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골 은빛 비단 瀑 내연산. 내연골 |
골짜기 갈라놓는 물줄기는 2004년 찜통 8월을 넉넉히 만사람들을 보듬고 앉아 속세의 찌든때와 고뇌를 한겹한겹 옥빛물로 씻어내고 있다.
해마다 8월엔 동해로 가지말라고 흔히들 이야기를 한다. 졸자도 동해의 모진 인파와 차량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울산쪽 7번 국도를 포기하고 구마 고속도로로 대구를 거쳐 경산 영천방면 경주 포항 송라로 향해 갔지만 경주로 가는 도로엔 차.차.차. 모두 길복판에 줄지어서고 그 차들이 내뿜는 열기와 아스팔트의 지열이 짜증나게 하지만 오후내내 가다가 서다가를 반복하면서 보경사 밑 송라면에 도착하니 18시가 되어간다.
당초 계획은 오후 3시경 도착하여 보경사를 출발하여 내연골을 거쳐 계곡 적당한 장소에 1박을 하고 다음날 시명리 향로봉 삼지봉 보경사로 하산하는 여유있는 계곡 트레킹을 계획 하였으나 도착이 늦어 야간산행 준비를 해오지 않아 민박집이나 여관을 빌려야 하는데 성수기라 방도 문제지만 가격 또한 날개를 달았다. 방하나에 금 80,000원 그것도 시간이 가면 더 오를수 있다는 村老의 말씀 소박하던 시골 마을의 인심이 사라진지 오래이던가? 세발만 나오면 객지의 설움이 시작된다고 했다. 동해의 푸른파도도 영덕대게도 시야에서 점점 사라지고 다음날 새벽 검은 바다를 솟구쳐 오른 일출마져도 개스로 희뿌옇다. 너른 주차장엔 주차원이 꼭두 새벽에 나와 요금을 징수하고 있다. 양쪽으로 늘어선 식당과 기념품 상점들이 여느 관광지와 다를바 없고 일조대사가 8면경을 동해 가까이 내연산 아래 30미터 깊이로 파묻고 절을세운 보경사 경내는 낭랑한 독경과 이른 아침 참선하는 보살행렬이 고찰임을 암시한다.
입장료를 내고 보경사 좌측길을 오르니 향긋한 풀내음과 솔향이 코끝을 간지려 기분좋다. 작은 계곡물소리가 들리고 이어 골 양옆으로 울창한 숲과 기암바위가 예사롭지 않은 산임을 예고한다. 태백준령이 빚은 한폭의 동양화. 골이깊고 물이많고 맑아 십이폭포를 간직한 산. 정조16년(1792)보경사에서 일생을 보낸 동봉은 남쪽의 신구산과 북쪽의 내연산에서 흐르는 계곡물이 합하여 한곳을 흐르는데 그 수원이 30리나 되고 폭포와 절벽과 층벽.기암괴석이 굽은 소나무와 함께 면면이 진열 되었으니 이곳 사람들은 소금강이라 말한다고 적었다. 물론 그때는 교통수단이 전무해 도보로 명승지를 탐방하지 못해 소금강이라는 표현을 하였는지는 몰라도 내연산은 절경과 대자연의 신비함이 어우려진곳임은 의심할 여지가없다. 선녀 등줄기 간지럽힌 학소대. 풍류객 사로잡는 기화대며 연인들의 정 두텁게할 상생폭(쌍폭). 선비의 기개 묻어나는 잠룡폭. 보름날밤 12선녀 내려와 멱감으면 나무꾼 옷 숨길곳 더없이 좋은 관음폭. 수줍디 수줍은 여인 몰래 속살 드러내고 명상에 잠길 연산폭을 비롯 은빛나래 끝없이 떨어지는 은폭.복호1.2폭 실폭 골 마지막 폭포인 시명폭포 그리고 선바위. 무던히 깊은 내연골엔 12폭포와 소. 그리고 풍류즐길 石樓臺가 낙락장송과 함께있어 비파소리에 금방이라도 선녀가 속살 비치는 날개옷 입고 학타고 내려오는곳 그곳이 바로 여기 내연골이 아니겠는가?
찾아가는것도 돌아오는것도 차량에 막혀 쉽지는 않겠지만 전국 어느곳 산좋고 물좋으면 쉽게 접근할곳이 있던가요? 아 ! 그날 하산길에 진주 희망산악회 구인애총무님 일행을 만났다. 반가운 순간에 아무 생각이 없다가 무더운 산행길 하산후 둘러앉아 시원한 맥주나 한상자 드시게 할려고 팔도관광 기사를 만나기 위해 1시간을 땡볕에 서 있다가 기사를 못찾고 그냥 내려와 내내 서운하다.
찾아가는 길 상생폭포(쌍폭)가뭄으로 수량이 적은게 흠 관음폭. 12선녀가 달밤에 내려와 멱감으면 나뭇꾼은 옷을 숨긴다. 연산폭 사진 외 폭포와 소 기암등 많은 사진이 있으나 자료실 용량관계로 생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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