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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이 45세에(선조재위) 이곳 관찰사로 부임해 와 시심이 저절로 솟을듯한 죽서루와 선비의 기개로 품격있는 향이 뿜어져 나오는 관동지방의 적송(금강송.미인송)그리고 푸르다 못해 옥빛과 다시 검푸른 빛이 요동치며 겹겹히 포개지는 동해바다. 넉넉함이 앉아있는 정자들을 바라보며 裕裕姿作 불멸의 관동별곡을 썼으리라. 그렇다. 관동 관서지방의 금강송은 단순히 푸른솔이라기 보다는 특유의 자태로 노송의 어우러짐을 나그네에게 보여준다. 특히 오지의 산길에서 만나는 이들의 모습에서 범부는 선비의 흉내를 내는건지도 모른다. 지난주 단종의 애절한 사연이 있는 청령포와 장릉의 답사는 잊고도 한참이나 지난 멈춰진 시간들을 다시 일깨워준 소중한 일로 기억되어 내친김에 푸른시절 추억이 묻어있는 강원도를 좀더 가슴에 담고싶은 충동에 강릉을 다시가 삼척시 일원의 잘 알려지지 않은곳과 세인들에게 많이 알려져 지금도 발길이 계속 이어지는 명소를 한번 찾아보기로 했다. 우선 25일은 남설악 한계령에 접한 여심폭포가 있는 흘림골을 올라 설악주변을 조망하고 26일은 테마여행을 할 요량으로 삼척시 미로면의 영경묘소와 같은 면(面)에 소재한 준경묘를 둘러본후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릉과 봄오는 동해 해변의 파도소리를 업다운 한후 관동별곡의 터 죽서루에 취한뒤 동해의 아름다운 추암까지 둘러보기로 계획하고 24일 오후 목적지를 향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여행은 노소 할것없이 설레임 그 자체다.
밤새 새로움에 뒤척이다가 일어나 부랴부랴 걸망을 챙겨 숙소를 나와 한계령을 향했다. 구비구비 돌고도는 한계령은 구름도 쉬었다 가야하고 사람도 숨이차 덜컥 주저 앉아야한다.
한계령(寒溪嶺).
군(軍)시절 추억이 있는 인제군의 북면과 양양군 서면을 잇는 재.
대청봉을 오르는 최단코스이며 남설악의 대표격인 점봉산을 오를수 있는곳도 한계령으로 대간길을 이어준다. 예전엔 양양군에 속한산을 설악산이라 불렀고 인제군에 속한산은 한계산이라 불러 한계령은 여기서 그 이름을 따온것이라 전한다. 그 옛날 양양사람들이 인제와 서울을 가기위해 구비구비 험한 산길을 넘다가 산도적떼의 습격을 받으므로 해가지면 이 재를 넘지말라며 양양군 서면 오가리에 금표(禁票)라는 글을새겨 비석을 세웠다.
저 산은 내게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 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필자세대를 산 양희은씨가 부른 한계령의 가사다.
얼굴을 부드럽게 스쳐가던 바람이 머물던 아랫마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대청봉의 한기가 내려온것인지 손이 시리고 잔설이 군데군데 보여 가슴 헤치고 먼길을 달려온 산객을 움추리게 하지만 마음은 더 없이 행복하다.
군 복무시절 말로만 들었던 오색약수터를 가는 주차장엔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보이지않고 용소골 써레발 같이 생긴 암봉이 설악의 종(種)임을 자랑하듯 내려다 보고있다. 역시 산은 인간을 건강하게 만드는 마지막 보루인지 모른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가쁜숨을 몰아쉬며 오르는지 모른다. 사실 설악은 필자가 자주가는 지리산과는 달라 육산의 푸근한 품을 느낄수는 없지만 파도처럼 출렁이는 기암의 노도에 팔한번 저어 보지도 못한체 코와 입으로 물을 마시며 자멱질 하다가 그대로 빠져 허우적거리기 일수다. 그기다가 운해가 바위섬을 하얀천으로 감아 둥둥 띄울때는 인생의 화양연화(엄동설한을 견뎌 순백의 꽃망울을 터뜨리는 목련의 한때처럼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순간)를 느낄만한 경지를 보여주는게 설악이다.
한계령길. 산은 나를 내려가라듯 고개길도 자꾸 가파르진다.
남설악중 간단하게 산행을 할수 있는곳이 용소폭포골과 연계된 흘림골이다.
이곳도 3. 1. 이면 어김없이 통제가 되어 사실상 설악산은 5월중순 까지는 발을 들여 놓을수가 없다고 명품 길잡이가 말해 하마트면 설악의 내음(내미)도 맡지 못하고 여행만 할뻔했다. 간이 매표소에서 아이젠이 없으면 산행이 어려울것이라는 공원 직원의 말을 뒤로한체 응달 빙판길을 조심스레 올라가니 속 훤히 드러내고도 푸른 생명을 늘어놓은 주목이 삶이 생명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는것 같아 살아 이렇게 건강한 두다리로 산을 오를수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지...
제법 땀이 맺힐무렵 여심폭포를 만났다. 여심폭포는 흡사 여자의 음부같이 생겨 그곳에서 계곡으로 물이 흘러내려 흘림골이라 부르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빙폭이 되어 폭(瀑)안을 볼수 없는것이 더욱 궁금증을 자아내게해 사진한장을 찍었다. 메뚜기처럼 생긴 바위군이 설악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필자를 향해 팔을 벌리며 고함을 지른다. 주목의 푸르름이 잔설속에서 더욱 돋보인다.
빙폭이 되어 안을 들여다 볼수없는 여심폭포
갑자기 고요하던 골짜기가 시끄럽다. 등선대위 능선에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와 어둠처럼 깔렸던 호젓함이 깨어졌다. 가파른 빙판길을 오르기가 쉽지않아 몇번이고 미끄러질듯 하면서 능선에 닿았다. 이제부터 대간길과 설악의 봉우리를 그림처럼 조망하며 길잡이님의 설명을 기다리고 있다. "저게 점봉산이예요" 대간길은 이렇게 돌아서 저쪽 능선으로 갑니다. 필자는 긴장해진다.
5월쯤 대간길에 나설려고 마음먹고 마음을 추스려보지만 평균 13여시간의 구간종주를 해낼수 있을지 나이탓에 아니 무릅탓에 사실 겁이난다. 멀리 한계령 휴게소엔 지친 사람들이 모여 남동쪽 사방에서 모여 남대천으로 가는 오색천과 서북쪽 사면에서 발원하여 소양강 상류를 만드는 북천을 그리며 영동과 영서를 이어주는 숨찬고개의 추억을 만들고 있을것이다.
그 위로 2004년 한 여름 샘도 하나없는 귀때기청봉-장수대까지의 사투를 생각나게 하는 귀때기청봉이 추억처럼 새롭게 조망된다.
눈앞 저멀리 점봉산이 아스라히 보이고 길잡이님은 대간길을 필자에게 설명한다.
등선대서 바라본 한계령 휴게소와 목말라 탈수고비를 넘긴 귀때기청봉이 아득하다.
한폭 동양화를 그린듯 ...
다져진 눈길은 오를때보다 내려갈때가 더 위험하고 아찔하다.
길잡이님이 서둘려 나오시다 깜빡해 아이젠을 두고와 필자의 아이젠을 한쪽씩 착용하고 내려가다가 간간히 넘어질듯 위태해 조심하며 내려서니 등이 서늘하다. 다시 한계령길을 내려와 노을과 야경이 그림엽서 처럼 아름다운 경포호숫가를 돌아가니 진객 청둥오리떼가 노을속을 정말 여유롭게 유영한다. 지난 여름 해거름때 눈물나도록 아름다운 토론토의 노을이 생각난다던 어떤이의 말이 생각나 한컷했다. 파도 밤새 뒤척이는 안목 인터파크에서 곤한잠에 빠져든것은 토종닭과 소주 여러잔의 위력만은 아닐터... 내일은 삼척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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