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기맥 종주 제6구간
신촌마을-바랑산-상대소류지-소룡산-갈밭고개-작은황매산-떡갈재
2003. 6. 22. 하지. 절기답게 아침부터 후덥지근하다. 봉고차로 이동 할려다가 떡갈재를 아무리
생각해도 못 오를것 같아 지프 2대로 이동했다. 6시10분 출발. 졸자가 탄 서팀장이 운전하는 산타페는
신호를 적게받기 위해 봉래초등교 밑 좁은길을 달리는데 "펑" 소리와 함께 차가 주저앉는 느낌이다.
깨진 연석에 우측 뒷타이어가 받혀 펑크가 났다. 좁은길 마주오던 차 비켜주고 달리는 순간 타이어가
연석을 쳐 불상사가 생겼다. 무전으로 산행대장을 호출하니 뒤따라 왔다. 남자 3명이 모이면 못할게
없다더니 한명은 스피어 타이어 내리고 한명은 자키 작동하고 암튼 후다닥 타이어 교체후 황매산 밑을
향해 달렸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성현의 말을 부회장이 되뇌이고 ...서팀장 차는 떡갈재 밑 공사장에
주차한후 여대장 차로 5구간 종점이고 6구간 들머리 예당마을 위 신촌고개로 갔다.(오전 8시6분)
오늘 또 함께 고생하자는 졸자에 말에 모두들 비장한 각오로 화이팅을 외치고 신발끈 단단히 맨후 바랑산
을 향해 힘차게 오른다. 마치 전투에 참가하는 병사들 처럼.....
바랑산을 오르는 임도가 끝나자 나뭇가지가 뒤엉켜 길은 희미하다.
산행대장과 서팀장은 앞장서 새로 구입한 낫으로 길을내고 이미 바지는 이슬에 다 젖었다.
바랑산 정상도착 (08:40) 계란과 물 한모금씩 나누고 다시 길을 나섰다. 여기서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우리는 기맥과는 전혀 다른길을 엄청난 힘을 소비해 가며 가고 있는줄을 꿈에도 몰랐다.
망할놈의 빨간리본 "과천 ㅇ 영옥" 이 리본을 따라 베트남 정글보다 더 험한 수풀을 헤집고 갔다
(아마 이 사람도 길 엄청 잘못들어 고생 하였을것임) 무덤 헬기장을 지나 상대소류지도 파악하지 못하고
(숲이 우거져 사방관측 불가능) 09:53. 소룡산이라 생각했던 산. 정상 바위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니
황매산 줄기는 너무도 먼 오른쪽 전방에 희미하게 연무에 가려있다.
지도와 인터넷 자료 그리고 고도계를 아무리 대조해도 틀림없이 아니다. 갑자기 허탈감에 생각이 없어진다.
여기서 주저 앉을수 없지 않는가. 일행은 오이와 과일 그리고 맥주 한모금씩 마시고 너무도 아득한 바랑산을
향해 다시 발길을 돌렸고 장장 2시간 30분을 낭비하며 바랑산에 다시 도착했다. 고통 그 자체다(11시30분)
여기서 우리는 다시한번 바랑산 정상을 기억해야 한다.
먼저 종주한 사람들의 뚜렷한 표시기가 없고 일반 산행인들이 근교 산행을 하면서 무수히 달아논 리본을
특히 조심해야 한다. 따라서 여기서 박성태님의 종주기중 이 부분을 꼭 참고해야 한다. "정상에서 산길을
따라 내려서서 직진하는 뚜렷한길을 버리고 오른쪽 희미한 길로 들어 조금 가다가 다시 직진하는 뚜렷한
길을 버리고 "국제신문"의 노란색 표지기가 있는 왼쪽길로 접어 들었다." 우리는 직진을 한것이다.
그것도 빨간 리본을 따라 .. 이후 기분좋은 솔숲길이 진짜 이어진다. 일시에 순간의 고통은 잊어지고
땀이 온몸을 적셔 기분이 좋다.
솔숲길을 지나 눈앞에 턱 버티고 있는 소룡산 제1봉. 거대하고 아름다운 암봉을 보여주기 싫어서인지
오르는길은 코가 땅에 닿는다고 표현해야 한다. 땀은 샤워하는것 처럼 전신을 적시고 숨은 턱에찬다.
힘겹게 오르니 3-5구간중 가장 절경인 소룡산 1봉 암봉을 만났다.
바위에 사뿐히 내려앉은듯한 단풍나무. 가을이면 그 자태가 더욱 아름다울것 같은 작은 비경.
그래 가다가 간혹 저런곳을 만나야 우리 일행들 용기내어 가지 않겠는가.
최총무의 일반 카메라에 기념 촬영을 한후 7분쯤 깔딱고개를 더 오르니 1봉 정상이다. 돌아보니 헤며다
온 산길도 또 이 순간만은 아름답게 보인다. 허기도 지고 깔딱고개를 오르면서 많은량의 힘이 소진되어
우리는 점심식사로 재충전 하기로 하고 1봉 정상 밑편편한 숲그늘에 둘러앉아 가지고온 도시락을 편다.
야 오늘의 특별요리는 소안창이다.
서팀장이 소2마리의 안창을 구입해 일반 쇠고기와 구워 시원한 얼음 칵테일 소주와 반주하니 일시에
고됨이 사라지고 모두들 입가엔 원추리 꽃보다 더 이쁜 미소가 번진다.
맞어 뭐라해도 먹고 배불러야 기맥종주도 하지 않겠는가.
헤면구간
14시9분 행복했던 식사 시간을 끝내고 우리는 고행의 길을 향해 모두 일어섰다.
배고픔이 가신탓인지 소룡산 2봉은 쉽게 정복했다. 단체사진을 찍고 서둘러 길을잡아 내리막길을 내려오다
다시 길이 이상하다며 시리와 최총무가 섰고 여대장과 서팀장은 선두에서 길 찾는다 부산하다.
2봉에서 도상연구와 길을 확인하지 않은것이 낭패를 또 본것이다.
앞서 몇번의 시행착오를 겪어오면서도 또 실수를 하다니... 일행의 얼굴은 이내 어두워 지지만 마음을
다잡고 다시 2봉 정상을 오른다.
김해아우는 연신 고됨을 토로하고 진주까지 갈 남은길이 염려 되는가 보다.
15시28분 우리는 길을 찾았고 계속 내려오니 무덤과 공지옆 웅덩이를 지나 밀치에 도착하니 16시13분이다.
산청군 차황면 표지석이 서있는 지방도의 가로수인 벚나무중 한그루에 유난히 많은 벚찌가 달려있어
일행은 한옹큼씩 따 입에넣고 길옆을 보니 밭에서 감자를 케는 아낙의 어깨위로 6월의 햇살이 내려앉고
왠지 줄어들지 않는 농가 채무의 무게 만큼이나 두 어께가 쳐저있게 느껴지는것은 졸자 역시 촌놈
이어서일까. 무덤을 지나 올라서니 길이 보이지않아 산행대장은 낫으로 길을 만든다. 서팀장은 하산후를
생각하여 여대장 차를 가질려 가겠다기에 보내고 17시12분 갈밭고개에 도착했다. 무릅이 아파오고 꼬롱이
물파스를 졸자의 허리에 뿌려 통증이 약간 가는듯 하였으나 무릅까지 통증이 온다. 황매산을 향하는
들머리를 찾지못해 또 대원들은 숲 울창한 능선을 고통스럽게 헤멘다. 620봉에서 도상 회의를 하고
지도상 떡갈재로 가는 지름길이 있다며 그곳을 향해 10여분 가니 계곡에 물이 흐르지 않는가.
"회장님 그냥 계곡 건너 지름길로 갈까요. 지친 부회장이 졸자를 향해 이 말을 던진다.
망설이는 순간 침묵이 흐르고 졸자는 안되지 계곡을 건너면 지금까지 고통 스럽게 헤쳐온 길 헛일이냐
위로 치고 올라가" 물통에 물을 가득채운 대원들은 다시 가파른 산길을 헤집고 간다.
감자케는 아낙의 어깨위로 고달픈 우리 농촌의 아픔이 앉아있다.
왜 이 길을 갈려고 하느냐 졸자가 내 자신에게 물어볼 순간이다.
순전히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표현이 맞다.
누가 이 녹음 우거져 길 하나도 보이지 않는 하절기에 이 길을 가겠는가.
또 올라 갔는데 길이 잘못 되었으면 어떻게 하나 마음 다잡아 재촉하던 졸자도 갑자기 약해지기 시작하고
가시가 박혀도 아픈 생각도 없다. 어느새 시간은 해떨어지는길로 가는 18시45분 길없는 산중에서
랜턴이 있어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일시에 불안한 생각이 업습해오고 마음이 조급하기 시작한다.
가시덤불을 잡목을 헤치며 정상을 오르니 황매산 표지석이 보이고 박성태님의 종주기 표지기를 만났다.
고통속 이었지만 정확하게 찾아왔다는 기쁨은 만감이 교차한다.
멀리 큰 황매산쪽 임도를 보니 아침에 세워둔 차가 보인다. 멀리 서팀장의 음성도 들리고 다른 방향에서
올라온 타 기맥종주팀의 표지기도 보인다. 해떨어지기전 서둘러 떡갈재를 향해 내려섰다.
길이 아니다 고통이고 벌이다. 키보다 더 짙은 수풀을 헤치고 임도에 내려서니 모두 얼싸안고 흥분한다.
(19시26분) 나는 감히 말한다. 다시한번 이 기맥을 타겠냐고 누가 물으면 "예"라고 대답할수 있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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