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밤이 미치도록 지속된다.
독주를 털어부어도 새벽으로 다가 갈수록 잠은 점점 멀어진다.
눈동자는 충혈되어 사물을 분간하기 조차 어렵고 얼굴은 검은빛으로 변해 버린지 오래다.
무엇이 이토록 흔한 잠마져도 내게서 빼앗아 가는것일까?
오랫만에 휘청거리는 다리를 끌고 걸망을 챙겼다.
어렵게 장만한 카메라를 챙기고 다시 지리의 품에 안기려고 집을 나섰다.
앙상한 가지에 잎보다 먼저 꽃을 내민 홍매(紅梅)가 강풍에 파르르 몸을떨어 냉기를 느끼지만 이미
산야는 오감으로 봄을 느낄만한 전<廛>을 펼쳐 놓았다.
이런 !
지리는 아직 겨울속에 있다.
힘겹게 올라서는 성삼재엔 찬바람이 볼을 때리고 멀리 노고단 산허리로 바람꽃이 피었다.
얼음을 깨고 시끄럽게 아래로 달려가는 계곡물이 봄이 온다고 발광을 하지만 여긴 봄은 멀다.
산 아래 그 맑던 하늘이 오를수록 회색빛으로 변하고 바람은 유난을 떨며 귓전을 사정없이 때려
금방이라도 눈과 폭우가 쏟아질것 같은 회색빛 긴장이 산 전체를 뒤덮어 무서움 마져 생긴다.
그러나 돌계단 아래 버들개비는 복숭아 털같은 보송보송한 솜털을 수없이 달고 세상 밖으로 나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입에서 절로 봄을 부르게 한다.
바람꽃.
해맑은 아니 봄 같은 아이의 눈에도 바람꽃이 피었다.
흩어졌던 먹장구름이 노고단 정상으로 일제히 모인다.
몸을 가눌수 없을 정도의 강풍이 전신을 밀지만 제단을 오르는 산객의 모습은 전장에서 대승한 기세
등등한 장수의 비장함이 묻어나 칼바람도 잠시 멈추니 필자 또한 숨고르기를 한후 묵상에 잠겨본다.
여기에 서 본지가 얼마만인가?
이십년하고도 수삼년일게다. 생태계 보존을 위해 커다란 문을 걸어 잠군곳. 그곳에 오늘 다시 서본다.
마고할멈이 오메불망 반야를 그리지만 오늘도 반야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그래도 마고는 다시 비단옷을 짜 반야와 만날 새 봄을 기다리겠지...........
발아래 저 멀리 섬진강이 은빛으로 하늘과 닿아 80리 하동포구로 흘러가고 동쪽 해뜨는곳 눈을 돌리니
삼도봉 저 너머 영원한 母山이요 영험한 민족의 영산이며 대간의 종점이자 시작점인 천왕봉이 지리의
산줄기를 다스리며 필자를 향해 서 있다.
은빛 섬진강도 이곳에선 하늘과 닿는다.
삼도봉 저 너머 천왕봉의 위용이 대단하다.
마고할멈이 등을 떠 민다.
비바람 만나기전 어여 가라고 ...
사람들은 종종 걸음이 되어 다시 왔던길을 부지런히 내려간다.
산 아래는 매화가 지는 봄이건만 지리는 아직 겨울잠에 빠져 있다. 허지만 머잖아 이곳에도 자태고운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지리만의 특별한 봄의 성찬을 차려 놓을것이다.
산돌아 굽이굽이 돌아가는 시암재길 저 길따라 가면 산수유 지천으로 피어있는 구례 산수유마을과
섬진강.화개장터.그리고 세상 가장 아름다운길도 만나고 축제중인 광양 매화마을도 만난다.
강변 매화는 강풍에 눈처럼 날리고 있었다.
섬진강을 가기전 신라고찰 천은사에 잠시 들려 고색 더욱 빛나는 일주문과 늘어진 솔가지를 담고 낭랑한
풍경소리 서너개 내 가슴에 담으니 이것이 선이 아닌가? / 2007.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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