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리는 산중산(山中山)인 방장 지리산 천왕봉을 가기 위한 시발점이자 종점이 되기도 한다. 길은 설악의 봉정암 처럼 하늘과 맞닿은 천왕봉 아래 터 잡은 법계사 길과 유암폭포길로 올라 장터목대피소를 거쳐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을 가는길이 있다. 특히 지리산 제1경인 천왕의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중산리 계곡을 끼고 조선 개국의 설화와 관련이 있는 칼바위를 지나 법천폭포 망바위 흠바위 그리고 우렁찬 소리를 내는 유암폭포를 지나 깔딱고개를 넘어 하늘아래 첫 우체통이 있는 장터목 대피소에서 1박을 하는 코스를 이용하거나 법계사 아래 로타리대피소에서 1박을 한후 천왕봉에 올라 일출을 보는 코스도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전자의 길을 압도적으로 택한다.
짧은 추석 연휴 첫날<2008. 9. 13.>필자는 지난 겨울 지인이 빙판길에서 미끄러져 낭패를 보았던 유암폭포길을 따라 지리 의 2008년 가을타기를 위해 미리 길을 나섰다.
지리의 계곡은 어디를 가도 청류가 되지만 간혹 3류 등산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 때문에 눈살이 찌뿌려진다.
칼바위.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만나야 하는 중산리 계곡의 터줏바위 천왕봉 갈림길 다리를 건너 직진하면 로타리 산장을 만나 천왕봉으로 오르고 좌측으로 들어서면 유암폭과 장터목대피소를 만나 휴식한후 제석봉을 거쳐 천왕봉에 오른다. 유암폭 아래 너덜지대를 지난다. 지난 여름 요란스런 태풍과 폭우가 없었던 탓에 돌길은 망가진곳 없이 온전히 드러누워 힘겹게 길을 따라온 사람들의 마음을 안정시킨다. 멀리 지리의 주능선엔 운무가 하늘에 다리를 놓아 지리산은 틀림없이 하늘과 맞닿아 필자 더러 게으름 피우지 말고 올라와 천상을 구경하라고 손짓하지만 지친 두다리를 혹사 시킬려니 미안해 우족으로 가야겠다. 주차장에서 제자 4명을 앞세우고 보무도 당당하게 천왕봉을 오를려던 선생님은 앞서가는 제자들을 다급하게 부르더니 손사레를 치며 유암폭포에서 휴식한후 하산하잔다. 필자 나이 또래의 그 분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하고 얼굴색이 변해 더 이상 무리하면 심장에 무리가 올수도 있을것 같아 필자는 건장한 제자들에게 휴식한후 하산하기를 부탁했다. 그래도 보좌할 제자들이 있기에 다행이라 생각하며 늘 홀로 산길을 가는 필자 에겐 진정 산길 동행할 사람은 언제쯤 생길려나... 그 누구 없소 유암폭포
천왕봉을 가는길이 어느 한곳이라도 수월한 곳이 있던가? 방대하고 장쾌한 능선, 그리고 심산의 골 골들 장대한 지리의 주능선이 인내를 시험하는 곳 이라면 천왕을 향해 오르는 각 산길은 고통 그 자체가 된다. 장터목대피소 아래 벅찬 오름길이 그리고 천왕봉 아래 수직의 오르막이 그 예가 아닐까? 그래도 사람들은 그 고통과 인내를 즐기기 위해 오늘도 방장 지리산을 늘 그리워하며 육신이 아려도 오른다.
운무가 유희하는 장터목 능선에 오르자 하늘 아래 첫 빨간 우체통이 필자를 반긴다. 지리의 산정에서 애틋한 마음을 담은 사연들이 산 아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전해졌을까? 그리움을 보낼수는 있지만 받을수는 없는... 그래도 이곳 지리 산정의 그리움을 받을수 있는 사람은 아마 세상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아닐까? / 문득 생각났다. 나는 오늘 빨간 우체통이 외롭게 서 있는 장터목 산장에서 그대에게 연서를 씁니다..ㅎ
허기진 배를 무리속에서 채울 비위가 없는 나는 늘 혼자 산길을 헤멘다. 대피소옆 능선에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중 구절초는 청승맞게 애잔스레 보이는것은 가을이 오기 때문일까? 천왕봉 못미쳐 적당하게 식사할 장소를 그리며 제석봉을 향해 오름길을 오른다. 이미 뱃속에선 한바탕 전쟁이 나지만 별수없이 내가 쉬어야 할 곳까지 가야한다. 가다가 그림같은 풍광을 만나면 배고픔은 또 사라져 언제 걸망을 내려놓을지 몰라 내 배도 주인을 잘못 만나 늘 고생이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도 천년 그 가치를 높이는 주목 고사목은 제석봉의 상징이 된지 오래다. 고약한 벌목꾼들의 방화로 나목이 되었지만 겨울엔 한해도 거르지 않고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설화를 피워 지리산 사진 작가들의 영원한 유토피아가 되어 환상의 시와 그림이 만들어지는곳. 오늘 필자는 여기 산 그리메 제석봉에서 우리들의 영산 지리산 가을타기를 시작 한다.
여기 이 그림엽서에 평소 흠모하는 갈래머리 소녀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글로 적어 보내면 금방이라도 답장이 올것 같은 풍광이 전개된다. 예전 우리 호롱불 밑에서 밤새워 연서를 쓰고 찢고를 얼마나 했던가? 그것이 주옥 같은 시가 되었고 장편 소설이 아니었을까? 유행가 가사처럼 그때 그 소녀들도 필자처럼 어느곳에서 시방 추적추적 늙어가고 있겠지...
고산의 일기는 사실 한치앞을 내다볼수 없는게 사실이다. 장터목에서 제석봉까지만 해도 투명한 하늘과 솜 같은 뭉개구름을 펼쳐놓아 전형적인 가을타기의 단초라 여겨 천왕봉에서 바라볼 산 그리메에 흥분이 된 소년같은 마음을 추스릴려고 하였으나 야속하고 매정한 운무는 필자의 이런 마음을 무시한 체 일제히 천왕봉을 삼킬듯이 덤벼들고 있다.
저기 저 산아래는 아직 여름이 그 끝을 잡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지만 고산 지리산엔 천천히 가을이 오고 있다. 허긴 해마다 추석 무렵 이곳 지리산 고봉들은 가을색의 추석빔을 차려 입고 있었다. 하늘로 가는 문 통천문은 어김없이 암벽에다 산꽃을 피워 사람들을 반기고 척박한 바위에 가난하게 뿌리를 내린 잡목들도 갈증을 참아가며 잠시 스쳐갈 가을 준비가 측은해 보여 안쓰럽다.
통천문
지나온 제석봉 너머로도 운무가 바다를 만들어 고봉을 삼키다가 토해내며 섬을 만든다. 세상 가장 멋진 대정원과 산봉우리를 휘감아 도는 운무의 유희를 보며 먹는 점심. 이 보다 더 호사스러운 식당이 있을까? 대자연이 연주하는 지리 오케스트라의 향연을 감상하며 허기를 천천히 채우는 산객들의 중식은 행복을 먹는것이다.
천왕봉 아래 지리의 너른 뜰에서 식사를 하는 저들의 모습은 행복이다. 천왕봉 (1,915.4m) 오르고 싶어도 이제 더 오를곳이 없어 섭섭하다. 대한민국 육지의 가장 높은 봉우리 천왕봉도 2,000m를 넘지 못하고 멈춰섰다. 국토의 대부분을 산이 차지하고 있지만 우리에겐 만년설을 정수리에 이고 선 3-4000m의 고산이 없어 안타까울 뿐 이다.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던 사방의 힘찬 산줄기도 운무가 삼켜 아무것도 볼수가 없다. 국토의 근간인 대간의 종착점이자 시작점인 천왕봉. 그러나 분명한것은 백두의 정기를 뻗어 내려온다면 지리산 천왕봉은 백두대간의 종점이다.
어미는 아이에게 지리의 기상을 가슴에 담아 주었으리라. 모진 풍상을 겪어며 의연히 방장의 그 위상을 지키는 천왕의 품세를 가르켜 속세로 돌아갈 것 이다. 필자의 어린나이때는 꿈에라도 생각지 못한 거대한 산 지리산을 겁없이 오른 저 아이는 오늘 무엇을 느끼고 갈까? 발 아래 있는 세상이 다 보였다면 저 아이는 더 행복할수 있었을것을..... 그러나 저 아이는 분명 지리의 넉넉함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지리의 방장 천왕봉
산행길 : 중산리 주차장 - 중산리 야영장-칼바위-유암폭포-장터목대피소-제석봉-통천문-천왕봉-천왕샘-법계사입구- 로타리대피소-순두류-시멘트포장길-중산리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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