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군가를 그리워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리움이 얼마나 애틋하고 지순한 감정인지 모른다.
첩첩한 중첩한 산의 윤곽을 어느 시인은 산 그리매로 표현했다.
산 그리매가 무엇인가? 바로 그것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은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그리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필자는 살아오면서 많은 것을 떠나보내고 그래서 그리움에 시방도 애태우고 있으니 다 만나지 못할 그리움 때문에 오늘도
이렇게 산 그리매에 빠져 살아 가는지 모른다.
겨울 그리움이 사무치도록 그립거든 첩첩한 산 그리움이 있는 "덕유산"으로 가라
그곳에 가면 느림이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많은 인내를 요구하는지 절실히 느끼게 될 것이다.
느림이 아름다운 산행 덕유산 (1) "지독한 임도를 만나다"
덕과 너그러움의 산, 덕유산(1,614m)으로 가는 길은 한마디로 느긋한 마음으로 느림의 미학을 즐기지 않는다면 쉽게
지쳐 중도에서 포기하고 만다. 특히 여름 덕유산길은 더 그러하다.
청정계류 구천동을 끼고 고찰 백연사까지 장장 5.6km의 임도는 인내와 느림의 미학을 체험하게 하지만 성급함으로
가다가는 꽃보다 더 아름다운 설화는커녕 첩첩한 산 그림자도 보지 못하고 되돌아 서야 한다.
덕유산은 지리산과 더불어 유난히 산 그리매가 일망무제로 펼쳐져 사시사철 사진작가들이 붐비는 곳으로 초여름엔 철쭉
이 여름엔 구천동의 반딧불, 겨울엔 산 그림자 보다 더 아름다운 설화가 장관이다.
2008. 12. 6. 호남지방에 폭설이 내렸다는 소리가 들린다.
간밤 중첩한 덕유산 산 그리매를 그리며 자다 깨다를 한 게 대여섯 번 어둠 속에서 걸망을 챙겨 카메라를 들고 나선다.
단성을 지날 무렵 지리산릉이 백옥 같은 눈을 뒤집어쓰고 있어 말머리를 중산리로 옮길까 망설이다 이왕 마음먹은 대로
덕유산을 정하고 "느림"의 아름다움을 느낄 준비에 어느새 차창엔 파고로 다가오는 덕유산의 산 그리매가 펼쳐진다.
오늘은 덕유산의 산 그리매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느림이 주는 산행 그 기다가 "설화"와의 만남이 흥분되게 한다.
자! 그럼 필자를 따라 눈 덮인 구천동의 계곡을 오른쪽 겨드랑이에 끼고 지독한 임도를 따라 덕유산을 만나 볼까요?
조선조 학자 葛川(갈천 : 칡이 있는 내???) 임훈(林薰)은 명종 7년 1552년 53세 때 (필자보다 400년 앞서 글 씀) 이곳
덕유산을 오르고 3,000 여자에 달하는 장문의 기행문인 香積奉記(향적봉기)를 남겼는데 여기서 구천동 33 경이 적혀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구천동의 원래 지명은 구천둔이고 이 말은 당시 안내하는 승려가 어제 우리가 건너온 세 계곡의 합류가
구천 둔(구천둔곡)이며 옛적에 이 골에 설불공자 9천 인이 살아 그 와 같은 이름이 지어졌다고 책에 적혀 있다.
삼공리 주차장에서 백천사 까지 이어지는 이 지독한 임도길 오늘 이 길에서 그것도 처음 보는 저 사람들 앞에서
필자는 2번이나 발라당 뒤집혔다 <넘어졌다. 미끄러졌다.>
얼마나 지겨운 임도인지를 짐작케 하는 곳곳의 쉼터.
사진 위 쉼터는 연인들의 것이고
사진 아래 쉼터는 도시락 쉼터로 학창 시절의 추억을 떠 올리기에 충분하다.
겨울철 양은 도시락을 포개 데우던 추억 속 나무 난로가 그 시절로 데려가고...
뒤집히며 3.9km를 걸어온 필자도 차츰 지치고 코 끝이 아린 칼바람에도 등짝에는 땀이 난다.
아직 1.7km를 더 가야 산길로 접어들 수 있으니 마음을 차분히 하고 또 걸어가야겠다.
어! 단풍나무에 웬 목화송이야?
숨 다한 당단풍 이파리에 목화송이 같은 설화가 피어 그나마 지친 산객을 위안한다.
임도가 끝나는 곳에서 만나는 고찰 백련사
자장의 꿈에 이곳 향적봉 아래 백련이 핀 곳에 절을 지었다나...
원래 백연 사지는 위 사진 다리 아래였으나 전쟁 때 불타 소실되어 다리 위 현재의 자리에 터를 잡았다네요.
발라당 넘어지는 바람에 이 사람들과 거리가 엄청났으나 <근데 이 사람들 사람이 넘어졌는데도 괞찮냐고 묻지도
않더군요. 외국에서 온 것 같지도 않던데>
백연사 일주문에서 필자가 기분 좋게 추격합니다.
여잔 지쳐 남자에게 어리광과 엄살을 부리는 게 장난 아니더라고요 ㅎ ㅎ ㅎ
백련사 천왕문을 오르는 계단에도 눈은 융단이 됩니다.
예전 중학생 때 사천왕을 처음 보고(고성 옥천사) 얼마나 무서움에 놀랐던지 혼비백산하여 옆으로 돌아간 기억이 납니다.
근데 지금도 좀 으스스해요.
경내에서 일단의 산꾼들을 만납니다.
아이젠을 채워 주는 것 같은데 여자분의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경내를 떠 뜰썩하게 합니다.
아직도 접시 깨지는 소리가 있습니다.
필자도 더는 고집 피우지 않고 불사 처마밑에 앉아 아이젠을 착용하고 향적봉을 향한 오름을 준비합니다.
시집갈 딸아이솜이불 3채는 족히 해주고도 남을 목화송이가 풍작입니다.
여기서부터 숨이 차 헉헉대는 오름길이 시작되지만 설화의 장관도 계속 이어집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자꾸 느려집니다.
절로 감탄의 목소리가 산을 깨웁니다.
어디 솜사탕 같은 설화가 흔한가요 그러나 덕유산엔 겨울철엔 자주 만날 수가 있습니다.
덕과 너그러움이 있어 이렇게 만산에다 봄꽃보다 더 아름다운 설화를 피우는가 봅니다.
설화를 보기 위해 처음 산을 온 건지 아니면 자주 산을 만나는지 친구와 의지하며 오르던 처자는 지친 기색이 역력하더니
오르기를 포기하려고 몇 번을 쉬더니 결국 향적봉 정상에서 그들을 볼 수가 없었다.
불과 1.6km쯤을 남겨놓고...
자연이 빚은 예술품
더 많은 설화로 또 찾아뵙겠습니다.
아직 정상까진 한참 가야 하거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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