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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마여행

잃어버린 날을찾아...


잃어버린 날을 찾아...


잃어버린 시간이 멈춰 있는곳 영월.

동강과 서강이 휘감아도는 영월은 비운의 역사를 간직한 고장이다.

단종의 애절한 울음이 청령포를 돌아나와 유장한 강줄기를 건너 장릉에 닿고 돌담밖 휘늘어진 수양버들

가지는 목놓아 통곡하던 여인들의 한이 매달려있다. 

첩첩산중 사이를 비집고 흘러 태극을 만드는 동강과 서쪽 산기슭을 적시며 섬을 만들어 산수화를 만드는 서강.

이 두강이 생명의 땅 영월을 보듬고 있다.  

그래서 영월은 산과강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물론 아픈 역사를 기억할려는 사람들이 오매불망 가보고 싶어하는

가슴뛰는 고장이다. 영월은 강원도 남부에 위치하여 동쪽으로는 태백시 서쪽으론 횡성군.원주시.남으로는

충북 제천시와 단양군 경북 영주시.봉화군.북쪽으로 정선군과 평창군과 접하고 있다. 

 

2006. 2. 9. 어디론가 떠나지 않고서는 숨도 한번 제대로 쉴수 없을것 같은 허망함에 걸망 하나만 메고 버스에 

올라 대전을 경유 다시 강릉을 찾아갔다. 

겨울밤 경포 바다의 무서운 파도는 이방인의 마음처럼 천갈래 만갈래 찢어질듯 포말지어 백사장을 때린다.

여름내 분주하던 해변 횟집 아랫목에 앉아 기우는 술잔위로 따슨 사람의 얼굴이 보이더니 이내 서글픈

마음마져 녹여준다.  아 ! 나는 무엇을 담으려 왔는지 알것같다.

날새면 술익는 마을 주천의 섶다리. 5대 적멸보궁의 하나인 법흥사.서강의 절벽에 우뚝솟은 선돌.

단종 유배지 청령포. 단종의 능 장릉. 그리고 한반도 지형을 또 닮은 선암마을로 가야겠다.

 

 

2006. 2. 10. 밤새 뒤척이다가 눈비비며 일어나 영월을 향해간다.

어제까지만 해도 초봄같던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먼곳에서 온 나그네를 움추려 들게하고 선머슴들

<부자(父子)간이듯>이 신 아침부터 설쳐대는 작은마을 해장국집에서 선지 해장국 한그릇에 마음까지

녹이며 산첩첩한 영월을 찾아가네. 술취한 선비가 아니더라도 절경에 절로 시한수 읖조릴 분위기가

감도는 서강 절벽에 칼로 자른듯한 입석이 나그네 발목을 잡는다.  

발아래 소리조차 없이 흐르는 옥빛 서강 물빛을 보니 산중 이곳에도 봄은 멀지 않았나보다.

선돌의 유래는 아래 사진속에 있으니 지나가시다가 꼭 읽어보시고 가시길...

선돌의 위치는 영월군 영월읍 방절리다. 주차시설 있음 입장료 없음   

 

 

 

단종비애를 말하지 않고서는 영월을 말할수는 없을것이다.

비운의 왕 단종이 묻혀있는 장릉은 영월읍에서 소나기재로 오르는 길목에 있어도 초연하다.

필자가 찾아간 그날 능엔 두견새도 소쩍새도 울지않고 애절한 울음소리만 바람결에 들려온다.  

600여년전의 이야기로만 치부하기엔 너무 가슴아픈 사연이 모인 이곳에서 우리 기억을 되살려보자

단종은 1441년 태어나 1450년 문종이 즉위하자 왕세자로 책봉되어 1452년 문종이 젊은나이로 승하하자

12세의 어린 나이로 조선 6대 왕으로 즉위한다. 1456년 왕위찬탈을 노린 세조(수양)가 계유정난을 일으키자

단종은 삼촌인 수양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15세에 상왕이 된다. 그러다 단종의 복위를 꾀하는 사육신사건이

일어나자 1467년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다.

그해 9월 금성대군이 다시 단종복위를 꾀하다 사사되자 노산군에서 서인으로 강등되어 10월24일 17세의

어린 나이로 관풍헌에서 세상을 떠났다 적었다.  

 

 

장릉 가는길. 폐를 찌르는 울음소리가 바람결에 들리는듯 하다.

 

 

 

일찍이 이곳을 오고 싶었다.

멈춰버린 시간을 돌릴수는 없겠지만 왕위찬탈의 희생양이 된 고귀한 인재들이 풀잎처럼 드러누운 그곳엔

필자의 선조 한분도 계신다.

바로 단종 복위를 주도한 사육신의 한분이신 유응부(兪應孚). 본관은 기계(杞溪).자는 신지 호는 벽량(碧梁)

시호는 충목(忠穆)이다. 일찍 무과에 급제하여 세종과 문종의 총애를 받아 1452년 단종 즉위시 의주목사다.

1453년 평안좌도 절제사 1455년 세조1년엔 동지중추원사에 임명되었으나 전.현직 집현전 학자 출신인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등과 함께 상왕인 단종을 복위 시키려다 김질의 밀고로 전원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으로 세상을 떠난다. 세조가 친국(국문)시 "너는 무엇을 할려고 했느냐고" 묻자 족하(足下 : 세조)를 죽이고

상왕인 단종을 복위 시키려 했다고 말해 인두로 살가죽이 도륙되는 극심한 고문을 받고 생을 마감했다.

1691년 숙종17년 12월에 복관 되었으며 노량진 민절서원.충주 노원서원.연산 충곡서원.영월 창절사.

대구 낙빈서원에 제향 되어 계신다. 훗날 병조판서에 추증 되셨다.

이곳에서 필자는 위패를 만나 삼가 옷깃을 여미고 600여년전 두 임금을 섬길수 없다며 식은 인두를 더 달구어

오라 대갈일성 하시던 그 시절로 달려가고 있었다.  

 

간밤에 불던바람 눈서리 치단말가

낙락장송이 다 기울어 지단말가

하물며 못다핀 꽃이야 일러 무삼하리오  -유응부-

 

무참히 꽃잎처럼 떨어지는 인재들을 아까워 한탄하며 지은 글이다.

 

 

 

단종복위를 꾀한 사육신과 뜻을 같이한 분들의 위패  좌우론 상궁등 단종을 모시다 숨진 신하들의 위패도 있다.

 

 

능을 관리하던 참봉등이 기거하던 곳

 

 

청령포.

육지와 고립된 땅.

이곳도 동토의 땅이였으리라. 

한양을 출발해 28일여만에 폐위된 임금을 만난 옥빛 서강은 몸서리치며 목놓아 울었을것이다.

스산한 바람이 강바닥에 깔리고 졸지에 퇴직이 가슴을 죄는 나그네도 이곳에 서니 유배지를 향해 가는듯하여

생면부지인 사공의 침묵이 섬득하다.

그날의 강물은 더 시퍼렇게 보였으리라 순간 순간 목을 조여오는 죽음의 공포는 칼바람에 부대끼며 우는

댓잎 쓸리는 소리보다 더 무서웠으리라.

섬안(청령포)적송들이 단종을 향해 모두 머리를 조아렸다는 어가(복원)에 당도하니 멀쩡한 담벼락을

뜯어내는 공사가 한창이다.(???) 단종 스스로 육지고도(陸地孤島)라 불렸을 만큼 청령포는 시퍼런 서강이

외부와 무섭게 단절을 시키고 층층암벽이 공포를 느끼게 했을것 같다.

두고온 왕비 송씨를 그리워하며 주변에 돌들을 하나하나 주워 그 그리움으로 쌓은 층암절벽위 작은 망향탑이

유일한 단종의 유적이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가(어소)는 단종이 머물던 본채와 궁녀 및 관노가 기거했던

사랑채는 모두 소실되어 현재의 것은 복원된 건물이다. 밀랍인형이 그때를 재연해 숙연하다.

 

 

단종이 청령포를 가기위해 건넜던 서강나루. 항포돛배는 돛이 내려져 휴식하는듯...  배한척만 사람들을

건너주고 있었다.

 

 

단종이 청령포에서 생활했던 어가(어소). 무슨 영문인지 담벼락을 뜯어내는 공사가 한창이다. 주변 적송들이

모두 임금이 있던 어소를 향해 고개를 숙인게 궁금하다.

 

 

 

어소 뒤 옥빛 서강줄기. 어린 임금은 물빛도 무서웠으리라

 

 

관음송(천년기념물 349호)은 알리라.

고독과 외로움 죽음의 공포에 목놓아 울던 임금의 처지를...

그들(청령포 소나무)모두가 신하가 되어 일제히 어소를 보고 머리를 조아려 임금을 지키려 했건만 홍수로

서강이 범람하여 이곳 청령포가 물에 잠기게 되자 단종은 간신히 영월읍 객사인 관풍헌으로 피신해 가지만

숙부인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가 실패되어 세조에게 사사되자 몇달을 넘기지 못하고 여기서 한많은 생을 마감한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욕에 눈이멀면 혈족도 필요없는듯...허지만 권불십년이라 했다.

솔밭을 지나 빙판길 층층암벽을 조심스레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불현듯 삼천궁녀가 꽃잎처럼 떨어진

낙화암이 생각이난다.   

 

 

 

 

 

 

 

 

 

술에 취한듯 섶다리 밑으로 주천강은 흘러간다.

섶다리.

민초들의 애환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설움과 그리움의 다리다.

입하나 덜기위해 억지로 시집보낸 누이의 눈물도 묻어나고 가난이 싫어 장농속에 감춰둔 소판돈 전대에

차고 서울로 야반도주한 형아의 사연도 담겨있다.  

설움에 목놓아 부르던 유행가도 강물에 떠가다 여울목에 걸리던 섶다리.

필자의 고향강 영천강에도 예전에 있었다. 추억의 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