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여행의 초입은 드센 물목 노량(하동군 금남면 노량리. 남해군 설천면 노량)
을 이은 남해대교로 부터 시작해야 제 멋을 느낄수 있다.
1968년 착공하여 1973년에 완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로 길이 660m
폭 9.5m 높이 52m로 국도 19호선상의 허궁다리다.
불멸의 이순신이 순국한 노량 앞 바다의 진혼곡과 어우려져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까지 다리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한몸에 받았던 남해대교는 사천시
삼천포항과 남해 창선의 단항을 연결한 그림같은 5개의 다리에 밀려 그 유명
세가 약간은 퇴색했지만 여전히 남해의 상징이요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풍광
을 변함없이 주는 보물같은 다리로 사람들과 무한 공유할 것 이다.
대교를 건너 좌회전하여 설천면 노량에 내려서면 우측 언덕배기에 노량해전
에서 순국한 성웅 이순신 장군의 시신이 처음으로 안치 되었던 터에 지어진
사당 충렬사가 있다. 공의 넋을 기리듯 작은 포구에는 거북선이 사람들을
안으로 불러 모우고 사당은 주변 개 보수 공사가 한창이다.
충렬사의 설명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남해충렬사는 임진왜란이 끝나던 해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충무공 이순신의 충의와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으로
노량충렬사라고도 한다.
통영의 충렬사와 함께 ‘충열’이란 현판을 처음부터 같이 사용해 왔으며 인조 때 지어졌다.
충무공이 전사한 후 그의 시신이 한 때 이곳에 모셔졌는데
인조 10년(1632) 유림들이 옛 터에 작은 집을 짓고 제사를 지냈던 것이 최초의 사당이다.
충무공이 순국한지 60년이 되던 효종 9년(1658)에 좁고 초라한 옛집을 헐고 새집을 지었다.
그 후 현종 4년(1663)에 통영 충렬사와 함께 임금이 내려준 현판을 받게 되었다.
이런 사실들을 기록한 충무이공묘비가 사당 곁에 있으며,
비문은 현종 2년(1661)에 송시열이 썼고, 1663년에 박경지 등이 세운 것이다.
옛날에는 이 사당 곁에 호충암이란 암자가 있었는데,
화방사의 승려 10명과 승장 1명이 번갈아 와서 사당을 지켰다고 한다.
또한 공이 죽은 후 자운이란 승려가 공을 사모하여 쌀 수백섬을 싣고 와서
공을 위해서 제사를 지낸 것으로도 유명한데 자운은 원래 충무공의 밑에 있던 승병이었다.
충렬사는 충무공의 노량 앞바다를 지키고 있는 수호신의 사당이라 할 수 있다.
경내에는 비각·내삼문·외삼문·관리사 등이 있고
사당 뒤의 정원에는 충무공의 시신을 임시 묻었던 자리에 묘가 남아 있으며,
1948년 정인보가 쓴 충열사비가 있다.
(설명전문발췌:문화재청홈페이지)
사당을 나와 설천을 가는길은 수채화 같은 진초록 가로수 숲길이다.
드센 노량의 물살은 낚시꾼들에게 짜릿한 손맛을 주고 물빠진 갯벌로 호미들고
종종 걸음을 치는 아낙들의 표정엔 주름마져 바구니에 가득담길 해산물로 펴지
니 바다는 섬 사람들에겐 언제나 보물이다.
남해는 언제부턴가 보물섬으로 불리어 지기를 원했고 그들의 염원은 군민들의
노력으로 몇해전 부터 보물섬이 되었다.
"유자.치자.비자."의 3자와 마늘.멸치.등의 해산물 그리고 스포츠 육성의 메카
인 스포츠파크는 남해를 단번에 보물섬으로 만들었다.
필자가 알기론 육쪽 토종 마늘의 원조는 누가 뭐라고해도 이곳 남해가 아닐까?
설천을 돌아나와 고현면 도마초등학교를 막 지나 남해읍을 가기전 우측 중현
으로 가는길을 따라가면 고찰 화방사를 만난다.
신라 신문왕때 원효가 보광산(錦山)에 보광사를 세우고 망운산 남쪽에 연죽사
를 건립한것이 화방사 역사의 시작이다.
고려시대인 1200년경에 진각국사 혜심이 연죽사를 현 위치에서 서남쪽으로
400여미터로 옮기고 영장사라 이름을 바꾸었다. 훗날 화방사라 개칭 되어
현재에 이른다. 입구 시멘트 오름길 옆으로 우람찬 숲이 고찰임을 입증하듯
도열한 폼이 예사롭지가 않다. 마삭줄기 돌담장 감싸안아 포근해 보이고 경내
고목에 메달린 연등이 어떻게 하여 저 높은곳에 달려 바람에 휘날리는지 정말
궁금하다. 화방사도 예외없이 천불상 만불상 그리고 대불안치 공사가 진행
중이고 요사채는 새로 개축 되었다. 맷돌을 타고 흘러내리는 석간수에 목을
축인후 작은 연못가에 핀 하얀 수련을 바라보니 그 자태가 부처다.
솔바람 따라 가뭄에도 졸졸졸 흘러내리는 사찰옆 계곡물은 속세의 온갖 시름
에 속이 탄 목마른 중생들 안주시키려 부지런히 내려간다.
다시 화방사 입구에서 좌회전 하여 서면으로 간다.
스포츠 파크.
한국 최대의 동계 훈련장으로 당당히 자리매김 했다.
여수도 한눈에 보이는 서면 갯가에 자리한 이 터에 한국 스포츠의 미래가
있다. 유소년 축구를 비롯해 야구 그리고 이번엔 사촌 해수욕장 근처까지 그린
이 들어선 골프장이 조성되어 서면은 진정한 스포츠 메카다.
그림같은 사촌해수욕장 그 너머 다시 몽돌해수욕장이 설흘산 자락을 적신다.
황토밭 언덕배기에 서니 대양을 건너 광양항에 닻을내릴 섬 같은 상선과 대양
을 향하는 우리 상선이 교차하며 지나간다.
사촌해수욕장
몽돌 해수욕장
설움의 땅으로 천대받던 척박한 다랭이 전.답이 새로운 관광지가 될줄 누가
예견이나 했을까?
신년 일출 산행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설흘산 아래 가천 다랭이 마을은 휴일
이면 전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대단히 붐빈다.
특히 계단식 논에 재래식 모심기를 할때의 풍광은 타임머신을 타고 원시 농경
사회로 데려다 주므로 향수에 푹 젖어 간다.
마을 한 귀퉁이에 있는 암수바위 또한 희귀해 발길 끊어지지 않으며 주변 월포
해수욕장과 호구산 아래 불심 가득 펴는 용문사 또한 고찰이다.
남해의 3대사찰(금산 보리암. 망운산 화방사. 호구산 용문사)중 하나다.
가천 다랭이 마을
무엇을 줍는건지...
저 멀리 호구산도 바다에 발목을 적시고..
금산 자락
금산과 상주 그리고 호구산 설흘산으로 가는 앵갱고개는 숨차는 고개다.
고개를 내려서서 이동면으로 발길을 돌려 다시 우측길이 창선도로 가는 길목
엔 남해 편백 자연 휴양림이 마음을 끌어 당겨 발길을 떼어놓는다.
봄이면 산마다 조성된 고사리밭은 창선 사람들의 새로운 소득원이다.
몇해전 무너져 내린 그 자리에 다시 육지를 만든 창선대교가 아름다운 다리들
에 밀려 스산해 보이지만 센 물목에 자리한 죽방렴(재래식 고기잡이)은 또 다른
볼거리로 詩 와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리 난간에 줄을서고 있다.
남해는 보물섬이다.
구석구석 돌아보면 그림같은 풍광에 모두가 반해 시인이 된다.
올 여름 휴가지로 권하고 싶다.
'☞ 테마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白蓮의 香 그윽한 사기아름마을 백련지 (0) | 2007.07.15 |
---|---|
보물섬 남해 (2) (0) | 2007.07.12 |
물안개 피면 가덕도 연대봉은 가지마라 (0) | 2007.05.07 |
통영 끄트머리 섬 쪽빛바다 욕지 봄 물결 가득... (0) | 2007.03.26 |
진정한 서해 낙조는 일락산이다. (0) | 2006.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