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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정맥 길

낙동정맥 종주 21번째 길 (오룡재-어림산-마티재)

낙동정맥 종주 21번째 길
오룡(미룡)재-시티재-어림산-마치재
2006. 6. 6. 날씨 안개 그리고 후덥지근함

진혼곡은 산야에 드러눕고...

임들이시여 ! 다시한번만 더 이 나라를 구원해 주소서!!!

 

낙동강의 마지막 교두보였던 안강.기계.포항.경주.지역의 전투는 6. 25. 한국전쟁사상 전무후무한

방어전투다. 특히 아군의 병력과 군수물자가 현격히 부족해 낙동강 방어(저지)선이 무너질 위기

에 직면해 있을때 육군 제3사단에 자원입대한 안강지역 학도병들의 장렬한 최후는 형산강을 피로

물들였으리라. 안강 포항 전투는 다부동 전투에 버금가는 혈전이었고 한국전쟁사에 영원히 기록

된 최고의 대첩이라 들었다. 따라서 오늘 필자가 걷는 이곳 기계.안강.영천.경주의 정맥길의 능선

곳곳에도 조국수호의 별이 된 가신임들의 혼들이 묻혀 있는곳이라 여겨져 옷깃을 여미며 간다.

진혼곡이 6월의 한낮 산야를 천천히 적셔가고 있었다.

 

 

이 땅의 6월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슬프고 아린 멍들이 가슴마다 새겨진 달 이다.

56년의 긴 시간이 흘러간 지금 젊은 세대는 이를 기억이나 할련지...아니다 그들은 이데올로기

그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찾아가지 않은 아니 찾을수 조차도 없는 6. 25. 한국전쟁의 무공훈장이 9만개가 고스란히 보관

되어 있다는 소리에 포연속에 산화한 임들의 넋은 안주나 하였을까?

대한민국 육군의 초급간부가 되어 오늘 처음 맞이하는 51주년 현충일을 내 아들은 어떤 자세로

임할까? 궁금했다. 이 녀석도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안건지 전화가 왔다. (밤 필자 귀가길에)

역시 그들은 군인이고 언제든 부름에 나갈 자세가 있어서 흐뭇해 이 말을 전했다.

아무리 퍼주어도 저들에게 요지부동의 이데올로기가 현존 한다면 "아들아 !대한민국은 아직도

휴전이고 조국 수호는 결국 너희들 어께에 달려있다. 퍼주고 있다고 절대 속지마라.  

 

2006. 6. 5. 늦은밤 다시 포항을 향해간다.

28번 지방도를 따라 안강읍을 지나고 "딱실마을 삼성주유소를 막 지나 우측 오룡마을로 들어가면

정말 아득히 잊혀진 고향마을을 만날수 있다.

문명의 이기는 시멘트 몇포대로 포장한 소로(小路 : 차2대 교행못함)와 드문드문 보이는 단칸집

지붕에 덧 씌운 스레트 몇조각을 얹어 놓은것이 전부다.

돌담위로 거미줄같은 줄장미와 찔레 그리고 호박넝쿨이 정겹다. 물론 모내기를 끝낸 무논에서

야단스럽게 우는 개구리떼의 발광마져 정겨운 70년대 우리 고향이 여기에 있었다.

 

필자는 여는 선답자(대간 혹은 정맥종주자)님들의 종주기처럼 몇시에 어디를 출발해서 몇시에

어느지점을 통과했다는 기록을 꼼꼼히 적는 종주기는 쓰지 않을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필자가 적지 않아도 이미 수도 없이 적혀져 있어 종주할 사람들의 참고서로는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급적이면 지형과 시간을 지양하고 대신에 그 구간에 종주한

마음을 담아내고자 한다. 어차피 그 구간을 가야할 사람은 가야하고 앞서간 사람이 2시간에 통과

했다고해서 나도 2시간에 그 지점을 사정에 의해 못갈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졸필로 필자의 느낌을 적을려고 한다.

 

 

다시 1시간여 차안에서 뒤척이다 안개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오룡재.

무슨 전설이 있을법한 재 이름이지만 누구하나 이야기해줄 사람은 없다.

저번 구간 마지막 부분 하산길에서 눈물 찔끔 나게하던 맞은편 능선도 진한 안개를 이불삼아

자고 있다. 밉상스러운 모습을 한번만 더 보고 갈려고 했지만 고생 시킨게 미안했던지 허허 미동

도 없다. 반대편 길옆 밭둑에 주차를 하고 반대편 능선을 오르니 산딸기가 누렇게 보리익는 소리에 샘이 난건지 저절로 익어가고 추억마져 새로운 오디(뽕열매)가 입술 연지까지 만들어 줘 새벽

길 상쾌하게 해 준다 싶었는데 왠걸 초장부터 맛좀 보라며 가파른 오름길이 인내를 시험한다.

땀.

비오듯 전신을 적신다.

젠장 고달픈 산길을 내가 걸어간다.

 

 

[엉겅퀴]지금까지 산길에서 이 보다 아름다운 자태와 때깔을 일찌기 본적이 없다.(엉겅퀴 중)

 

 

산도 S라인이 있다.

그러나 S라인의 산들은 높낮이가 너무나 뚜렷해 쉴새없이 고통을 준다.

오늘 산들이 세인들이 좋아하는 S라인의 명품들만 모아 놓은건지 시작부터 몸값을 해 역시 사람

이나 산 모두가 넉넉하게  생겨야 친한가 보다.

산딸기.

아니 ㅇ강 깨뜨리고도 남을만한 힘을 준다는 복분자가 지천에 익어 땀범벅이 된 필자 발목을 딱

잡고 손을 닿게한다. 그냥 한옹큼씩 입에넣은후 소주 한잔씩 마시면 "명품 복분자"술이다.  

기억하자. 꼭 기억하자 6월6일에서 15일사이 이 구간은 복분자가 지천이므로 소주1병에 크다란

바가지 하나만 들고오면 복분자술 그리고 복분자즙도 즉석에서 만들어 들수 있다. 

오늘은 이 길에 아직은 사람이 없다.  

 

 

그래도 고통스럽지만 이 산길을 가는 순간이 행복하고 즐겁다.

나이를 먹어감에 대한 불안을 떨치기 위한 집착일까?

자신에게 물었다.

나이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가?

또 긴 산길을 갈 용기와 자신은 있는가?

무언. 우울.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참 대담함과 간편한 생각으로 무심히 살아온 내가 세월의 흐름에 너무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뭔가를 살찌워야 하기위해 산길을 걸었는가?   

선잠깬 시티재 너른 휴게소에 "사랑타령"에 목메인 트롯소리마져 꿈길이다.

 

 

안강 휴게소. 시티재에 있는 대형 휴게소다. 주유소는 차들의 통행이 많음에도 폐소되어 있다.

 

안강 휴게소가 있는 시티재에서 건너편 능선을 오르기 위해서는 차량소통이 없을때 냅다 뛰어야

한다. 그리고 절개지 우측 방호망이 없는 지점으로 가 수직 수로위  리본을 확인한후 오른다.

수로의 중간지점에 앉아 아침을 들고 타고 온 휴게소 뒤 산줄기를 바라보니 큰 산들이 작은산 뒤

로 숨어 보이지 않는다. 다시 오름은 이어지고 산은 다시 야생화와 신록이 꽉 차 있다.  

진혼곡이 들린다.

조국을 사랑하는 눈이 6월의 신록처럼 푸르게 펄럭일때 부름이 없어도 달려갔던 사람들

파란하늘에 어머니 얼굴도 그리지 못하고 포연에 힙싸여갔다.

시공(時空)을 초월한 그들의 조국사랑이 여기에도 있다.

호국봉.

억겁의 세월속에서 의연히 변하지 않는 그들의 혼이 봉우리로 솟아있다.

 

 

 

하루가 다르게 검푸르게 변해가는 산하

산속 바위를 덮은 초록의 이끼는 세월의 무상으로 자라 빛이 없어도 잘도 살아간다.

후다닥 노루가 1미터도 안되는 지점에서 필자의 발소리에 놀라 달리고 일시에 산속은 급하게

날개짓을 하며 허공을 나르는 새들의 비상 소리에 고요는 깨어졌다.

떡갈나무숲이 이어진다.

나무아래 초록바닥이 잔물결로 여울지는 산길은 고요가 짙게 깔리는 평화다.  

 

 

 

 

무엇 때문에 이 산중에 철망이 설치되어 있을까?

이름없는 작은재에 발걸음을 멈춘 길손에게 이곳 궁금증을 풀어줄 것들은 한군데도 없다.

폐허로 변해 이제는 흉물로 남은 이런것들이 우리나라 맥 전역에 늘려 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수없이 파헤쳐져 맥은 끊어지고 두발로 잇지 않고는 온전한 맥(脈)은 대간을 비롯한 단

어느 한군데도 찾아 볼수가 없었다.

세상이 부서지듯 그렇게 망한후 홀연히 산속을 떠난 자리에 이렇게 불신만 철망처럼 쳐져 있다. 

 

 

부족함이 많아야 소중함을 안다고 했다.

배가 고파야 맛의 소중함을 알듯이 산길도 처음 시작할때 더 없이 달려가기를 원한다.

아득한 봉우리만은 오늘 넘지않게 해달라는 지친 산객의 바램은 두어시간후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긴 산줄기를 탈려고 한다면 시작을 말아야한다.

누구나 쉽게 말은 할수가 있겠지만 누구나 쉽게 이 산줄기를 탈수는 없다.

 

 

 

 

언제나 시작과 끝은 분명 있다.

그래서 이정표는 언제 보아도 정감이 간다.

마치재.

927번도로상의 고개로 경주시 현곡면 표지판쪽으로 가면 남사저수지와 경주 국립공원을 만나고

영천시 고경면 방향으로 가면 안강 전투에서 산화한 임들을 모신 국군묘지와 28번 도로를 만나

안강읍으로 진입한다. 현지인들 조차 아니 택시기사들 조차도 지명을 잘몰라 이동시 상당한 문제

가 매번 생긴다. 오늘도 마치재에서 부른 기사마져도 이 지명을 몰라 혹 정맥꾼들이 찾으면 정확

하게 갈것을 권했다. 종주산행이 아니면 평생 한번도 못올 낮선곳 여기도 대한민국이고 그리고

말이 통해 기분이 좋다. 다음 구간을 갈 높은 봉우리를 쳐다보니 겁부터 난다. 나이탓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