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계곡에서 구곡담 거쳐 대청봉으로 간 사람들
백담사앞 계곡. 돌탑들이 정겹다.
잠 한숨 못자고 새벽5시 설익은 밥 한공기로 허기를 때운후 백담사 분소 버스 정류장을 향해 베낭을 지고 달린다. 저 버스를 놓치면 7. 1km 시멘트길을 걸어야 한다. 특히 오늘은 만해를 기리는 만해 축제의 마지막 날이라 이 길이 하프 마라톤 코스로 차량운행이 전면 중단되어 다음 버스는 11시경에 출발 예정이라니 발빠른 산행대장과 총무 그리고 부회장이 먼저 달려가 버스를 잡고 있고 필자를 비롯 나머지 사람들은 숨가쁘게 달려간 것 이다.
덜컹 거리는 시멘트 좁은길을 숱하게 달려서인지 버스 소바가 나간듯 스프링 닿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지만 창밖 백담의 맑은 계곡 물소리 그리고 차에 탄 산 가는 사람들의 선잠깬 이야기 소리가 어울리며 20여분을 곡예하듯 내달려 백담사 정류장에 도착하니 한기를 느낄 정도의 낮은 기온이고 상쾌하다.
백담사.
내설악을 대표하는 절로 신라 진덕여왕 원년(647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한계사라 하다가 이후 화재로 여러번 절 이름이
바뀌고 조선 정조때 백담사로 개칭 되었다.
만해 한용운이 불교 유신론을 주창한 절로 널리 알려져 있고 전직 모 대통령의 퇴임후 은둔지로 더욱 유명해진 절이다. 칩거한 요사채는 영욕의 세월을 말하듯 어둡게 돌아앉아 중생들 입마다 방정스럽게 오르내리고 사찰옆 계곡엔 절절한 민초들의 소망비는 작은 돌탑들이 맑은 물속에 기립해 있다.
이제 백담계곡을 가리니...
설악
천하명산. 천하절경. 세상 가장 좋은 미사여구로도 성이 차지않는 대한민국 으뜸 절경 산이다.
대청봉을 정점으로 무수히 뻗어내린 산줄기. 골.골. 골짜기 어느 한골짜기도 비경이 아닌곳이 없다. 혹자들은 북의 금강산과 쌍벽을 이루는 산이라 하지만 노골적으로 들어낸 금강산의 비경 보다는 숨기다가 들어내고 또 감추다가 조금씩 보여주는 설악이 더 명산 절경이 아닌가?
그 중에서도 설악다운 설악 북서지역인 내설악 (백담.수렴동계곡 소청)과 고행의 길 서북릉을 따라 남설악 장수대까지 산길가면 설악 그 전부를 품에 안을수 있다.
설악에 발을 들어 놓으면 제일먼저 사람들을 반기는건 다람쥐다.
설악 다람쥐는 사람들을 두려워 하거나 경계하지 않고 잠시 쉴려고 자리 잡고 앉으면 언제든지 어느 장소에서나 나타나 재롱잔치를 한다.
그만큼 설악은 사람과 자연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한때 1965. 11. 설악산 일대는 천년기념물 지구로 지정 되었을 정도로 자연의 보고요 산 자체가 보물이었던 것이다. 백담계곡에서 수렴동으로 가는 산길은 호젓하다. 이른아침 나무들 사이로 비치는 빛줄기를 따라 새소리 물소리 벗하며 걷다보면 모든이의 얼굴엔 생기가 돈다.
바로 서광이 있기 때문이다. 눈시리도록 맑은물 그래서 속세의 온갖 부정과 탐욕을 가진 우리는 차마 그 물속에 손하나 담그기도 두렵다.
탐욕의 때가 씻겨져 명경수를 버릴것 같아서 말이다. 그 날도 설악은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것을 베풀고 있었다. 옥빛 하늘과 수십km까지 조망되는 쾌청한 날씨 분명 우리는 설악산신의 음덕을 받으며 백담산장을 향해 행복한 산길을 간다.
보통사람들은 설악은 겉보기가 우직한 남성같아 먼길가는 종주를 꺼린다.
그러나 정작 설악은 안으로 안으로 들어 갈수록 사람들을 보듬어 주고 더 많은 절경을 가슴에 안겨준다. 가치있는 산행. 아름다운 산행. 인내를 시험하는 산행을 원하면 설악을 가라.
그것도 백담계곡과 수렴동계곡을 거쳐 봉정암을 지나 소청에 오르고 이어 중청과 정상인 대청봉에 선후 숨고르고 다시 중청을 내려가 서북릉을
따라 귀때기청(작은 귀때기. 큰 귀때기)을 지나 대승령을 거쳐 장수대로 하산하면 설악 전부를 안을수 있을뿐 아니라 유격훈련 같은 고통과 스릴이
있어 우리 살아있음을 느끼게할 것이다.
설악은 쉽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중후한 산이다. 더욱 아름다운 경치는 산중에 숨겨두고 내 발길
부지런 떨어야 하나씩 하나씩 보여주는 심술궂은 산이다. 한발 한발 인연을 맺기위해 가다가 고개들면 비경하나 내어주고 아쉬워 뒤돌아보면
저만치 인연의 끈을 매는 선경. 설악은 오메불망 그리다 온 심정 아는듯 그렇게 잔잔한 미소로 천천히 손을 흔든다.
백담 대피소(산장)
이곳도 민간인이 관리하는 곳이다.
모두들 느끼겠지만 대한민국의 산장지기는 한결같은 특징이 있다.
긴 수염 그리고 묶거나 땋은 머리 검게탄 피부. 아마 이발소가 있는 속세로 내려가기 힘들어 전국 산지기들 합동회의시 주요의제로
상정되어 만장일치로 통과된 사안인것 같다. 암튼 부인과 산속에 묻혀 동동주며 음료수 산객들에게 팔며 사는게 행복해 보이는것은 요즘같이
너무 어려운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심정이 아닐련지....
지나온 백담계곡이 넉넉한 품속이라면 나아갈 수렴동은 탕과 폭포에
신선이 노는 선유구곡이다. 하늘이 열리는곳에 어김없이 비경이 있고 금방이라도 선녀가 인기척에 놀라 속옷도 못입은체 날개옷만
걸치고 허공에 춤사위 보이며 천상을 황급히 날아 갈것같은 선경 이어진 마음 넉넉히 하는 골이다.
물과 세월이 힘을 합쳐 빚어내고 풍상이
상채기 만들어 신비의 골을 만들어 놓으면 청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기어히 간다.
성벽처럼 늘어진 용아장릉의 기암괴석과 암반 사이 사이로 가녀린 뿌리를 내려 푸른생명을 자랑하는 노송과 너무 잘 어울리며 내설악의 풍치를 더해준다.
쌍폭 맑디 맑은 수렴동 계곡의 대표적인 폭포다.
폭포 중간에 앉아있는 두 총무는 승천하는 두 용을 각각 타고 천상을 향하며 우릴 보고 손 흔들고 비상한 몸부림은 암반을 갈라 은빛 물줄기 구름처럼 내리니 필자는 이를 雙龍瀑이라 부른다. 정말 아름답다. 세상 어느 조각가가 이처럼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수 있겠는가?
세삼 자연의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에 감탄한다. 앞서간 산행대장은 얼마나 빨리 갔는지 자취 아득해 후미에 쳐진 하창준 일행을 기다리며 계곡옆 바위에 걸터앉아 신선들이나 즐기는 점심식사를 하고 봉정암 비탈길을 향해 모두 일어섰다.
봉정암.
수렴동계곡 최상부인 소청봉 바로밑에 있다.
이 절은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높은곳에 위치한 절로 신라 선덕여왕 12년 자장율사가 석가모니 진신사리탑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 높은곳에 육.칠순 노보살들이 찾아와 가정의 평온을 위해 기도를 한다니 과히 그 정성이 높은곳에 닿지를 않았겠는가?
그 날 육중한 헬기가 법당 증축에 필요한 대리석 기단을 쉴새없이 실어나르고 요사채 작은 마루엔 속세의 보살들이 간밤 이곳에서 부처님을 알현한후 하산할 준비를 하고있다.
샘. 이처럼 시원한 물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냉장시킨 물보다 더 차거운 석간수로 목을 적시고 수통에 가득 채운후 계단을 오르자 이제사 휴대전화가 소통되는지 산행대장이 교신을 해온다. 무전기를 개방하라 한후 위치를 물어니 소청대피소 란다. 봉정암에서 미역국에 공양을 하고 라면까지 끊여 먹였다니...용폭에서 봉정암까지의 풍광은 우리가 여지껏 보아온 동양화와는 사뭇다른 명품 동양화가 끝없이 펼쳐진다. 특히 봉정암 가기전 안부 맞은편 사자바위에서 정면과 좌.우를 보면 눈이 의심갈 정도의 그림이 펼쳐진다.
역시 내설악이고 수렴동이다. 또한 봉정암에서 소청대피소 까지의 산행길은 인내를 시험하는 가파른 고행길이지만 소청에 오르면 한참동안 못 보았던 사람들을 만날수있다. 지친 다리를 스틱에 의존하며 소청 대피소에 오르니 산행대장과 총무일행이 필자의 베낭을 벗긴다. 물론 머리묶은 산장지기 그리고 산객들의 어수선함이 보이고...
예약한 대피소 침상에 베낭을 둔후 아직도 멀리 뒤쳐져 소식없는 하창준회원과 그 의 친구내외는 날 어둡기전 소청 대피소까지는 올라 올것이라 믿고 필자를 비롯 7명은 대청봉을 가기위해 평상을 일어섰다. 바람 드세게 부는 소청엔 키작은 나무들과 작은 주목이 고봉임을 암시하더니 이어 눈앞에 펼쳐지는 대 설악의 파노라마.
용아릉.공룡릉. 울산바위가 운무에 가렸다 보였다를 계속 반복하고 파란하늘 밑 대청봉을 천상의 옥황상제가 시샘하듯 금새 안개를 산 전체에 뿌리지만 3대고봉 설악산신이 장풍으로 걷어내니 아 ! 이곳 대청봉도 3대가 덕을 쌓아야 그림을 볼수 있다던가?
우리는 다 보았다. 저 설악동 집선봉에서 부터 권금성 비선대 마등령 공룡릉.용아장성릉.울산바위. 아득한 인제읍쪽 가리산.주걱봉.삼형제봉까지 운무의 춤사위가 승무처럼 나부끼니 대청에 오른 사람들의 얼굴 얼굴마다 형언할수 없는 행복한 미소와 성취감이 천상을 향해 다가간다.
예상밖의 대청봉 조망에 흥분된 우리는 각자 기념촬영을 한후 저녁밥 준비와 하룻밤을 지낼 소청대피소로 하산하니 하창준 회원이 필자 동생 친구라며 인사를 시킨다.
인연이란것이 이 먼곳에서 진주사람을 만나고 그것도 동생친구를... 이들은 사진동호회로 소청에 자주와서 공룡능선과 용아장성릉에 걸린 운무를 찍어간단다. 해 질무렵 장관이 연출 되므로 모두들 사대에 도열한 사수들 처럼 값비싼 카메라를 일렬로 세워놓고 긴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한장의 작품 사진을 찍기위해 벌써 4일째 이곳 대피소에서 머물고 있다는 말과 첫날 운무의 장관을 볼수있는 우리 일행들은 모두가 복받은 사람들이라고 이야기 한다.
노천탕에서 등목을 하고 (여자들이 등목할때는 보초를 서야하고 물이 너무 차거워 물 3번이상 등에
끼얹을수 없다) 밥하는곳으로 나오자 와 하는 고함소리에 쳐다보니 능과 능사이 암봉과 암봉사이로 운무가 춤을추듯 모여들다가
나가고 나간후 다시 돌아오는 액자속에서나 볼수 있었던 장관이 바로 우리들 눈앞에서 오래오래 펼쳐진다. 대피소 마당 한켠
평상에 앉아 술잔 기울이는 총무일행을 두고 지난밤 잠 한숨 자지못해 침상에 일찍 누웠으나 묵은 땀냄새와 곰팡이 내음 그리고
짜증나게하는 사람들의 이 갈고 코고는 소리에 결국 이 밤도 하얗게 지새야한다.
내일은 소청.중청을 거쳐 장쾌한 서북릉을 따라 장수대로 가는 긴 고행의길을 갈것이다.
감히 무지한 이 범부가 저 아름다운 설악을 글로 표현하는 자체가 죄가 아닐련지...
너무 詩的으로 묘사하면 현실감이 떨어질것 같고 그렇다고 시간 기록하며 올라가는것도 조금은 딱딱한 느낌이 자꾸들어 그냥 두서없이 올려 보았습니다.
분명 설악은 한국의 명산이 아닌 세계 어느 명산과 견주어도 실로 손색없는 우리 강산임을 느낀것이 이번 2박3일간 설악산행의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아울러 이 아름다운 자연을 아무 훼손없이 우리의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것을 사람들에게 각인하기 위해 여러장의 사진과 함께 이 글을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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