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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정맥 길

낙동정맥 종주 22번째 길

낙동정맥 종주 22번째 길
관산을 오를때 차라리 주저앉고 싶었습니다.
마치재-471봉-청석재-316.4봉-관산-294.9봉-만불산-아화재
2006. 7. 15.  

 

 

비는 이 땅을 초토화 시키려 작정했는지 연일 위 아래를 오르내리며 요즘 같이 한몸 간수하기도

힘든 서민들의 가슴에 다시는 치유 할수도 없는 큰 아픔을 주고있다.

첨단 과학도 자연 재해의 힘에는 너무나 보잘것 없이 무력하고 어쩌면 환경오염의 주범인 인간의

업보라 한발 양보하며 생각해도 이 건 해도해도 너무 심하다.

형체도 없이 수마가 할퀴고 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분노와 울분 그리고 망연자실한 얼굴들만 남아

있어 그 애처로움과 설움만 북받혀 오른다. 

 

대한민국의 모든 중심(정치.경제.문화.사회.)은 늘 서울의 몫이였다.

서울을 살지않는 서울에 갈수 없는 사람들은 언제나 서울을 동경하며 산다고 했던가?

그 만큼 지방은 그 중심에서 비켜나 홀대받고 있었기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울도 세계속의 도시라며 자랑하던 수도[首都. 水都(?)]서울도 폭우앞에는

맥도 못추고 황톳물에 젖었다. 우리 다시한번 가슴에 손을얹고 생각해보자.

이번 폭우로 인재(人災)과 아닌 자연재해가 발생한곳이 과연 몇곳인가를....


 

필자가 사는 남부지방(진주 창녕.남해 산청등)을 강타한 장마전선은 전국을 휩쓸어 가는곳마다 침울한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물폭탄. 쉼없이 퍼붓는 이 물줄기를 빗줄기라고 말할수는 없어 사람들은 물폭탄

이라고 한다. 2006. 7. 18. 여긴 다시 강한 빗줄기가 시작되고 필자의 가슴은  두근 거린다.

 

2006. 7. 14.(금)밤 10시30분 마치재가 있는 경주시 현곡면을 향해 이동해 간다. 일기예보는 강한 빗줄기

가 이 지역을 17일과 18일 사이 이틀 연속 강타한다고해 불안한 마음이 앞서지만 더 이상 머뭇거리다

가는 정맥길이 언제 끝날줄 몰라 조바심에 모험을 하기로 했다.

만약 구간 출발시 폭우가 시작되면 호젓한 서라벌의 솔숲 정겨운 릉(능)이라도 찾아가 선조들의 얼이라

도 마음에 새기리라 생각하며 늦은밤 경주를 향해 차를 몬다.

연휴라서 그런지 남해고속도엔 제법 차들의 불빛 행렬이 긴 꼬리를 물어 보기가 좋다. 그러나 잠시후

신나게 달리던 필자의 애마(96년산 크레도스)는 발목을 잡히고 만다. "한미 FTA"협상을 반대하는 농업

인 시위대가 고속도를 점거해 먼 길 그것도 길치라 더 어둡기전 마치재를 찾아야하는 산객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지체되는 시간이 길어지면 여기서 포기하고 되돌아가야 할 상황까지 직면해 있다.

시위.

힘없는 민초들의 울분과 설움 그리고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허지만 물류수송의 근간인 고속도를 점거한 농성은 좀 심하지 않을까? 물론 힘없는 민초들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위정자들의 태도를 보면 필자 역시 속에서 불덩이가 솟는게 사실이지만 ....

길이 뚫릴 기미는 전혀 없어 보이고 밤하늘엔 저들의 마음처럼 무던히 흐려 별빛이라곤 없다.  

참 오랫만에 올려다 본 밤 하늘 지금쯤 은하수강을 사이에 두고 일년에 한번 만나는 견우(할배)와 직녀

(할메)의 애닳은 사랑이 유성으로 긴 꼬리를 내며 떨어질텐데 ...

장지(나들목)로의 회귀.그리고 밤길 더 더욱 어두운 나는 마산까지의 국도 운행은 긴장의 연속이였다. 

 

 

 

2006. 7. 15. 동 틀 무렵의 서쪽 하늘에 달이 보인다.

먹장 구름이 빠르게 이동 하면서 달을 삼킨다.  가야할 정맥 능선상에 운무가 피어 오르는것이 희미하게

보이고 제발 들어 붓더라도 시작할때만 내리지 않기를 수번 빌었다.  효험이 있었을까? 아니면 날씨도

밤새 달려온 산객의 마음을 읽었는지 동녁하늘이 밝아지고 여명의 빛이 녹색 나무가지 사이로 영사기의

한줄 불빛처럼 길게 내려 앉는다. 경주시 현곡면과 영천시 고경면의 경계인 마치재엔 중년을 훌쩍 넘긴

노 부부가 산책을 나왔다. 아마 그들의 눈에는 이른 새벽 걸망을 메고 산길로 접어드는  내 모습이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을까? 예전 필자의 군 시절에 이런 광경을 보았다면 바로 가까운 군부대나 112에 신고를

하지 않았을까? 겨우 10여분 남짓 산속을 걸었는데 땀이 비오듯해 진행하기가 매우 불편하다.  

좌측 나무가지 사이로 경주 현곡면 남사리 방면 927번 도로가 호젓히 보이고 길 너머 산등성이로 선녀의

날개옷 마냥 흰 운무가 연신 춤을추며 봉우리 사이로 오른다.  

평탄하던 산길은 가쁜숨을 몰아쉬게 하고도 모자라 숨이 턱에찬다. 가파른 오름은 한숨도 자지못한 산객

을 고통스럽게 하더니 모자 끝으로 수없이 떨어지는 땀방울을 쳐다보며 390봉으로 짐작되는 봉우리에 

닿고보니 기진 막말로 입안에 화약냄새가 난다. 첫번째 고행의 오르막길의 시작.산객은 사기가 떨어지고

갑자기 고급스런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부럽게 생각되니 아직도 산객은 수양이 덜 된건가? 

출발한지 1시간여 색깔 고운 황톳재에 도착하니 레미콘차들이 도열해 있다. 왜 일까 ?????   

           

 

▲ 청석재.

 

이어 밋밋한 봉우리 310봉과 또 사람 지치게하는 작은 봉우리들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내려서니 청석재로

추정되는 시멘트 포장길 고개에 닿는다. 자귀나무 꽃이 아름답게 피어 일순간의 산객 고달픔도 풀어주지

만 다시 건너편 오르막에 올랐다. 덕정리 삼거리와 연결되는 작은 도로로 좌측에 모텔이 있었고 조금 더 가면 마치재로 이어지는 927번 도로와 합류가 되나보다.

새벽에 조금 먹었던 식사가 체한건지 여간 불편하지 않고 2년전 간단히 수술한 왼쪽 엉덩이 부분이 당겨

오늘 산길은 정말 고통스럽게 가야할것 같아 불안하다.

저 멀리 예전 어르신들이 사용하시던 중절모의 윗 부분처럼 생긴 관산으로 추정되는 봉우리가 시야에

들어와 아득히 먼 저곳까지 걸어 갈것을 생각하니 산을 줄창 다녀도 긴장이 된다.  

푸른 능선을 걸어도 땀은 쉼없이 온몸을 적신다. 276봉까지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던 산길은 관산 아래

까지 제법 여유를 줄려는지 넉넉하게 풀어놓아 사방을 둘러보는 여유로움도 있지만 야산 봉우리 마다 숲

이 꽉차있어 조망은 어림도 없다.

 

 

 

사진 ▲ ▼ ▼ 관산

 

 

 

 

 

주저 앉아 그 자리에 돌이 되고 싶은 심정이다.

내 인생의 고달픔이 오늘 이 산오름 보다 더 고통 스러울때가 있었을까?

흔히들 우리 인생을 산의 오르막 과 내리막에 비유 하지만 지금 이 순간처럼 고통스럽다면 살아갈 의욕

마져 상실하지 않을까? 사뭇 걱정이 된다.

아무 생각이 없다.

고통스럽다는것 외는 그 어떤것도...

관산은 7-8월에는 가지마라 아니 돌아갈수만 있다면 돌아가라.

그것이 정맥길 어긋나는 행위라면 옆으로 용수철 처럼 길을 내어서 가라. 낙동정맥 22번째길 그 길엔

이름값 톡톡히 하는 관산이 있었다. 뭐 산 높이가 고작 393.5m를 가지고 뭔 호들갑을 떠느냐고 말 하시면

바닥에서 봉우리까지 직선으로만 오르는 관산 산행을 꼭  권하고 싶다. 정말 살다가 미운놈 생기면 사정

없이 이곳을 데리고 오고싶다. 11시10분. 산행시작 5시간여 내가 내 옷에서 땀냄새를 지독하게 느낄 정도의 비지땀을 흘리며 오른 관산의 정상은 그저 평범한 우리 뒷산 봉우리의 못생긴 그 모습이다.  

식은 밥 한덩어리를 얼마 남지않은(나중 구간마지막 지점부턴 입만 적심. 물부족)물에 말아 2쪽(무우)

남은 김치로 요기만 채우고 한참만에 일어서니 허허 부실하게시리 다리가 떨려 쓰러질려고 한다.

멀어져가는 관산이 아쉬운것이 아니라 빨리 벗어나고 싶어 걸음을 재촉해 보지만 마음뿐이다.

20여분 내려오니 능선 좌측으로 심곡 저수지의 황톳물을 놀기좋은 모래밭으로 착각해 혼자 웃었다.

에구 이제 부실해서 헛것도 보이는구만... 딱하다 딱해 ㅎㅎㅎㅎㅎㅎ   

 

 

 

만불상이 보여야 끝점인데 한참을 걸은것 같은데도 거대한 미륵불은 보이지 않는다.

관산아래 밤나무단지를 지나서야 그토록 갈망하던 미륵불이 보여 심적인 부담이 줄어들고 입만 적시는

물부족에 게으른자의 정해진 고통을 고소하게 생각하며 여치집 처럼 꼬인 타래란을 카메라에 담고 숲을

빠져나오니 밝은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더니 규모가 큰 수세미 농장을 만난다.

길다란 수세미가 늘어져 도열한 모습이 어찌나 보기가 좋던지 마침 김을메고 있는 농장주에게 수세미의

용도를 물었더니 처음 만나는 산객에게 아주 자세히 소개를 하는데 수세미가 이렇게 다양하게 약용과

피부 미용제로 쓰이는줄 정말 몰랐다. 여자분들이 이 이야기를 들었으면 귀가 솔깃할 내용인데 기록을

못해 하산 하다가 땀으로 거의 다 흘러버렸지만 몇가지만 적는다.

아토성 피부질환에 탁월한 효과. 여드름 치료에 탁월한 효과. 여성분들 얼굴 팩(오이 맛사지 보다 더

좋다고 함.) 기관지등에 효과가 있으며 제품은 액기스와 고로쇠물 처럼 줄기에서 채취한 수액등 그리고

뭐가 더 있었는데...(?) 등을 판매하고 있으며 필요하신분은 전화를 주시면 무료로 일정량을 보내 준다고

하면서 산객에게 가져 가겠느냐고 해 시방 산객은 눈썹도 여기 빼놓고 가고 싶다며 손사례를 하자 대신

수세미 3개만 얻어 인사를 하고 일어섰다. 한울 수세미 농장 박상호 대표께 감사 드리고 혹 제 집에 찾아

오시는분들 혹은 가족들중에 수세미 제품의 효능을 알아 보실려면 필자 이야기를 꼭 하시고 휴대전화

010-6480-5449 <박상호>로 전화 하시면 됩니다. 택배비 정도는 우리가 물어야 하겠죠.     

 

 

 

 

  

 

수세미 농장을 뒤로하고 대량으로 사육하는 양계장옆을 지나니 독한 계분냄새가 토할것 같다.

마루금에 올라서니 우측으로 미륵불 정면엔 지지난번 당고개(땅고개)서 시작하여 숲재를 지나 아하리로

왔던 상추마을이 손에 잡힐듯 눈앞인데 이곳을 찾아가기가 얼마나 힘들었던지...

농장 위 마루금엔 잘 익은 복숭아가 구미를 당기게 하는데 여차 하면 복숭아밭 다 변상하므로 절대

손대지 마시길... 정말 헷갈린다. 시멘트길 옆 리본이라고는 없다. 만불산을 찾아가는것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내려서 한참을 가다가 아닌것 같아 되돌아 올라가 좌측 능선을

탈려고 다시 지도를 펼쳤지만 진행 방향을 몰라 무거운 다리를 질질끌며 시멘트길을 다시 내려서니 중간

에 리본이 달려있다. 혹 이 길 따라가다가 또 산을 오르는건 아닐까 의심하며 돌아서 내려가니 리본은

다시 산으로 간다. 혼신의 힘을다해 다시 산으로 진입하여 리본 하나를 부착하고 미륵불을 우측으로

보면서 전진하니 폐허된 공장 앞으로 새로 들어선 (주)동텍 공장 건물안에서 큰 발전을 비는 굿판이

벌어져 건너편 만불사와 대비된다. 공장 건물옆 산 능선에 잘 익은 굵은 딸기가 발길을 멈추게한다.

그러나 상추마을을 가는길을 몰라 상.하추마을을 얼마나 빙빙 돌았던지...

에기지못옆 에기지 휴게소에 들려 마치재에 세워둔 애마를 만나기 위해 택시를 좀 불러 달랬더니 없단다.

물부족으로 갈증이 심해 맥주 2병을 단숨에 마시고 나자 휴게소 주인 마나님이 안스러워 보였던지 자기

가 태워 주겠단다.  맥주값까지 포함하여 금 20,000원이면 야 오늘 일금 10,000원은 횡재다.

왜냐하면 이곳 택시기사는 마치재 까지 금 25,000원을 달라고 했으니 고생은 해도 기분은 괜찮네

※ 이 구간 아하고개서 하산한 정맥꾼들은 에기지 휴게소에서 잠시 쉬어가도 좋을듯...

 

 

 

 

  ▲ 만불사의 미륵불.

 

 

  ▼ 이 산길에서 만난 야생화

 

 

  

▲ 원추리

 

 

 

 ▲ 패랭이꽃

 

 

 

▲ 하늘말나리

 

   

 

   ▲ 영지

 

   

 

  ▲ 타래란.

 

   

 

  ▲ 산딸기.

 

  ▼ 그리고 여긴 내 조국을 위해 산화한 영령들의 넋이 잠들고 있었다.

 

 

 

   ▲ 국립 호국원

 

이곳(안강.기계.포항)은 6.25. 한국전쟁때 부산을 지켜내기 위한 마지막 교두보.

하여 조국을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호국 영령들을 모셔 놓았다.(서기 2001년) 

가랑비 내리는 이 날도 가족이 찾아와 필자를 숙연하게 한다.

삼가 호국 영령들의 명복을 빕니다. 참고로 이곳 국립 호국원은 한국전쟁 전사자외 월남참전 전사자

그리고 현재의 순국자들도 안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귀가길 호미곶과 서라벌의 혼을 찾고...

 

 

 

포스코 사태는 마치 전운이 감도는듯 살벌하고 

 

 

 

 

▲ ▼ 경주(서라벌)5릉 <시조 박혁거세왕 남해왕 유리왕 파사왕 그리고 시조 왕후 알영왕비 능으로 추정>

       소재 : 경주시 탑동 사적 제172호

       주차료 1,000원  입장료 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