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막힐듯한 장관이 정상(향적봉)에 다가갈수록 끝없이 펼쳐진다.
순간순간 터질것 같은 설화가 만발해 산객들의 발걸음은 너 나 없이 더디고 오름의 고달픔에 포기 할려던 아낙들도 남편의
성화에 끌려가는것이 아니라 덕유의 눈꽃에 홀린듯 정신없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오르고 있다.
이 순간은 살을 아리게 하는 칼바람도 막을수가 없다.
맞았다.
역시 산은 땀흘리며 고통스럽게 오른자에게만 그 특유의 풍광을 가득 담아준다는 사실을...
설산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덕유산은 오대산과 더불어 설화가 가장 아름다운 명산임에 틀림이 없었다.
사람의 흔적이 닿지 않은곳은 무서울 정도로 눈꽃이 피어 묘한 기분이 되고 세속을 떠나지 않는 산을 붙잡고 오늘만은
세속이 산을 떠나지 않을려고 하건만 격렬하게 요동치는 삶이 이를 허용할 턱이 없다.
분수의 물처럼 솟구친 설화가 있는가 하면 사슴뿔을 닮은 설화가 하늘을 가린다.
산 허리에 길게 드러누운 눈이 나무와 상생하며 소통 할려고 한다.
설화의 고요가 과히 유혹적이다.
신과 구름, 바람 그리고 나무와 산 대지가 만든 마술에 필자는 현혹되어 넋을 놓고 있을 무렵 무거운 삼각대를 지고
오르는 사진작가들의 고행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며칠전 졸업 작품전의 사진을 고르기 위해 교수님을 찾아 갔더니 삼각대가 무겁다고 휴대 하지 않는 사람은 사진을
찍을 마음도 작가가 될 꿈도 일찍 접고 방에서 드러누워 남이 찍어 올린 사진이나 쳐다 보고 있으라는 말이 세삼 생각나
지루한 임도와 칼바람에 손끝이 시려 삼각대를 어께에 메다가 도로 차안에 던져놓은 필자의 이 얄팍한 심사가 빛의 예술
을 하겠다니 저분들을 보니 참으로 한심하다.
설국의 덕유산은 모든것에 하얀 생명을 키우고 있다.
오색빛을 내던 가을의 정열이 아니라 차분하게 냉정한 가슴으로 고단한 한해를 정리 하라는듯 눈이 내렸다.
송년의 달 한장 남은 달력에 안타까운 마음들을 다잡아 후회없이 마침표를 찍어라는 의미로 세상 천지를 모두
하얗게 밝히고 있으니 덕유산은 뭐라해도 송년 산행지가 아닐까?
지리산 설악산에 이어 한반도 고산의 대열에 선 덕유산은 무주 스키장이 생기면서 곤도라를 타고 향적봉을 오르는
관광객들 때문에 오래전 고산의 빛을 잃고 마을 뒷산으로 전락(轉落)된게 무엇보다 안타깝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그 은은하고 고귀한 자태로 덕유의 준령들을 호령하는 주목의 개체수가 현저히 감소한것도
무분별한 행락객들의 거침없는 발길탓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그들에게도 덕유산의 볼권리를 주창하면 필잔들 무슨말로 이에 항변할까?
화이트밸런스의 변경으로 <사진 위. 아래>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빛의 예술에 매료된다.
혼자 보기엔 약간 을씨년스럽던 분위기는 정상을 향해 갈수록 강열한 눈꽃에 푹 빠진다.
누가 옆에 없다는것이 함께 볼수 없다는것이 이때 제일 허전하고 쓸쓸하다.
오를수록 은밀한 밀어로 필자에게 다가오는 저 잔잔한 숲.
겨울 눈숲이 우리에게 시사하는것은 무엇일까?
빨려들것 같은 눈 터널을 지날때 혹 목덜미로 떨어질까봐 앞서가는 아낙들은 연방 하늘을 쳐다본다.
역시 덕유산이야.
중첩한 산 그리매에 펼쳐진 눈은 하얀색이 아니라 푸르디 푸른 청자빛이다.
향적봉 아래 나무계단을 오르면서 덕유의 블랙홀로 빠져드는 느낌에 다시 한번 정신을 가다듬는다.
새벽 바람과 구름은 그냥 산허리를 돌아간게 아니라 상고대를 능선 곳곳에 피워 놓고 향적봉의 빗돌마져도
선명하게 은빛 바람꽃을 달아 놓았다.
이제 정상에서 덕유의 그리움을 만나리라.
'☞ 먼 산길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풍한설에도 꽃을 피운 소백산 비로봉 (0) | 2009.01.23 |
---|---|
매서운 설한풍에도 바람꽃은 핀다.(남덕유산 1507m) (0) | 2008.12.22 |
느림이 아름다운 산행 덕유산(1) 지독한 임도를 만나다. (0) | 2008.12.07 |
기암이 전하는 가을이야기 대둔산 (0) | 2008.09.29 |
황산도 울고 갈 월출산 구정봉 (0) | 2008.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