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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정맥 길

낙동정맥 종주 6번째 길 (통리 백병산 석개재)

낙동정맥 여섯번째 길 

 

통리-태현사-1095봉-1158봉-1230봉-백병산 -1080봉-토산령-구랄산-

면산(1245.2m)-1009.3봉-석개재

 

 

긴 거리 중간 탈주로가 전무한 낙동정맥의 고난도 산길을 가야하는 두려움이 발목을 당기고 있을 무렵

아들녀석 임관식이 있었다. 

혹독한 군사훈련 그 중에서도 완전군장 40km 행군때 발바닥이 터져 어금니를 깨물며 참았다는 소리에

자식을 군에 보내고 아비는 편하게 산탈 궁리만 하고 있었으니 정말 사치가 아니던가.  

계급장을 달아줄때 모두의 아들들은 큰 소리로 관등성명을 말하고 "아버지 건강하게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할때 과연 나는 아버지로서 내 아들에게 도리를 다한건지 한참을 생각했다. 

 

네 스스로 건강하고 반듯하게 성장하여 조국의 간성이 되었으니 아버지가 정말 너에게 감사하다는 말

전하고 싶다. 7주간의 간부교육이 시작되기전 9박10일간의 휴가를 받아 오랫만에 식구들과 동승하여

집으로 내려올때 아들녀석이 하는말 간밤에 가족들 만난다는 생각에 잠한숨 못잤다는 말에 "아버지도

널 만난다는 생각에 눈한번 붙이지 못하고 새벽길 재촉해 왔다는 말이 끝내 목안에서 맴돌고 말았다.

더욱 미안한것은 모처럼 부자(父子)가 만나 그동안의 회포도 한번 풀어보지도 못하고 집에 도착후

바로 강원 태백으로 맥을 타려  가야하니...... 아들아 미안하구나

 

 

밤 11시. 다시 낙동정맥 종주를 위해 통리를 향해 출발했다.

늦은밤 물안개 처럼 고속도로에 안개가 피어올라 강이되어 김해 아우가 모는 차는 물위를

유영하듯 미끄러져 간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안동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한뒤 영주를 지나

36번 국도를 구비구비 돌고돌아 통리역에 도착하니 새벽 4시15분이다. 열차를 기다리는

택시들이 시골의 아주 작은 간이역임에도 5대 정도가 새벽 첫 열차 손님을 너긋하게

기다리고 있고 역앞 식당들은 요즘 경기를 대변하듯 모두 불이 꺼져있다.

당초 해장국 한그릇씩 할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너른 고냉지 채소밭 앞에서

라면을 끊이자 천천히 어둠은 여명에 밀려 그 자취마져 사라져 버렸다.  오전 5시 드디어 출발이다.

 

마음에 각오를 단단히 해야한다. 산타는것이 직업인 사람들이 10시간 30분이 소요 되었다면 필자는

족히 11시간에서 12시간을 이 지겹도록 긴 산줄기를 밟고 내려가야 하겠지 2분여 걸어가자 작은암자

태현사엔 견공(犬公)녀석들이 낮선 우릴보고 짖어댄다. 맞은편 밭둑길을 따라 오르다가 좌측능선

정맥표지 리본들이 손짓한다.5시35분 옛성터는 풍상을 견디지 못하고 허무하게 그 잔재만 남아 

산객들을 배웅하고 산속 고요를 깨뜨리는건 일행들의 풀숲헤치는 소리뿐이다.  습도 높은 날씨탓에

땀 뻘뻘 흘리며 면안등재에  도착하니 (5시50분) 지겨운 산죽길이 늘어져 있다.

 

 

세상의 생명들이 비와 바람과 기다림 때문에 흔들린다면 낙동정맥의 산줄기는 오늘. 내일 그리고

그 후 끝없이 이어지는 발자욱들로 흔들리지 않고 늘 그자리에서 푸른 생명과 아름다운 소리들을

다 모아 지친 산객들에게 끊김없는 나눔을 줄것이다.  

거의  1시간여를 산죽과 씨름하는 사이 필자의 다리가 꼬이기 시작하고 눈꺼풀이 자꾸 아래로 쳐진다.

3일간 통털어 1시간도 수면을 취하지못해 피로가 누적되어 쓰러지기 반보 직전이다.

박대장은 걱정이 되는지 연신 필자의 상태를 묻고 오전 6시50분 고비덕재 헬기장에 도착한다.

수목이 짙고 커서 지나온 산줄기 조망은 아예 할수가 없어 더 피곤하고 지루한 생각이든다.

그냥 숲의 터널속을 지나가는 형상이다. 지나온 길이 앞으로 갈길을 알려주는 산마루금이

보이면 다시 용기내어 힘차게 가련만 필자의 바램은 허공의 메아리처럼 사라져간다. 

 

이슬 머금은 풀숲을 헤치며 오전 7시5분 백병산 밑 분기점에 닿았다. 필자는 계속되는

졸음으로 털석 주저앉아 베낭을 의지한체 눈을 감으니 금방 잠이 들것같아 억지로 일어나

구인혜 부회장이 권하는 오이와 방울토마토로 원기를 회복한후 맞은편 을 바라보니 백병산과

면산 방향을 표시한 삼척의 모 산악회가 세운 표지석이 이국땅의 길 안내판 처럼 낮설게 보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 일행이 휴식하는 이 자리에서 고뇌와 갈등을 겪어며 갔을까?

이 곳은 막 시작하는 곳 이기도 하지만 종착역이 될수도 있어 시작하는자와 마치는자의

감동은 확연히 다를것이리라. 그러나 어디 우리 삶과 산길이 끝이 있던가? 이 산길이 끝날무렵

먹이를 찾아가는 산짐승처럼 또 다른 산줄기를 찾아갈 준비를 할 것이다.

 

 

백병산은 정맥의 줄기에서 약간 벗어나 있다. 분기점에서 약 360m 전방에 있어 별 무리없이 갔다 

올수 있고 또 낙동정맥 전 구간의 산중 가장 높은산이라 들리기를 권하고 싶다. 

이곳에서 면산까지는 8.5km다. 긴 산죽길을 따라서...  

 

산죽(조릿대)과 키큰 철쭉이 성가시게 굴지만 누가 이 먼 산길을 가면서 등산로의 정지작업을 할수 있겠는가?  

겨울철이면 그나마 백병산도 조망된다고 하지만 아무리 뒤돌아 보아도 눈에 보이는건 참나무숲과

산죽 그리고 싸리나무뿐이다.

8시 평탄한 산길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8시40분 일어섰다.

선발대는 조릿대가 드문드문 있는길을 속력을 내어가고 필자는 시간이 갈수록 지쳐가지만  이 길만은 누가

대신해 줄수도 없어 무조건 가야한다. 오전9시7분 고압송전탑을 만나고 09시20분 수시간만에 부부로

보이는 종주팀을 만났다. 저 사람들 너무도 먼길 헤쳐왔구나.  

 

 

푸른바다가 있는 몰운대서 낙동강을 조망하며 금정산을 지나 영남알프스를 오르고 주왕산 그리고

동해바다를 보내며 북으로 북으로 낙동강의 원류를 찾아왔구나. 남들은 모두 무모한 행위라고

단정지어도 자신과의 약속을 잘 지켜온 저분들에게 필자는 경의를 표한다. 그대들이여 언제나

푸른솔향 내며 사시길... 10시40분 지도상에도 표기없는 무명의 재에 도착해 필자가 작명을 했다.

천길 나락으로 떨어질듯한 희한하게 생긴 구멍(폭우로 생긴것으로 추정)이 있어 구멍재라 붙이고

내려서니 커다란 덩치에 물 벌컥벌컥 마시며 숨 헐덕이는 산객 한분을 만났다.

 

우리를 보고 부부산꾼들과 자기와의 시간 차이를 묻길래  1시간 20여분 정도 될것이라 하고 왜

뒤쳐져 있느냐고 묻자. 자기도 낙동정맥 종주를 계획하고 구간 거리가 너무 긴 거리는 야영을

해야한다는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야영장비를 구입해 짊어지고 연습길에 나서기로 하고

버스를 탓는데 마침 앞에서 우리와 만난 부부가 이 구간을 탄다며 석개재서 내리자 이 분도

따라 내려 이 길을 왔단다. 한편으론 무거운 짐을 지고 하필이면 왜 이 긴 거리를 선택했는지  

우습기도 하지만 어쩌면 연습구간에 고생이 이 길을 가야할 것인가도 판단 될 것이고 베낭

무게도 얼마를 해야하는지를 갸늠할수 있게되어 오히려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둔것이 아닐까?

 

지친 몸 달래주듯 장송은 곳곳에 그 기개를 펼치고 참나무 숲 비탈길을 내려서자 이일용대장이

탈출할려면 이곳 토산령 뿐이란다.우측 임도가 유혹하는데 과연 이곳 오지를  김해 아우가

찾아올지가 의문이다. 그러자 박대장은 탈출로가 없다며 필자를 재촉한다. 

 

 

사진 위 : 구멍재서 내려와 오름길을 가면서 덩치큰 참나무가 쓰러져 있길래 모두 걸터앉아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2명이 더 추가되자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지자 엉덩방아를 찢고 아파도

파안대소 하는 장면. 사진 아래 정맥타면 모두가 변강쇠가 된다나...

 

 

참나무 숲길을 따라 급경사도 오르고 다시 만난 조릿대밭을 지나 11시46분 구랄산에 도착했다.

새벽부터 산을탈때면 시간 개념이 없어진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어서 아침식사를 점심으로 착각하다가

시간을 되물어며 12시20분 또 산객 한분을 만났다.

처음엔 누군지 몰랐으나 나중 김종길 아우가 마중와서 앞서간 그 사람이 "구름나그네"란다. 단독으로

1대간 9정맥을 종주하는 그것도 정맥 마지막 종주란다. 필자는 그 분의 리본을 낙남길에서도 그리고

내가 찾아가는 산길에서 수없이 보았다.

내일 마지막 피재로 가는길엔 주위 친구분들이 이곳으로 와 찬조 출연하여 낙동정맥종주의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니 참 부럽다.

필자도 좀 일찍 산을 만날것을... 면산을 찾아 가는길은 너무 험하고 멀다. 다리가 꼬이고 쓰러질듯 하며

뙤약볕 쏟아지는 면산(1245.2m)에 도착하니 정맥꾼들의 지역 시간표시와 리본이 즐비하게 달려있다.

휴식하면서 기념촬영을 하고 14시20분 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철쭉이 도열하고 산죽이 정갱이 물고 늘어지더니 다시 싸리나무 군락이 푸성귀 내음을 코밑까지 전해주는 

여러 봉우리들 넘고넘어 평탄한 능선길 그리고 연릉을 다시 넘고 14시45분 김종길 아우를 만났다.

정말이지 이곳 산세는 작은 봉우리 하나 넘는것도 예사롭게 보다가는 낭패를 볼 것이다. 철쭉나무

터널을 지나  10평 남짓한 공터엔 야영을 한건지 쉼터처럼  제 모습을 갖추었다 . 잡목 우거져 제 구실

못할것 같은 예전 헬기장 이었던 곳을 지나  산죽길 발길질 하며 15시 낙엽송과 춘양목 군락지를 지난다.

얼마나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 했던가?  구간 종점인 석개재에 도착하니 16시15분 살아 숨쉬는 땅

강원도의 큰 돌 표지석이 너무 정겹다. 맞은편은 경상북도 여기가 강원도와 경북도의 도계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