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총동문회 가족 체육대회날.
내 기억 저편에서 조차 사라진지 너무도 오래된 굴렁쇠가 등장해 문득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옛 추억을
더듬어 볼수 있어 잠시나마 행복했다.
50년대초 태어나 6-70년대를 살면서 가난은 뭐가 그리도 질기고 험난하던지...그때의 그 가난의 아픔을 필자의 글 솜씨로는
흉내조차 낼수가 없는것이 답답하다.
궁핍을 울타리로 삼아 산 그 당시 내 또래들은 신고있던 검정 고무신으로 자동차를 만들어 타작마당을
질주했고 패차기.구슬치기.딱지(때기)치기. 그리고 무궁화 꽃이 시도때도 없이 피는 숨박꼭질(술레잡기)놀이로 하루해를 서산 너머에 재웠다.
물론 그 시절에도 부잣집과 면서기 심지어 동네구장(리장)집 아이들은 세발 자전거에 프라스틱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여유도 있었다.또 한편 영상처럼 떠오르며 우스운것은 씹고있던 껌도 나누어 씹었고 심지어 크레용과 같이 물을들여 씹다가 벽에 붙여 놓은후 다음날 또 씹고 씹었다.
이웃집 제사날이면 다음날 시루떡(당시는 집집마다 옹기로 된 떡시루로 직접 떡을만듬))한조각을 얻어 먹기위해 굴욕스러울 정도로 그 집
아이의 비위를 맞추던 그 시절.
세월이 지나 돌이켜보면 지금처럼 좋은 놀이기구와 장난감.지나친 웰빙음식에 여리고 흰 아이들 보다 그때가 더 웰빙이고 행복한게 아니었을까?
하루는 또래들이 통테(굴렁쇠)를 굴리며 땡자나무 울타리 밖에서 필자를 부른다.
굴렁쇠가 없던 필자는 궁리끝에 우리집 먹거리를 생산해내는 유일한 거름통(장군)의 테를 벗겨 대나무를 자르고 그 가지를 V자로 잘라 굴렁쇠(통테)굴리는 손잡이로 만들고 일행들과 함께 버드나무 끝없이 늘어선 흙먼지 이는 신작로를 해 지는줄 모르고 달렸다.
그 후 거름을 논으로 내는날 아버님은 장군(거름통)테가 없어진 사실을 인지 하시고 필자는 2끼 보리밥 무배식과 열흘도 넘게 가택연금을 당하는(누님이 몰래 밥을 행부치마에 숨겨 뒷뜰 감나무밑에 두고감)중형을 선고받고 짚동(탈곡한 벼 짚단 뭉치)에 숨겨둔 굴렁쇠 굴릴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가석방이라도 되길 손꼽아 기다렸다.
그때 왜 우리 어른은 8.15. 특사같은걸 단행하지 않았을까?
그 당시 아버지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계셨는데도 말이다.
부러터진 수제비 한조각을 서로 먹을려고 서열도 무시한체 보채던 그
시절.
딸랑 두어명의 식솔도 부양하기 버거워 갈라서는가 하면 걸핏하면 생활고 운운하며 강물로 뛰어드는 오늘을 보며 그 옛날 아홉식구.열식구 당신의 몸 하나에 의존하던...지쳐도 내색없이 속으로 보듬고 가던 우리의 부모님. 오늘 저 푸른 운동장에 엄마와 같이 굴렁쇠 굴리며 가는 저 아이의 웃음속에 푸른꿈이 커가기를 빌어본다.
참 오랫만에 유리알처럼 맑은 추억이 가슴가득히 쌓인 기분좋은 하루 26명의 대원들과 경계근무에 몇개월 동안 외출한번 못 나가고 낮과밤이
없을 아들에게 아비의 촉촉한 마음이라도 적어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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