뿌려가면서 연하천에 도착하니 앞서간 일행들 멍석깔고 점심식사 준비에 바쁘다.
 

 

연하천 대피소.
민간인이 관리하는 대피소다. 많은 사람들 목이 타는지 찬물에 담가둔 맥주 기분좋게 들이킨다. 서팀장은 고기를 얼마나 가지고 왔는지 3일을 먹어도 남을것같다.
저러니 베낭 무게가 20kg를 넘지 삼겹살에 소주한잔 마시니 발목과 무릅 통증이 약간 가라 앉는것 같다. 동산 최총무와 산행대장.서팀장은 똑같이 발목 좋지않은 3사람 걱정이 되나보다. 나이가 들었음이 겁이나고 첫날 산길 22km의 강행군이 졸자에게는 무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연하천을 뒤로하고 능선을 따라 가니 눈앞에 낮익은 봉우리 하나가 마주친다. 토끼봉(1534m). 토끼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일까? 안개는 봉우리를 금방이라도 삼킬듯이 달려든다. 마치 태풍에 해일이 이는것처럼 거대한 봉우리는 한순간에 사라진다.
이제 3사람은 선두와는 너무 먼 거리에 있다. 세석평전이 아스라히 멀리 있듯이...
 

 

왜 우리는 유독 지리산에만 흔들릴까?
지리는 생명이다. 살아 있기에 사람들이 간다. 지리는 가슴을 활짝열고 사람을 반긴다.
비굴한 사람도 덜 가진 사람도 지리는 용서하고 포옹한다.
지리는 기다림을 주고 인내와 끈기 그리고 사랑도 준다. 토끼봉을 넘었다.
이어지는 명선봉도 넘고 비경을 만난다. 바로 형제봉이다. 의좋게 마주하며 천년세월 낙락장송을 피우고 삭풍도 눈보라도 견디며 사람에게 교훈을 준다. 마주보며 사랑하라고...
 

 

오후 4시 10분경 지친 우리는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했다.
선두는 영신봉을 넘어 세석에 거의 도착 했으리라. 한숨 못자고 온것이 컨디션 조절에 낭패를 준것임을 느낀다. 김해아우도 부회장도 아픈다리 끌며 용케도 간다.
그래 종주시간이 어디 대수던가 해 떨어지기전 세석에 도착해야 하는 긴박한 마음에 걸음은 자꾸 더디고 나무의자에 잠시 휴식한후 일어섰다.
경수애비야 이제 나는 1박2일 지리산 종주는 못하겠다. 푸념에 아우도 우리 나이에 1박2일은 무리라고 응수한다. 그래 청춘도 아닌데 하루 22km를 걷는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덕평봉과 칠선봉 사이 잘 생긴 바위 위에서 지쳐도 흔적 한나씩 남긴다.

 

 

이건 산행이 아니라 고통이다.
오면서 사람들을 만나자 지리산 종주 1박2일은 사실 무리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해는 스스히 기울고 오후 7시30분 영신봉 나무계단을 오를때는 고통에 후회 스러워 영신봉 노을마져 이쁘지 않다고 느끼는데 벌써 세석평전 위로 달이 떠올랐다.
어둠은 지리를 완전히 덮어갈때 오후 8시 불빛 환한 세석에 도착하니 일행들 저녁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다. 동산 최총무 귀마개. 그리고 달빛 세석 환하게 비추는 대피소 자갈밭에서 나눠마신 양주 덕에 3시간이나 눈을 부치고...
김상복아우와 달밤에 한 소름돋는 냉수마찰도 아마 평생 못잊을꺼야.
13시간 30분 고통 이였지만 그래도 와서 생각하니 행복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