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설깔린 3월 천왕봉에 서다. 인연의 산 지리산 (2009. 3. 15.) 3월의 시샘바람에 눈가루 날리는 지리산을 찾아간다. 심설로 한겨울잠을 자던 지리산도 이른 아침 매화꽃물 흐르는 섬진강변 뱃사공의 봄노래에 천천히 몸을 풀며 고봉 계곡마다 두꺼운 얼음장을 깨고 아직은 이르지만 시끄럽게 봄물을 내려 보낸다.지리산은 더 말할것도 보탤것도 없이 산을 그리는 모든 사람들의 이상향이요 영원한 어머니의 품속이다. 아득하게 잊고 산 고향 시냇물 처럼 언제나 마르지 않고 우리 가슴속을 흐르는 추억의 강 같은 그런 산 이다. 외롭고 힘들때 다가가 모든 생각을 접고 센바람을 맞으며 나를 다시 찾는 그래서 지리산은 우리 가슴에 늘 터 잡고 있는 심산(心山)이 아닐까? 오늘 지리산길엔 30여년전 고교시절 천왕봉을 올랐던 후배와 동행이다. 그 당시 중산리는 구불구불한 신작로에 위락시설이라곤 전무했던 시절이고 산길 역시 공비 토벌대의 작전로 같은 희미한 미로로 조난이 심했던 시절이다. 그 시절 고딩들의 숙원중 하나가 바로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는 일이었을 것 이다. 어제 여수 돌산의 금오산을 가던길에 섬진강 휴게소를 들렸더니 강한 바람에 눈발이 날린다. 그 여파로 지리산 고봉마다 기어이 눈을 뿌렸다. 가풀막(까뿔막)중산리에 들어서자 애마(뉴마티즈)는 숨을 몰아쉬며 헉헉 거리다가도 아직은 청년이어선지 꾀병 부리지 않고 필자를 중산리 국립공원 주차장에 탈없이 데려다 놓는다. 앞으로 이 애마도 늙은 중형차 처럼 30여만 km 이상의 내 산길 동반자가 될 것 이다.
거대한 암봉, 아니 정수리에 눈을 약간 이고 선 천왕봉의 자태는 산주름들을 펴게하고 1000미터가 넘는 고봉들을 호령하며 그렇게 또 아래를 내려다 보고있다. 김해 돛대산악회를 따라 천왕봉을 온다는 김해 아우에게 법계사 로타리산장에서 만나기로 한후 금1,000원을 보시함에 넣고 법계사에서 운행하는 미니버스에 후배와 올랐다. 세상이 좋아진건지 아니면 심각한 사찰 운영의 묘 인지는 몰라도 약 3KM의 시멘트길을 미니버스로 시간을 벌수 있다는게 어디 상상이나 한 일이던가? 80년대초 4월 어느날 자연학습원 교육기간중 마지막날 천왕봉 산행이 있었다. 산길을 따라 오른것이 아니라 그것도 인내심을 시험하는 교육의 한 부분이라며 써래봉 아래 계곡을 향해 오르면서 처음으로 산행이 아닌 유격 훈련 같았던 기억이 이곳을 지날때마다 생각이 났다.
산죽 끄트머리에도 조금씩 봄빛이 돌아 지리산에도 점차 겨울이 물러나고 있다. 고산의 봄은 계곡을 때리는 굉음이 들려야 비로소 봄 기운을 조금 느낀다. 지리산은 몇곳을 제하고는 길을 잡자마자 오르막이다. 지리산의 정기를 온몸으로 받고 출렁거리듯 산릉의 파고를 느끼려는 지리산 천왕봉 산행은 첫발부터 긴장하며 걸어야 한다. 울퉁불퉁한 지리산길은 언제나 만만치가 않다. 때론 지루하고 때론 짜증나고 때론 고통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따라서 지리산은 천천히 조급하지 않고 떠밀려 올라가듯 가야 비로소 정상에 닿을수 있다.
한 겨울에도 어김없이 땀이 등짝을 젖게하는 지리산은 역시 방장산이요 이 땅의 지붕이다. 나목과 출렁다리 돌계단과 뼈 박힌 돌길을 걷다 서다를 반복하며 오른다. 중간 중간 길위에서 긴 숨을 몰아쉬며 휴식하는 사람들도 만나고 무엇을 빌려 가는지 회색빛 보시 걸망을 벗어며 털썩 길바닥에 주저앉아 땀을 훔치는 보살 아낙도 이 길에서 쉽게 만날수 있다. 써래봉의 톱날같은 암봉이 실루엣처럼 보이면 천왕봉 아래 풍상을 겪은 법계사의 염불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잠시 후 쥐죽은듯이 고요해 산죽을 건드리는 바람 소리도 크게 들리는 산중에 별안간 사람들 소리로 고요가 깨어지고 잠시 떨어져 있던 사람들이 다시 반갑게 해후하며 등산화 끈을 조이는 로타리 산장에 닿는다. 로타리 산장, 숱한 지리산 산행의 애환이 서려 있는 지리의 최고봉 천왕봉의 베이스캠프다.
필자도 산장에서 김해 아우와 반갑게 해후를 했다. 그리고 동행한 후배와도 동향이고 선.후배인지라 베이스 캠프에서의 해후는 무척 반가웠다. 후배는 법계사 일주문 앞을 지나자 십수년전과 너무도 판이하게 변한 암자 모습에 잠시 감회에 젖는다. 그러나 산은 옛산 그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다.
늘 산 그리움에 갈증과 허기를 느끼고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지리산을 올라라 세상 천지 지리산 만큼 산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줄만한 산이 또 어디 있으랴.
개선문 아래 능선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휴식 할 무렵 낮익은 얼굴들이 비알길을 올라오고 있다. 필자가 7년간 회장으로 재임하던때 가족처럼 보필해 주던 진주자연산악회 임원들(산행대장 3명,여성부회장 총무.그리고 답사길 늘 그림자처럼 따라오던 부회장(현 회장) )참으로 오랫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만나야할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 만날수 있다는 필자의 지론을 그들이 알고 있어 반가웠고 베낭을 대신 메고 오르겠다는 총무의 변함없는 친절을 사양하며 바람처럼 날듯이 천왕봉을 향해 눈물고개를 오르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이 들어감이 고산길에는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이제 든다. 15시간씩 강행군 하던 그때가 그리워진다.
어제 내린 잔설이 봄이오는 지리산릉을 걸터 앉아 더디게 할것 같다. 왠지 허전함이 메워질것 같았던 지리산의 비전이 봄의 길목을 막아선 잔설로 스산하지만 언제 보아도 지리산은 궁색하지가 않다. 강한 바람과 눈 그리고 냉기와 운무 끝간데 없는 산주름이 지리산의 본래 모습이다. 천왕샘은 마르지 않고 졸졸졸 흘러 남강을 향해 내려간다. 남강의 발원은 뭍의 제일 높은 이곳 천왕샘에서 시작되어 산청 중산리를 적시며 경호강으로 가고 그리고 남강에 닿아 낙동강과 만나 다대포 너른 바다와 만나는 것 이다.
느리게 아주 천천히 가파른 비알길을 올라 천왕봉에 올랐다. 민족의 정기와 신령스러움을 전하는 영원한 영산 지리산, 3대가 덕을 쌓아야 일출과 맑은날을 볼수 있다는 영봉 천왕봉에 우리는 행복한 얼굴로 섰다. 노고단,반야봉이 실루엣처럼 아스라하고 제석 영신봉들의 고봉들이 고고히 숨쉬며 산 그리매를 만들어 장쾌하다. 아! 산은 절로 눈속에 갇혀있다 새 봄으로 푸르게 짙어 가리라. 오늘 다시 반가운 얼굴들과 만남의 인연을 만들어준 지리의 천왕봉에서 산행대장이 권하는 정상주 한잔을 받고 그들과 기념 촬영을 한후 제석봉을 향해 우리는 일어섰다.
어디선 온 산악회인지 지리산 고봉들의 산신들을 다 불러모아 제를 올리는 모습에서 지리산의 영험함을 다시 한번 보는것 같아 지리산과의 인연이 또 한번 뜨겁게 다가온다. 통천문을 지나자 산사면의 고사목이 얼음꽃을 피우며 필자 일행을 반긴다. 웅장한 산릉 깊은골 역시 지리산은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해내며 계절의 길목에서 흔들리지 않고 산객들을 보듬는다.
십수년만에 천왕봉에 선 김창호 후배(사진 좌.)와 지리산 종주후 다시 천왕봉에 선 김해아우 (사진 우) 후배는 고딩 졸업후 올랐던 천왕봉 사진과 비교하라며 낚은 앨범에서 아래 사진 한장을 전해준다. 정상표지철판에 표고 1915m와 장터목 산장 방향도 보인다.
통천문 아래 한폭 수묵화 같은 산길로 제석봉으로 가는 사람들과 천왕봉으로 오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인사를 건네며 산길을 간다. 저 모퉁이를 돌아가면 죽어서도 의연히 천년을 지키는 주목의 고사목이 인간들의 물욕을 또 이야기 할것 같아 부끄럽다. 하늘은 필자를 물들일것 같이 푸르다.
제석봉에 닿았다. 실루엣 같은 산 그리매와 그리움 같은 고사목이 저절로 필자의 눈을 감기며 지리산의 고봉들을 떠올리게 한다. 제석봉 아래 장터목대피소,연하봉.그 너머 촛대봉. 그 아래 세석대피소. 다시 낙남정맥의 시작점이자 끝점인 영신봉. 다시 칠선봉을 지나 선비샘에서 목을 추이고 덕평봉.벽소령 형제봉 명선봉 토끼봉 화개재 삼도봉 그리고 반야봉을 지나쳐 쭈-욱 가면 마구할멈이 반야를 흠모하며 서 있는 노고단이다.
황사나 개스만 없으면 지리의 준령들이 열두폭 동양화가 되어 일망무제로 눈앞에 펼쳐지건만 참 아쉽다. 주목의 숲에서 둥지를 틀어 보금자리를 만들던 산까치의 모습도 나목의 고사목에선 다신 찾을수 없고 수년간 애지중지 키우는 구상나무가 천상을 향해 나래를 펼 날이 아직은 요원하다. 인간의 욕이 빚은 현장을 지나칠때마다 무지와 탐욕이 이 산중에서도 자행 되었다는 사실이 의아스럽다.
후배는 제석봉의 주목 고사목 마져 사라진것이 안타깝다며 회상에 잠겨 추억하나 만들기 위해 한컷 했다. 김해 아우도 아웃도어 갤러리에서 구입한 빠알간 쟈켓을 차려 입고 제석의 고사목앞에 섰다.
장터목에서 유암폭포로 내려서는 빙판길에 아낙이 엉덩방아를 찧는다. 아이젠을 꺼내는것이 귀찮아 한쪽에만 착용한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산장아래 산삼뿌리를 적신것 같은 산물을 물통에 채우고 중산리 계곡을 향해 내려선다. 되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법 특히 지리산은 그 미련이 더하다. 가파른 산길 숨을 몰아쉬며 오를때는 이곳에 발을 들여놓은걸 후회하며 다시는 이 고산에는 오지 않으리라 다짐도 해 보지만 천왕봉에서 내려다 보는 세상이 새로운 감회로 다가오므로 사람들은 살아 있음을 고마워 하고 다시 푸른 지리산을 만나려 올것을 다짐한다. 김해 아우를 다시 이곳에서 만나고 수년간 고락을 함께했던 자연산악회 식구들을 각본없이 만났다. 30여년만에 천왕봉을 오른 후배와의 동행은 또 다른 멋이 있어 지리산은 분명 사람과 산,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인연의 산 이다. 잠시지만 얼굴 볼수 있었던 "김해 돛대산악회(창립1주년)"의 무궁한 발전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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