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입대를 하기 전 까지 필자는 탱자나무 울타리와 뒤안(뒷마당)에 조부께서 가꿔온 고목의 감나무 두그루 가 있는 집에서 살았다. 한그루는 단감나무고 다른 한그루는 홍시감인 대봉으로 봄엔 감꽃이 떨어져 눈처럼 뒤안을 덮어가면 또래의 아이들과 볏짚낱에 감꽃을 차곡차곡 끼워 목에다 걸고 다니며 한개씩 과자대신 뽑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여름방학때는 뒤안에 멍석을 펴고 누워 있으면 감잎 사이로 쏟아지는 작은 빛들과 파란 하늘이 어린 나이에도 참 맑고 고왔다는 기억이다.
그러던 어느해 가을,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온 필자는 배가고파 어머니께 홍시를 따줄것을 조르자 감나무에 올라 홍시를 따서 내려오시던 어머니는 Y자의 감나무 가지에 발이 꽉껴는 사고가 일어났다. 필자는 온 동네가 떠나갈듯 울었고 울음소리에 놀란 이웃사람들이 모두 달려와 발을 빼볼려고 애를 태우다 결국 비눗물을 부어 울 어머니의 발을 꺼낸 기억이 난다. 그 후 필자는 홍시만 보면 어릴적(초딩2-3학년)그 일이 생각나 잘 먹지를 않는다. 어머니는 이제 구순을 바라보시는 연세임에도 그때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 필자는 행복하다. 따라서 이승을 느리게 거북이보다 더 느리게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계시다 가셨으면... 비록 필자가 孝는 못하지만 말이다.
그 때 그 집은 필자가 군 복무를 할때 타인에게 이전 되었으며 뒷마당과 앞마당을 합하여 근린생활시설로 신축되어 두그루의 감나무는 물론 아랫방에 살던 일선공무원의 딸 현숙이와 소꼽놀이 하던 탱자울타리도 그 형체마져 찾을수가 없다. 빛바랜 사진 한장 이라도 있었으면... 기억은 사진으로 현상을 할수 없으니 그때가 더욱 그리운것인가? 다섯살쯤의 소꿉친구 현숙이도 아마 필자 또래로 이제 손녀의 재롱에 지난 추억이나 기억할까? 오늘 고무신 벗어 트럭을 만들고 사이다 병뚜껑 사금파리로 살림을 꾸리던 소꿉친구가 그립다.
해마다 사람들의 남획으로 그 형체마져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문산 어수앞 연밭을 우리 지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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