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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 산길에서

매서운 설한풍에도 바람꽃은 핀다.(남덕유산 1507m)

 

매서운 설한풍에도 바람꽃은 핀다.
남덕유산
 [글.사진 / 기산들 ]

 

  바람은 오늘도 자유롭다.

  나무가지를 헝클어 놓을듯이 미치게 불어오는 남덕유의 눈보라는 살을 파고든다.

  어둠속 같은 골을 오르며 우리는 생각한다.

  이 바람을 이길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바로 쉬지않고 냅다 오름길을 질주해야 한다는걸...

  해마다 겨울이 되면 국립공원 덕유산줄기는 변하지 않는 흑백사진 처럼 그 모습이 더욱 아름답다.

  특히 설한풍을 맞으며 미끄러운 철계단 타고 오르 내리는 스릴은 남덕유에서만 느낄수 있는 독특한 겨울산행 맛이다.  

  

   앞선 사람들을 질러 가지만 이내 뒤 따라 오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또 다시 쉬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미끄러운 

   골을 오르는 산사람들의 표정은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후배는 아이젠을 착용하자고 제안하지만 이 잔설에 허리를 구부리는 수고가 영 손해를 보는것 같아 가는데 까지 가자고 했다.

   거친 숨결과 거친 오름길 자연과 인간은 그렇게 서로 휴식과 고통을 주면서 공존하는것일까? 

       

  나무계단을 헉헉대며 올라 드디어 능선에 닿는다.

  우측 수망령으로 가는 진양기맥<진주기맥, 어떤이는 느닷없이 남진종주 리본을 부착>길은 어김없이 통제 목책이 서 있지만 

  진양호로 향해 구도자 같은 고행길을 걸어갈 사람들은 샛길로 길을 이어가고 있다.

     

 잔설이 날린다.

 귓가를 울리며 달려드는 바람,

 겨울 남덕유의 진가는 바로 바람과 눈발 그리고 이들이 피우는 바람꽃이다.

 어느새 능선에는 정상을 향해 오르려는 산 사람들로 정체가 시작된다.  

  오랫만에 산길을 동행한 후배들에게 남덕유의 추억을 담아주고 바람이 만들어 낸 흑백의 마술에 우리는 취한다.

  우람한 기암과 광활한 조망이 덕유산에 비해 하나 손색이 없는데도 덕유산에 가려 "산"지조차 외면하는 외로운 산이 바로

  남덕유다. 시종일관 굵은 힘줄로 거대한 암봉을 만들어 웅장하고 강풍과 눈보라가 예각의 쇠다리를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을

  긴장시켜 그 아찔함은 설악의 공룡을 방불케 한다.

 

 

 쇠스랑으로 긁어 내린듯한 협곡과 원시의 돌칼같은 북동쪽 능선은 강렬하기 그지없다.

 과거에 구름다리가 놓였던 자리에 다시 철계단이 놓이고 망루같은 봉우리에 닿아 사방을 둘러 보지만 눈보라에 우리는 고립되어

 아무것도 볼수가 없다.  멀리 덕유산으로 가는 동엽령을 갸늠만 할 뿐이다. 

 

 

 

          남덕유는 덕유산을 받드는 중요한 축을 이루는 산이다.

          대간에서 벗어났지만 지리산에서 시작한 산줄기는 백운산(1278.6m)과 육십령을 거쳐 남덕유의 서봉(약1,510m)

          으로 이어져 덕유의 향적봉을 향해 달리다가 우측으로 남덕유를 살짝 밀어놓은것이 미안해서인지 대간 줄기는

          공평하게 덕유산 정상도 가지않고 백암봉에서 우측 방향으로 틀어 신풍령(빼재)으로 간다.

             

 

 지겨운 아니 사람들로 정체된 철사다리를 오르는 일은 정말 녹녹하지가 않다.

 정상을 오르는것은 그나마 등을 떠밀리며 오를수 있지만 하산시는 노도처럼 밀려 올라 오는 사람들 때문에 비좁은 철계단을 모험을 

 하듯 추락의 위험도 불사하며 내려가야 한다. 

 

 솟대로 선 남덕유의 나목

 때론 깃발로

 때론 장승이 되어 산객들의 등대가 된다.

  여인의 붉은옷만 없다면 영락없는 흑백사진이다.

  설한풍과 바람꽃 그리고 산을 그리는 사람들,

  한폭 그림으로 보이다가

  다시 고산의 혹독함이 묻어나는 영상으로 남덕유는 그렇게 장쾌하게 우리 눈앞에 다가온다. 

 바람꽃이다.

 강한 바람이 실루엣을 걷어내고 잠시지만 만개한 얼음꽃을 보여준다.

 이때를 놓치지 않을려는 사람들은 저마다 카메라 셔트를 눌리기에 분주하다.  

 

   지독한 산을 왜 오르냐고 사람들에게 물어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허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것 이고 필자의 생각엔 중독이다.

   산 그리움에 대한 중독. 

   오늘 후배들도 필자처럼 산 중독에 걸려 남덕유를 유영하고 있었다. 

 

 주목이 피운 바람꽃,

 회색빛 때문에 정갈하고 귀티나는 모습을 담을수 없었지만 설한풍에도 의연히 그 자리를 지켜내는 주목의 자태는 과연 선비의 

 곧은 기개로 벼랑에 서 있다. 

 

 

 정상.

 빗돌 곱게 세워진 남덕유의 정상에 우리가 섰다.

 눈은 점점 깊어지고 바람은 오래 머물수 없게 매섭게 몰아친다.

 정상 언저리에서 점심을 먹을려던 후배의 바램은 매서운 바람이 앗아가 버렸다.

 이어 서둘러 하산길을 재촉해 보지만 철사다리로 밀려오는 사람들의 물결은 과히 노도였다.

 이것이 겨울 산행때만 느끼는 남덕유의 전매 특허다.

 비집고 내려서는 우리는 철사다리가 끝나는 지점에 이르러 긴장의 끈을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