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마지막날,
일상의 고달픔을 날려 버리기 위해 지리산을 간다.
방대하고 넉넉한 그래서 그런지 공황 속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위안을 삼으려고 오늘 지리산에 너무 많이 모였다.
따라서 천왕봉은 속세의 온갖 상념들을 치유해 내려보내는 영산(靈山)이요 변치 않는 어머니의 산 임에 틀림이 없다.
지리산에 심설(深雪)이 내렸다.
중산리로 가는 길목 내대에서 바라보는 겨울 천왕봉은 세계의 지붕 희말라야의 고봉들을 닮아 겨울이면 산 사람들을 설레게
하고 호젓하고 아슬아슬한 긴 오름을 헉헉대며 오를 기대에 이내 흥분이 된다. <2008. 11.30>
간밤 서러운 바람이 실어다 준 설화는 필자가 법계사를 오를때쯤 사라지지는 않을까? 조바심에 마음은 달음을 친다.
문득 싯귀가 떠오른다.
우리는 또 어떤 노래입니까?
살아있다는것이,산다는것이 꽃잎에 맺힌 가슴떨림으로
아련하게 저며오는 사랑의 노래입니다.
푸르른 날들을 노래하며 온몸으로 향기를 품던
꽃들의 기쁨과 흰눈의 자유로움
산의 영혼 입니다.
하늘은 푸르다못해 시퍼렇다.
겨울강 물빛보다 더 푸른 하늘은 만감을 교차시킨다.
초췌한 지리의 고사목에 눈꽃이 피면 산새는 또 얼마나 슬피 울꼬?
옷을 벗었다.
홍엽을 피우던 나무들이 모두 옷을 벗었다.
어떤이는 나무들이 옷을 벗는 이유를 떨어진 씨앗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옷을벗고 알몸으로 북풍한설을 이겨내는 어미나무의 숭고한 희생이 새싹 돋는 환희의 봄날을 맞이할 수 있다고 했다.
참으로 대자연의 신비감을 어찌 흉내낼수 있으랴...
천왕봉 가는 길은 고달퍼다.
어디에서 올라도 천왕봉을 가는길은 험해 수월한 곳이 없다.
방장이기에 산중산이요 한국의 지붕이기에 더욱 그렇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통을 호소한다.
무릅의 통증이 빨리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설화에 잠시나마 위안을 받으려 눈을 고정시키기도 한다.
왁자한 법계사 아래 로타리 대피소를 뒤로 하고 다시 오름을 시작한다.
지리산길의 대표격인 돌밭은 십수 년을 산길을 걸은 마니아들도 무릎 통증을 호소할 만큼 정평이 나 있다.
제법 눈꽃이 보인다.
개선문을 지나자 빛을 받은 설화가 사방 그 자태를 뽐내지만 칼바람과 태양에 실려가고 녹아 아쉽지만 그래도 벌써 서너 차례
눈(雪)다운 눈을 천왕봉은 정수리에 이고 있었다.
엄청난 불황속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은 모두 고독한 유목민들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 그 여파로 또 이 나라 근간인 젊은이들은 직장을 얻지 못해 얼마나 더 거리를 헤매고 고민할까?
지독한 취업문.
우리는 오늘 그들에게 무엇으로 위안을 삼으라고 말을할까?
몇백년 의연히 풍상 겪어며 하늘을 떠 받들고 있는 저 천왕봉의 기개를 닮자고 감히 누가 말을 하겠는가?
묽은 이 말에 과연 이 땅 젊은이들이 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참 서글픈 일상임에 틀림이 없다.
흔히들 산 오름을 인생에 비유한다.
그러나 그것도 목구멍에 풀칠이라도 할때 그런 호사스러운 말이 나온다.
막막하다.
산 오름처럼 우리네 삶은 10년전이나 지금이나 왜 이리도 고단한지...
펀드 가입을 권유한 죄로 가책을 느껴 숨을 끊는가 하면 종업원들의 밀린 임금을 지급하지 못해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필자의 직장 또한 위기에 직면해 있음은 불황은 영락없는 블랙홀이다.
천왕샘 부터 시작되는 깔딱 고개(일명 눈물고개)에서 사람들은 오르다 쉬다를 반복하고 설화 한 줌 피운 고사목은
죽어서도 그 가치를 발하고 있으니 자연은 역시 나약한 인간을 깨우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살아 천년 죽어서 천년 자신의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주목은 지리 산 것이 최고가 아닐련지...
한국의 지붕 천왕봉에 다시 올랐다.
중첩한 산 그리메에 울컥해진다.
저 멀리 반야봉 너머 노고단이 아득하고 써레봉 줄기를 따라 내달리는 준령들의 파고는 생동감 넘치는 파노라마다.
한반도의 등뼈 백두대간의 시작점이자 종점인 천왕은 오늘 넉넉한 인심으로 사방을 활짝 열어 놓았다.
참으로 보기드문 쾌청한 날씨로 삼천포의 와룡산도 눈앞에 있다.
머잖아 천왕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산 사람들과 사진작가들이 이곳으로 엉금엉금 기어오를 것이다.
새벽 칼바람을 뚫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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