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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남정맥 길

낙남정맥 종주 제15구간 (안양재-외삼신봉-청학동안부)

낙남정맥 종주 제15구간

 

안양재-돌고지재-길마재-720봉-870봉-

고운재-묵계치-외삼신봉-청학동 안부 
2004. 8. 29. 맑음


08:40. 돌고지재 1km지점 앞 능선길.

억새의 자태가 이른 아침 산길 나서는 산객마음을 평온케한다.

모든 생명은 바람과 비 그리고 기다림에 흔들리고 그 흔들림에 아름답게 성장한단다.

지리의 산릉은 기다림과 그리움이다. 

어머니 품속같은 아늑한 그리움이 능선에 걸려있어 모두 지리산자락에 들어서면 묘한 감정이 샘솟듯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사람 사이에 물길이 트고 한쪽이 슬퍼지면 다른 한쪽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도 밝게빛나 강물이 끝나는 곳에서도 웃음소리가 들린다는 글귀처럼 오늘 우리는

지리를 만나 산길을 트기위해 좋은감정으로 능선을 오른다.

연이틀 종주로 몸이 무겁다. 그림자 또한 무거운 몸을 염려하듯 느리게 따라간다. 

다시 억새(새폼)군락 과 홍조띤 싸리꽃이 길을막고 넘어진 고목과 가시나무가 보행을 더디게한다.

고도는 점차 높아지고 651봉밑 바위는 대원들 발걸음을 유혹하지만 뿌리치고 09:48. 봉우리에 올랐다. 

 

 

 

지리산 낙남정맥의 종착점 영신봉을 향해

 

내가 아니 우리가 살아가는 맥을 밟고온 길. 이 길도 이제 한번만 서면 마침표를 찍어야한다.

언제나 산마루에 올라 내려다보면 세상의 중심에 서 있다. 주마등처럼 스쳐오는 구간 구간의 일들을 생각하며

651봉을 지났고 이어 기분좋게 산길이 이어진다. 670봉에서 좌측으로 가면 말치재. 정맥길은 우측으로 가야한다.

임도가 보이고 이어 산길로 접어들어 양이터재에 당도 6.25 한국전쟁시 양씨와 이씨 가족들이 피난와  마을과 고개가

양이터로 명명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잠시 휴식하면서 사진을 찍고 다시 능선을 향해 일어섰다.

장기간 산줄기를 타야하는 정간(맥)종주는 긴장감과 비장함 그리고 인내가 절실히 요구된다.

그래서 중도에서 이런저런 핑계로 중도 하차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산은 고독과 고통 그리고 그리움을

불러내는 힘을 가져 사람들을 부른다. 정간(맥)길 오면서 만난 마을사람 그리고 삶의 풍경들 아직도 우리

농촌의 현실은 70년대와 별반 나아진게 없다. 오히려 늘어난것은 부채뿐이다. 

누렇게 부황뜬 풍요. 그것이 바로 오늘 내가 우리가 걸어온 이 길에 사는 농촌이다.  

 

 

귀신보다 더 무섭고 지겨운 산죽길 "최고 미운놈 데리고 가고 싶은곳" 
12시 565.2봉 밑 부터는 산죽길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이 산죽이 갈수록 키가커서 진행하기가 매우 어렵다.

말 그대로 정글속을 헤쳐간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갈듯...
553봉에 오르자 흉물이 된 산불감시 초소가 볼상사납게 누워있다.

지리의 준봉들이 어께를 맞대며 의연히 그 자리에서 우릴 내려본다.  점심을 먹고 일어섰다. 

3시57분 빨치산이 넘나 들었다는 길마재에 도착한다.

 

 

아직도 그날의 상처는 아물지않아 이름모를 들꽃으로 피어나 청초한 자태로 산객 마음을 부여잡는다. 

14시38분 720봉에 오르고 능선분기점에서 우측방향은 주산으로 가는길이고 정간길은 좌측이다. 

다시 산죽과의 악전고투가 시작되고 대원들은 하나 둘 지치기 시작한다. 

옷을 찢고 얼굴에 상처를 내고 그것도 모자라 우릴 넘어뜨린다.

졸자는 지금껏 산길 다니면서 이렇게 징그러운 산죽을 한번도 만난적이 없다. 

보통 지리산의 산죽은 무릅정도의 키로 자라는데 이곳 산죽은 키가 2미터쯤 되어 기면서 헤쳐가야 한다.  

15시20분 수없이 산죽에게 눈 찔리며(눈물 날 정도)790.4봉에 오르니 장쾌한 지리능선이 눈을 뜨게한다.

정수리마다 흰띠 두른 봉우리가 신선들을 불러모우니 땀흘리고 거친숨 몰아쉬며

여기까지 달려온 쾌감이 이런게 아니던가?   

 

 

억센 파도처럼 일렁이는 고산준봉을 정면으로 돌파할 채비를 갖추며 연신 氣를 모운다.

원래 산이 크고 골이 깊으면 숨는자가 많다고 했던가? 지리도 그래서인지 이념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숨고 찾을려는 발버둥이 곳곳을 쳐 아픈 역사를 보듬고 평생을 사는 산이다.

 

연속되는 산죽길 긴 팔의 옷임에도 쓰리고 따갑다.  16시40분 산죽터널을 탈출하자 기진맥진한 구조대장

다리에 경련이 일면서 쥐가났다.  거의 대부분을 낮은 포복 자세로 산죽길을 헤쳐온것이 거구의 다리에

엄청난 무리를 준 모양이다. 두 총무가 주물러고 지압하여 17시40분 고운재에 도착하여 도로옆에 주저 앉았다. 

2-3미터 옆으론 정간길에서 만난 울산의 참고래 산악회 낙남종주대가 산죽과의 전투를 휴전한후 쉬고있다. 

 

 

 


고운재서 청학동 내려가는 안부(삼신봉 밑)까지의 산죽은 숨까지 멎게할 정도의 정글이다.

눈과 얼굴은 공포로 다가오는 산죽잎과 대에 찔려 쓰리고 낮은 포복하는 허리와 다리는 끊어질듯 통증이 온다.

산죽이 얼마나 지겨운지 "세상에서 가장 미운놈 산 가자고 하면 이곳에 데려와야 겠다." 고래 소리 지르고 싶다.

하늘이 노랗다. 귀도 멍하고 해는 이미 서산으로 가고 검은 지리의 마루금만 하늘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외삼신봉에서 도움닫기를 한 낙남정간의 줄기는 영신봉을 향해 아름답고 길게 그리고 힘차게

오름을 지속하고 있다. 여대장 차로 고운재로 넘어가니 낙남정맥을 타고 온 울산 참고래 산악회 대원들이

모여 막걸리 뒤풀이가 한창이다. 찬조 출연하여 허기를 채웠다.

친절히 환대해 주신 회장님 이하 총무님 그리고 회원님들께 감사드리며 같은날 정간종주 끝나 더 인연 깊지 않을련지요? 

참고로 울산 참고래 산악회는 우리나라 맥줄기만 밟는 산악동호회 입니다.

고운재서 산청 양수발전소 상부댐을 지나 귀가 하려다가 길이없어 다시 되돌아 나오는데 어둠속 그림자가 문득

이은상님의 아득가를 생각나게 한다. 

아득히 솟아오른 저 산정에 

구름도 못다오른 저 산정에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저 산은 우리마음 

산사람 넓고 깊은 큰 뜻을 

저 산은 우리 고향 

메아리 소리되어 흐르네

사랑하던 정

미워하던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울산 참고래산악회 낙남정맥 팀들과 탁배기 뒷풀이.