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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며 생각하며

이순신을 신격화하고 거북선의 성능을 부풀렸다는데...

이순신을 신격화하고 거북선의 성능을 부풀렸다는데...
[글.사진 / 雲岳.기산들]

        제(2009. 8. 19.) 아침 인터넷에 올려진 글중에 유독 눈에 띄는게 있어 열어 보았더니 며칠전 통영에서 끝난 한산대첩 재현의 중심인 이순신과 거북선에

         대한 어느 작가의  책 "조일전쟁"의 내용 이었다. 여기서 작가는 우리가 배운 교과서엔 이순신을 불후의 명장으로 묘사하면서 지나치게 신격화 하였고 

         판옥선을 개조한 거북선 의 성능 또한 부풀렸다는 주장이다.

         필자가 대략 간추리면 1592년 일본 즉 倭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20년만에 전국을 통일하여 "사무라이"전성시대"를 연다.

         따라서 그들 개개인의 전투 능력은 세계 그 어느 육군보다 강력했다는 주장이다.

     

     

      그 당시 조선은 평화의 시기로 조선 건국이후 14대 선조에 이르기까지 그들을 위협하는 외세는 존재하지 않았고 다만 그들 안에서 스스로 곪아 가기 시작했다.

      바로 이것이 당쟁으로 기득권을 쟁취하기 위해 동인과 서인으로 편이 갈라져 국사는 뒷전이었으며 군대의 기강 또한 해이하여 곡괭이와 호미 밖에 모르는

      농민들로 군이 편성되어 전투력도 전무한 오합지졸들로 채워 졌다는 것 이다.

  

    가는 7년 전쟁인 임진왜란을 倭 의 亂으로 설정한것도 잘못 되었다는 것 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을 침공하여 명나라 정벌의 교두보를 마련하려 하자 때마침 "금"의 위협을 받고 전투중에 있던 명나라는  일본의 군세가 다가오자

    그들의 땅에서 전쟁을 벌이는것 보다는 남의 땅 조선에서 전쟁을 하는것이 득이 된다는 사실을 간파하여 병력20만을 출정시키니 왜의 20만과 조선의 10만

    병력이 벌인 이 전쟁은 임진왜란이 아닌 "조일전쟁"이 맞다는 것 이다.

 

       리고 작가는 이순신에 대하여 교과서는 불후의 명장으로 신격화한 부분이 있으며 그 의 전공이 24전 24승의 전승이 아니라 16전 13승 3패라는 주장을

       펴며 그 3패의 현장을 웅포해전,장문포해전,왜교성해전.이라 적었다.

       또 한 작가는 행주대첩시 성안 아녀자들이 행주치마에 돌을 날라 왜군을 향해 투척했다는 설 또한 허구로 "행주"는 지명이지 행주치마가 아님을 피력하고

       당시 고려의 최무선이 개발한 화약에 힘입어 조선은 막강한 화력을 지녀 승리하게 되었다.로 묘사했다.

  

    울러 일본 수군은 민첩하게 움직이는 속도전을 결행하는 특성상 조선 수군의 판옥선보다 속도를 내기위해 함선을 작게 만들어 우리 함선인 판옥선이 월등히 

    나았으며 함포를 장착하여 일본 수군보다 화력면에서도 우위를 점했다고 한다.

    특히 거북선의 성능에 대하여도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것 과는 달리 용머리의 함포와 꼬리부분만 뚫여있어 전투반경이 좁아 그다지 전투력이 뛰어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러나 작가는 한산도대첩과 명량해전 마지막 해전 이였던 노량해전의 승리는 이순신의 뛰어난 전술이 돋보인 해전 이였다고 적었다.

      417년전의 진실을 정확하게 꿰뚫어 볼수 있는 문헌이 부족한 상황에서 진실공방을 예단하기가 곤란 하겠지만 우리 국민 대다수가 구국의 성웅으로 알고 있고 

      전무후무한 해전사를 남겨 우리 해군의 상징으로 터 잡은 이 충무공의 전과와 숭고한 정신이 훼손 되어서는 안될것이다.

      여러분들의 의견은 어떠신지... 지금 광역단체에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이순신이 대첩을 거둔 해역을 중심으로 400여년전 거북선 잔해를 찾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에 있어 거북선의 실체가 밝혀질 것인지 기다려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