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지리산엔 일대 사건이 일어났다. 금지의 땅이자 금단의 골 칠선계곡을 사전 예약제이긴 하지만 개방한다는 소식은 지리산을 동경하는 산객들은 물론 일반인 들 조차 흥분과 기대로 밤잠 설치게 한 중대한 사건임에 틀림이 없었다. 마천 의탄에서 천왕봉 까지 장장 16km의 칠선골은 굳이 우리나라 3대 계곡의 하나여서가 아니라 그동안 통제구역으로 원시의 산림과 33개의 크고 작은 소와 담 7개의 폭이 그동안 어떤 모습으로 골에 숨어 지냈는지가 무척 궁금해서다.
칠선계곡의 개방은 생존권을 지리산에 둔 추성리 사람들의 염원이자 절규였다. 따라서 칠선골의 개방을 제일 먼저 반긴 사람들은 뭐라해도 추성리 사람들로 사전 예약 시스템의 개방이 아니라 전면 개방 을 독려 하였으나 일정 기간 예약제로 개방후 복원 과정등 자연 생태계에 미칠 영향등을 연구 예찰 한후 이르면 내년쯤엔 전면 개방과 원래대로의 회귀를 결정짓게 된다는 관계자의 이야기에 모처럼 십수년만에 전면 개방의 기로에 서 있는 칠선 골의 영구 만남을 위해서라도 나무하나 풀 한포기는 물론 설치한 시설물 관리에도 모두가 만전을 기해 개방의 속도를 앞당겨 수년 동안 미지의 세계에 갇혀있던 칠선골의 비경을 공유해 보기를 기대해 보면서 일곱선녀가 아름답게 그려갈 칠선골을 찾았다. 단풍 색깔을 충분히 느끼기엔 약간 흐린 날씨다. 흐릿한 추성골의 아침 풍광은 칠선골을 찾는 사람들의 북적거림에 20여가구 산촌마을 골목은 외지인들의 발소리로 가득하다. 정감있던 돌담 골목은 몇년 사이 점차 사라지고 황토집의 민박집과 허물어진 빈집에서 삶의 명암을 극명하게 볼수 있다. 칠선골은 초입인 추성골에서 두지동 고갯마루까지 오름길로 부터 시작되어 처음부터 땀을 쏟게하므로 비경 칠선계곡을 가슴 에 담기가 녹녹하지가 않다는걸 느낄수 있다.
적막한 두지동은 오는 25일-26일 치뤄지는 천왕축제 <칠선계곡 개방기념 산악마라톤(추성골-비선담)>준비로 장정들의 부산함이 눈에띤다. 3개월째 계속되는 가뭄은 이곳 산촌의 작물도 목이타는지 결실로 향하는 몸짓이 지쳐 피곤해 보인다. 아주 오래된 흙담집의 담벼락에 가을을 그린 담장이 덩굴이 애잔하게 보이고 지속되는 가을 가뭄탓에 이 가을이 고운 자태로 오기는 어려울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일단의 무리들이 출렁다리를 건너오면서 다리를 흔들기 시작하자 다리가 몸살을 앓는 소리를 낸다. 다리를 건너온 필자가 "하지 마세요"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자 그때서야 그 중 한사람이 제지를 한건지 심하게 삐걱거리던 소리가 잠잠해진다. 이래서야 어떻게 칠선골의 전면 개방을 유도해 낼것인가? 산을 비경을 담을 자격도 없는 3류 산꾼들의 지각없는 행위에 필자는 부아가 났다.
흙먼지를 내며 오르락 내리락 하던 산길은 이제사 계곡옆을 지난다. 불타듯이 붉게물든 단풍나무, 그 아래에 서면 금방이라도 온몸에 불이 붙을것 같은 계곡옆 단풍이 십수년만에 처음으로 인간들에게 모습을 보여서인지 요사스런 몸짓으로 서 있어 필자도 현혹되고 말았다. 허지만 가뭄으로 말라 조락한 바위 위 낙엽은 제대로 된 가을 모습 도 한번 보여 주지 못한체 벌써 나목이 되어 지리의 긴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 쓸쓸해 보인다.
가을 가뭄을 이겨낸 칠선골의 단풍 옥녀라는 선녀가 달밤에 살짝 내려와 알몸으로 목욕을 한 소(沼)다. 옥류와 맑은 숲을 동경하며 옥황상제의 엄명도 거역한체 지리의 칠선 무릉도원으로 수많은 선녀들이 밤마다 이 골을 찾으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오직 일곱선녀만 선택 받았던 칠선계곡에도 가을은 깊어만 간다. 과히 설악의 수렴동을 능가하는 비경과 원시의 자태에 미지의 공간에 서 있는 기분이다. 골도 억지로 숨어 지내온 세월을 한탄하듯 사람들을 붙잡고 오래 오래 머물기를 간청해 필자도 털썩 너럭바위에 앉았다.
옥녀담을 뒤로 하고 오른다. 단풍이 불타는것이 아니라 가뭄으로 나무가 목이타서 금방이라도 불이 붙을것 같아 안타깝다. 그래도 역시 지리산이다. 큰 산이기에 넉넉하게 품을수 있는 산이기에 이 골에 하늘보다 더 맑은 계류를 흘러보내 가을을 띄우고 있다. 가을속으로 요란하지 않은 가을색도 좋다. 고즈녁한 산길 바스락 밟히는 낙엽소리 칠선골에도 혼자 걸으면 좋을 고스락 길도 있다. 차마고도의 다리를 생각케하는 출렁다리 여기서 부터 칠선골의 진면목이 시작된다. 고요했던 골에 모 회사원들의 가을 야유회 산행으로 시장을 연상케하는 소음이 골을 채운다. 이 다리를 건너 조금만 오르면 더는 칠선계곡을 오를수가 없다. 물론 예약한 사람들은 천왕봉을 향해 오를수 있지만...
비선담. 물빛 고운 비선담에도 마른 가을이 떠 다닌다. 더는 갈수가 없어 필자도 멈춰 칠선폭을 향해 다음에 오를 긴 계곡을 올려다 본다. 가을은 더 없이 깊어 나를 부르건만 열쇠가 채워진 작은 사립문과 통제인이 산객이 갈수 없음을 통지해 서운하다. 해금 되는날 새벽길 달려와 칠선폭을 품에안고 천왕을 향해 오르리라 지금은 갈수가 없지만 언젠가 남은 골을 오르는날 천왕에 올라 내 그대를 위해 때깔좋은 시 한수로 보답하리라. 그때까지 일곱선녀여 평안하시라 (20081019 비선담에서)
|
'☞ 지리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뱀사골 10월 (0) | 2008.10.29 |
---|---|
2008년 피아골 단풍은 안녕하신가? (0) | 2008.10.27 |
만산 홍엽으로 가는 지리산 (0) | 2008.10.11 |
지리산 만복대 스치는 바람도 외롭다 (0) | 2008.09.23 |
가을타기 지리산 천왕봉 (0) | 2008.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