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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정맥 길

낙동정맥 종주 20번째 길 (한티재-이리재-미룡고개(오룡재)


낙동정맥 종주 20번째 길
한티재-불랫재-운주산-이리재-570.8봉-미룡(오룡)재
2006. 5. 28. 날씨 흐리고 비


 

밤새 한티재에 수많은 별이 떨어지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무심하게도 굵은 빗방울만 차 지붕

을 때리고 30여분을 격랑처럼 뒤척이니 어느새 사방의 신록들이 안개속에서 그 모습을 보여

준다. 가느다란 빗줄기 그리고 희뿌연 안개 길옆엔 비맞아 축 쳐진 향내나는 아카시아 꽃잎

이 여름으로 가는 6월을 기다리듯 하얀손을 내민다.

가느다란 햇살이라도 기대했던 산객은 더 이상 지체할수가 없어 신발을 조여메고 한티재를

오른다. (05시20분) 지난 구간 하산한 능선 삼거리에서 표시기가 여럿 붙어있는 우측으로

한참 내려가다가 표시기가 없어 되돌아와 반대방향으로 가보니 허허 지나온 한티터널 옆

절개지다. 다시 왔던길로 직진하여 내려서니 시야가 탁 트인 개간지가 나오고 이내 임도를

만났다. 시작부터 알바라니... 족히 30여분을 소모한 셈이다.

 

 

 

남녘은 여름이다.

그러나 이곳은 이제사 철쭉이 지고 이팝나무에 눈 처럼 하얀꽃을 피웠다.

비맞은 푸른바닥의 풀들이 산객의 다리를 젖게해 걸음은 더디고 울창한 숲으로 조망이 없는

산길에 오늘은 희뿌연 안개비가 또 실없게 훼방을 놓는다.

전형적인 낙동정맥의 성깔이 보여진다.

바로 능선 좌측의 급경사 비탈길 태백산맥답게 아니 어쩌면 대간의 자리를 슬그머니 내어준

서운함에 푸른동해와 낙동강을 좌.우로 거느리고 천리길도 넘는 먼길을 달려 삼수령의 애잔한 이야기를 대양을 향한 포구 푸른 다대포에 살며시 발을 담구며 풀어 놓았으리라.

 

사실 당시 우리는 사회시간과 국사책에서 위 태백산맥(일본이 격하시킨 산줄기.낙동정맥)을

국토의 등줄기라 배웠다.) 굴참나무 아래 푸른 풀잎사이옆 가랑잎 무더기로 산객 발소리에

놀란 산새들이 잰걸음으로 달리며 부르는 아름다운 목소리는 짝짓기를 위한 구애의 노래란걸 오늘 아침에사 알았다. 초록 물결을 맞으며 이루어지는 그들의 사랑은 詩가 아닐까?

따라서 지금은 산에서 "얏호 야^^^^^호"는 절대 금물이다. (오늘도 운주산에서는 어떤이의

얏호소리가 산객뒤로 들렸다.) 산책하듯 이른 아침을 달릴거라고 굳게 마음 먹었던 산객은

흥건히 젖은 옷과 습도로 천천히 지치기 시작한다. 힘겹게 550봉과 502봉을 차례로 올라

화령현 사거리를 지나 불랫재(블랫)에 도착하니 비포장 임도다.

멀리 산과산이 포개진 사이로 운무가 춤을춘다.

 

 

 

 

오늘 산길도 예사롭지않다.

산줄기가 어디 한곳이라도 만만한곳이 있겠냐마는 높낮이가 심하고 일단 옷과 신발이 빗물

에 젖어 보행이 가볍지못해 이내 지친다. 아는길도 뚜렷한 산길도 지도를 자주보고 확인 하면서 가야한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종주길이다.  

가파른길 숨헐덕이며 운주산 으로 가는 옆길로 하여 포항일대의 진산 기계면의 운주산(구름이

기둥처럼 받혀 주는산)에 도착하여 주변 조망을 한후 리본을 따라 한참 내려갔더니 표시기가

없다. 의심이 들어 지도를 펼쳐보니 이곳 운주산은 정맥길이 아니라 정맥길에서 약간 벗어난

산이다. 다시 운주산 정상으로 올라가 능선을 따라가 돌탑 봉우리에서 직진이다.

 

 

 

                                        운주산 가기전 돌탑 여기서 직진

 

산속 청아한 산새소리는 신록의 물결과 어울려 낭랑하다.

하늘이 흐려 얄밉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 앙증맞은 산새들의 유희는 산릉을 춤추며

넘어간다. 자유를 향한 힘있는 날개짓에 취해 산객도 힘내어 또 봉우리 하나를 넘는다.

낮선 산길에 아니 다시는 쉬이 올수도 없는 이 산줄기에 야생화는 지천으로 핀다.

초롱처럼 메달린 둥글레. 독성강한 천남성의 자태는 고고함마져 돌지만 소름돋는 무서운 존재다.

빛깔좋은 갈퀴를 세운듯한 앵초. 하얀초롱 같은 은방울꽃.그리고 어릴적 울집 밭둑에 지천으로

피던 돼지감자꽃들이 길가는 산객을 반긴다. 따라서 이름모를 야생화 그리고 겹겹으로 포개어진

산릉들만 보아도 종주산행은 힘들지만 의미있는 긴 산행길이다.  

그래서 다시는 하지 않을거라고 골백번을 다짐해도 어느새 눈앞에 다가오는 장릉의 물결에 굴복

하며 걸망을 다시 챙기게 된다.

 

   

 

                          

 

       

 

    

 

천남성

 

       

 

정맥길은 절대 운주산 방향으로 가서는 안된다.

단 정맥길에서 만나는 진산이므로 잠시 들려다 오는것은 권하고 싶다.    

다시 1시간 가량의 알바를 하고 힘들게 810봉을 넘고 비로소 "곤드레"라는 나물도 하나 찾았다.

물론 다음번엔 산길에 또 지천으로 피어 있어도 모르겠지만 ...

야생 나물의 보고였던 강원도도 전국에서 몰려드는 채취꾼(봉고.지프등)들의 남획(뿌리째 채취)

으로 어떤종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단다. 이리재에 도착하니 역시 봉고차와 승용차로 원정온 남자

나물꾼들이 포대 하나씩을 들고 우리가 진행할 배티재 방향에서 내려온다.

이리재는 영천시 임곡면과 포항시 기계면의 경계재. 영천시 입간판이 재임을 입증이라도 하듯

길손을 반기고 재옆 너른 공터에서 점심을 먹기위해 자리를 잡았다.

곰추.곤드레.참나물쌈의 향이 고운님의 살내음으로 되살아난다.

 

 

식탁바위

 

 

 

대-포 고속도 멀리 안강읍이 보인다.

 

 

올바른 종주길이 아니면 표시기를 부착하지 말자.

종주길에서 간혹 큰 낭패를 보는건 선답자들이 엉뚱한길로 가면서 리본을 부착해 이를 믿고

따라 가다가 두어 시간씩 알바를 하는 경우를 종종 겪었을 것이다.

안강휴게소가 있는 시티재까지 오늘 소화할 예정 이었지만 알바와 수십개의 오름과 내림 그리

날씨로 인한 주변 한경의 여건으로 기진해 미룡고개(오룡재)에서 끝을 내어야 할것같다.

 

이리재에서 570.8봉까지 3시간여의 행군은 정말 많은 인내를 요구하였고 도덕산 못미쳐 우측 미룡마을로 내려가는 급경사 비탈길은 내리는 비로인해 바닥이 미끄러워 눈물이 맺힐 정도의 고통이 따랐다. (물론 이 지점을 미룡재에서 도덕산 밑 능선까지 올라도 30여분이 소요된다고 적혀있음) 그리고 이 지점을 내려오면서 맥인지 하도 의심이 가 몇번이고 확인을 벌이며 돌아와 원색 지도를 펼쳐보니 예전 간혹 선답자들이 도덕산- 자옥산- 삼성산을 거쳐 532봉을 올랐으나 자옥산과 삼성산사이 도로옆으로 성산 저수지로 가는 물줄기가 있어 맥이 아니라고해

이해가 간다. 너덜지대의 이 구간은 면산이후 제일 밟기싫은 지점이라면 좀 과한건지...

 

 

이리재. 영천과 포항 기계의 경계재

 

 

 

 

무엇이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눈 한번 붙이지 못하고 이 길을 나설까?

입구 찾아가는 시간  종주시간 그리고 돌아오는 시간을 합쳐 꼬박 24시간을 뜬눈으로 지내야 하는지 때론 자괴감마져 들지만 길이있고 사람이 있어 가야한다.

무엇을 남기려고 하는것도 아니다.

고즈녁한 산길에서 그저 인생의 의미를 배우고 싶어서 산을 올라 지금까지 걷는다.

꽃피고 떨어지고 잎피고 고목됨이 生과死의 순리고 운행이라고 적었다던가?

우리네 삶 푸르다고 느끼지만 생과의 이별이 그리 멀지도 않을터 죽도록 사랑하라.

고운 산길에 속세의 흔적일랑은 남기지 말자. 

무수히 정맥길 떠드는 기사 양반의 무용담이 가랑비에 젖어갈때 마주 앉아 가자미회에

소주 한잔이 무척 그리워지네 / 20060528 본관 기계에서

 

 

미룡재(오룡재라고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