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발맞추지 않고 세월아 네월아 하며 사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리고 어느 누가 세상을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또 몇일까? 연일 가마솥같은 더위탓도 있겠지만 선비의 고장 안동 하회촌 방문은 억지라도 느리게 느리게 아주 느리게 느림의 미학을 느낄수 있는곳이다.
모터를 단 나룻배가 휘돌아간 물줄기를 따라 천천히 움직인다. 강가 노송의 솔숲은 하회촌 선비정신을 말하는듯 흐른 세월만큼이나 장송이 되어 길손들을 포근히 보듬어 편하다. 하회촌은 풍수지리학상으로 山太極.水태극이란다. 태백산에서 뻗어 유장하게 내려온 지맥이 화산과 북애를 이루고 일월산에서 내린 맥이 남산과 부용대를 이루어 서로 만난 물줄기가 S(물동이)자로 감싸돌아 하회다.
세월에 손봄이 어디 없겠냐마는 어미의 품속같은 초가와 긴 담뱃대를 물고 신새벽 대갈일성으로 머슴들을 불러 모았을 고가의 와가가 긴 담벼락을 낀 골목을 사이에 두고 8월의 뙤약볕을 맞으며 졸고 있는 풍광은 가물한 옛 고향의 모습이어서 정겹다.
어릴적 청마루에서 삼베짜기로 긴 여름을 보내던 어머니의 베틀을 여기서 보았다. 고단함과 설움이 깃발로 서 있던 베틀, 어느해던가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때로 윤이나던 그 베틀이 낮선 고물장수의 손에 들려나갈때 필자는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었다. 하회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사람들을 보듬는다.
단단한 흙담, 굽돌아가는 골목길에 한점 바람이 돈다. 술렁이는 목소리에 놀란 능수화는 담벼락에 황급히 불꽃으로 피었다. 골목길에서 만난 아이는 멋모르고 어미와 초록의 길을걸으며 아주 오래된 이야기 조각들을 북소리 울리는 가슴에 담는듯 발걸음이 가볍다. 아랫방 옆 가지런한 농기구를 보니 아버지가 무던히 그립다. 늙은 감나무도 바람을 잡는다.
500여년 세거한 풍산류씨도 하회촌의 터줏은 아니었다. 류씨가 세거이전엔 허씨와 안씨가 먼저 세거 한 유래는 하회탈의 제작자가 "허도령"이었다는 구전이 있고 "허씨 터에 류씨 배판"이라는 말이 전하는걸 보아도 그렇다.
물이 유유자적 굽돌아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곳 하회의 모습이 근래에도 많이 변했다. 하회촌내의 상점과 식당들이 밖으로 나와 장터를 만들었고 이 장터에서 셔틀버스로 하회촌을 왕래한다. 그리고 2010. 8. 1. 유네스코 제34차 회의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 등재되어 명실공히 세계인의 이목을 받게 되었다. 127 가옥 437개동으로 구성 되어있는 하회촌은 대한민국 전통생활문화양식과 고건축양식을 한눈에 볼수있는 한국 옛문화의 정통성과 올곧은 선비정신이 깃든 역사의 장場이므로 우리 모두가 건강하게 보존해야 할 책무가 있는곳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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